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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May 07. 2019

기계 1–녹음기 / 기계 2–전자레인지【모방시】

중국 노동절 연휴가 끝난 밤에

기계 1 – 녹음기     


베네치아 곤돌라의 노를 젓는 외국 남자의 노동요가 좋아

녹음했다. 이어지는

그날의 china blue 하늘 구름 흘러가는 소리, 물 위 수 놓인 다리 건너가는 소리, 산마르코 광장 화려한 가면 구경하는 소리     

토요일 저녁 홍대입구역 4번 출구에서 쏟아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재밌어

녹음했다. 이어지는 

연인끼리 싸우며 추궁하는 말소리, 꽃 선물 받고 크게 웃는 소리, 이미 얼큰하게 취해 전화하는 소리, 에스컬레이터 공사하며 깨부수는 소리     


녹음해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      



기계 2 – 전자레인지     


전자레인지는 1초에 무려 24억 5천만 번 전기장의 방향을 바꾼다.

음식의 수분만을 골라내 진동한다. 

음식의 피를 말린다.

초 단위로 음식은 수분을 빼앗긴다. 그리고 마지막엔 항상 삐-

-삐-삐- 사망.     

나는 더 따뜻한 빵을 먹고 싶어 30초 돌릴 것을 2분 돌렸는데

(1분 30초가 더 지났을 뿐인데, 그 사이 전자레인지는 무려 24억 5천만 ×90번 더 진동해서)

딱딱한 빵이 되었다.

나는 따뜻한 군밤이 먹고 싶어 생밤을 돌렸고, 찜질방 계란이 먹고 싶어 찐 계란을 돌렸는데

밤 껍데기가 터지고 계란 껍데기가 폭발했다.     


돌려라 그러면 가짜 요리가 완성될 것이다.          

  



노동에 관한 글을 쓰는 백무산 시인의 시 중 ‘공구와 무기 2-망치’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공구와 무기 2 – 망치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두드려서 열어줄 양심 가진 놈

지금 세상에는 없는 거라

두드려서 제 손으로 열어줄 놈은

이미 훔친 것 다 챙겨 빼돌린 뒤거나

칼 들고 나서려는 놈일 게다     


두드려라 그러면 부서질 것이다     

-백무산, 『만국의 노동자여』中-     


이 시의 소재와 마지막 구절 ‘두드려라 그러면 부서질 것이다’를 모방해서 앞서 소개한 시 두 편을 쓰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노동을 중시해서인지 노동절이 설날이나 추석만큼 큰 기념일인데요, 한국도 주말과 어린이날 대체휴일까지 나름 황금연휴였죠. 저는 중국의 노동절 연휴를 (5.1-5.5) 한국에서 놀러 온 가족들과 보냈습니다. 내일부터는 한국이든 중국이든 노동이 다시 시작될 겁니다, (이미 시작하신 분들이 많을 것 같지만) 시작해야만 할 겁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도구와 기계들의 노동도 시작될 겁니다. 이제 여름휴가 이전에는 마땅한 연휴가 없어 조금은 지친 노동의 연속이 될까 봐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자야 하지만 이대로 자기 싫은 밤입니다. 가족들을 따라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편하게 자고 싶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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