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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Sep 07. 2019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서평】

「노인과 바다」에서 헤밍웨이를 보다

「노인과 바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자서전이다. 산티아고 노인은 헤밍웨이 그 자체를 비유한 인물이다. 헤밍웨이는 초기에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 작가로 활동하면서, 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느낀 니힐리즘을 작품에 녹여냈다. 1차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인류는 이전까지 지고의 가치로 여기던 기독교와 근대과학문명에 대해 회의를 느낀 채 정신적 방황에 빠지는데, ‘잃어버린 세대’란 바로 이들을 통칭하는 말이다.1) 실제로 헤밍웨이는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다리에 중상을 입고 종전된 후에야 고향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전쟁이 가져다준 삶의 허무 – 니힐리즘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것이다. 이후 작가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전쟁문학의 걸작을 써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후 헤밍웨이의 니힐리즘은 ‘도전하는 삶’을 강조하는 것으로 사상적 전환을 이룬다. 이는 1930년 당시 미국 내 및 국제정세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먼저 당시 미국은 대공황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개인주의 경제체제에서 뉴딜 정책이라는 정부주도의 사업을 실시했다. 국외적으로는 나치즘과 파시즘이 팽창되어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국내외적으로 굵직굵직한 사회적 이슈들은 헤밍웨이를 포함한 미국 작가들이 이전까지 환멸, 허무와 같은 개인의 감정만을 논의하는 것에서 사회공동체적 문제로 관심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니힐리즘을 마주하고 비로소 그것을 극복한 인생관이 그대로 녹아있는 작품이다. 산티아고 노인은 자연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노인이 사는 오두막집에서는 노인이 다시 잠을 자고 있었다여전히 엎드린 채 자고 있었다소년이 옆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노인은 사자들 꿈을 꾸고 있었다.” 와 같은 이야기의 결말에서 볼 수 있듯이, 노인은 여러 번 사자 꿈을 꾼다. 85번째 항해를 나가기 전에도, 항해 중에도, 항해를 마치고 잠이 들었을 때에도 노인은 사자 꿈을 꿨다. 노인은 사자와 그들이 뛰노는 아프리카 야생을 동경한다. 그래서 노인은 계속해서 바다로 나간다. 물고기가 잡히는 것이나 바다의 풍랑 같은 것은 결코 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인생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노인도 이를 모르지 않기에, 바다 한가운데서 자연의 운명 앞에 자신을 내맡길 뿐이다. 의도치 않게 거대한 물고기가 노인의 낚싯바늘에 걸리고, 노인은 그 물고기를 견뎌내는 것이 자신의 운명인 듯 모든 고통을 감수한다. 하지만 자연은 그런 노인을 동정하기는커녕 상어를 통해 노인을 더욱 고통스럽게 몰아붙인다. 자연의 시험이 계속될수록, 노인은 혼잣말로 자신을 다독이기도 하고, 사자 꿈을 꿀 수 있을 정도의 잠깐의 잠을 원할 뿐이다. 노인이 잡은 물고기는 뼈만 남은 채 비극으로 끝나지만, 노인의 항해를 통해 헤밍웨이는 거대한 자연과 운명 앞에 인간이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산티아고 노인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큰 물고기가 물고 있던 낚싯줄을 끊고 돌아왔다면 그에게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만약 노인이 큰 물고기가 낚싯줄에 걸린 것을 보고 “겨우 굴러 들어온 행운이 이렇게 갖지도 못할 행운일 줄이야. 역시 삶은 허무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하며, 낚시를 다시는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면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노인이 낚싯줄에 손과 어깨가 짓눌려 고통스러워 할 때마다, 빨리 낚싯줄을 끊어버리고 집으로 돌아가 그의 몸부터 챙기기를 바랐다. 바다에서 종종 크게 내뱉기도 했던 노인의 독백에는 비장함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보다 큰 외로움과 고독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거북의 심장은 칼로 몸이 잘린 뒤에도 몇 시간이나 뛰기 때문이다하지만 노인은 자기 심장도손과 발도 거북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라는 책의 구절에서는 이근화 시인의 <외로운 조지>라는 시가 떠오르기도 했다. 노인이 생각하는 거북의 이미지가 <외로운 조지>라는 시의 “조지들의 외로움은 너무하다. / 그중에는 정말 조지도 있었을 것인데 이 세상의 너무 많은 조지들이 조지들의 별 같은 외로움이 중력을 벗어나서 갈 데가 없다 이 중력을 베어낼 수가 없다”2)라는 구절과 겹쳐졌다. 이 시의 소재인 갈라파고스코끼리거북 조지의 외로움이 노인의 외로움인 동시에, 이 세상에 던져진 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간의 태생적인 고통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산티아고 노인이 도전을 즐기며 마냥 멋진 삶을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산티아고 노인의 삶이 가장 이상적이라고도 확언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헤밍웨이가 활동했던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 사회는 개인주의 성향이 짙고 각자의 가치관도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산티아고 노인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더욱 다양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헤밍웨이의 생애를 살펴보다보면, 헤밍웨이 스스로 산티아고 노인의 삶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는 듯하다. 1차 세계대전 뿐만 아니라 중일 전쟁 특파원으로 중국을 여행하거나 2차 세계 대전 때는 자신의 배로 독일 해군 잠수함 탐색에 나서기도 했을 정도로 행동파였던 헤밍웨이는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3)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실제로 산티아고 노인과 같은 삶을 살았던 헤밍웨이가 써내려간 노인의 독백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에너지를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1) 임철우, 『노인과 바다』를 통해 본 헤밍웨이의 스토이시즘 연구, 목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27쪽. 

2) 이근화,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창작과 비평, 2016, 27쪽.

3) 『[한 주를 여는 명언]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 2018년 11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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