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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Nov 01. 2019

문학【에세이】
UFO를 본 적 있나요?

(불안정한) 나의 문학관에 대한 이야기

문학은 나에게 ‘UFO를 본 적 있나요?’ 식의 질문으로 다가와, 다시 ‘UFO를 본 적 있나요?’ 식의 여운을 남기는 작품을 만들도록 자극한다. 어딘가 UFO가 떠돌고 있을지 모를 우주는 지금도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듯이, 나의 꿈은 나만의 문학세계를 끊임없이 다듬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형적인 예술가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기에, 괜한 꿈을 꾸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된다. 나는 좋아하는 것에 확신을 갖고 밀고 나가기보다, 세상에 비교적 잘 수용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내가 쓴 시를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았을 때부터 그런 태도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시 쓰기 대회를 한 선생님과 함께 준비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내 시가 어둡고 어렵다고 했다. 나는 내 시의 정확히 어느 부분이 어둡고 어려운지, 그렇다면 어떤 시가 밝고 쉬운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이후 나무, 하늘 등과 같은 시어를 넣어 시를 지었더니 선생님께서 매우 흡족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1년만 딱 죽은 셈 치고 보내라”는 주변 어른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수능 공부가 아닌 글을 쓰는 것을 마치 사치인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가끔은 자습실을 돌아다니며 자는 학생을 깨우는 선생님들의 눈치를 보며, 시를 쓰고 뿌듯해하기도 했다. 이렇듯 학창 시절에는 내 나름의 소극적인 방식으로 문학과 문학적인 모든 것을 동경했다.       


작년에는 중국에서 1년 동안 유학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삶에서 문학의 필요성을 통감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학교 시간표도 한국 학교생활보다 빡빡하지 않았던 터라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특히 이때 무작정 걸어 다니는 것에 재미를 붙이기도 했는데, -현지인들은 무관심하게 그냥 지나치지만- 이방인인 나에게만은 낯설고 새롭게 보이는 광경들이 흥미로웠다. 그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거나 그것들에 영감을 받아 글을 썼다. 내가 쓴 글을 낭독하고 녹음해서 듣기도 하면서 즐거워하기도 했다. 글을 쓰는 일에 온전히 몰두하는 것은 외로웠던 생활에 큰 위로가 되었고, 뜻밖의 해방감을 주었다.      

이 기간에 쓴 글을 바탕으로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글과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의 글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성격의 마음이 있었다. 먼저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눌러주거나 댓글을 달아줬으면 좋겠다는, 글로써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하지만 이 욕구는 글을 ‘지속적으로’ 업로드 할 수 있는 원동력일 뿐이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계기는 ‘내 글의 힘을 가늠하고 싶은 마음’에 있다. 내가 글을 쓸 때 느꼈던 에너지가 그 글을 읽는 것만으로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말이나 몸짓으로 섣불리 위로하기 망설여지게 마련인데, 글을 통해 누군가 위로할 수 있다면 그건 엄청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은 매번 조심스러운 동시에 짜릿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문학을 할 수 있을지’ 두렵게 만드는 물음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좋아했던 예술가들이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에서 가해자로 지목되는 것을 보면서 이와 같은 의문은 더욱 커졌다. 이는 곧 ‘나는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쓸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멋있어 보이기 위해, 나의 더러운 모습을 포장하기 위한 문학은 결코 하고 싶지 않다. 한편 ‘문학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기도 한다. 흔히들 문학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정답’이 없다고 해서 ‘정의(正義)’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호한 언어의 미학을 살리면서도 알맹이가 있는 문학을 하고 싶다.      


UFO는 허상이면서 허상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흐릿하지만 큰 비밀이다. 그러니까, UFO는 시적이면서 우리의 인생 같은 것이다. UFO의 존재를 떠올릴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어쩌면 우주의 작은 먼지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허무해 하면서도, 왠지 모를 위로를 받기도 한다. 슬픈 세상에서 슬픈 사람들이 모여 UFO 같은 나의 문학을 구경하며 수군대는 행복한 장면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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