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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Sep 15. 2019

세르반테스 『돈키호테』【서평】

아마도 또 다른 누군가가 더 나은 악기로 연주하리.

근대 비평의 아버지인 생트뵈브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인간의 내부세계를 가장 깊이 파 들어가 묘사한 인류의 바이블”이라고 평가했다. 생트뵈브의 말대로 ‘돈키호테’는 그 자체로 인간과 인생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는데, 그 고민의 흐름을 크게 세 개의 층위로 나누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돈키호테의 첫인상은 무모해보였다. ‘기사의 모험’이라고 포장한 무모한 가출을 하고, 패기 넘쳤던 출발과는 달리 초라하게 집으로 돌아오게 된 그가 마냥 안타까웠다. 그의 말과 행동이 우스웠고, “왜 저렇게 피곤하게 살기를 자처하지?”, “어설픈 기사의 연기를 언제까지 할까?”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의 외형적 묘사는 더욱 그를 작게 만들었다. 그는 삐쩍 말랐고, 그를 태운 로시난테는 전형적인 기사의 말과 달리 털의 윤기는커녕 제대로 걸어 다닐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그것에 맞서 싸우려고 하거나, 객줏집을 성으로 생각하거나, 이발사의 놋대야를 맘브리노의 투구로 취급하는 등 돈키호테의 ‘이상행동’이 반복되면서, 어쩌면 그는 정말로 스스로를 기사라고 굳게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황당무계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진심이라면,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그때 이 에피소드가 눈에 들어왔다. 38장에는 돈키호테가 문과 무에 대해서 연설하는 것이 나오는데, 들은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문제들을 이야기함에 있어 훌륭한 이해력과 뛰어난 언변을 지니고 있는데 자신이 추종하는 불운하고 어두운 기사도에 대해 논하기만 하면 완전히 이성을 잃고 마는 사나이를 보면서 연민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1)” 고 그를 평가했다. 돈키호테는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기사’에 미친 사람이었을 뿐.      


돌이켜보면, 나도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갈증 때문에 이성적이지 못했던, 현실적이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좋지 않은 이별이 뻔했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주변사람을 속이기도 했고, 취업에 대한 마땅한 준비도 없이 무조건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며 교직이수를 권하는 부모님께 강하게 저항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돈키호테처럼 목표를 향해 추진력 있게 밀고나갈 수 있는 패기 있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 그 비결로 내세우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싫은 일은 안하는 고집스러운 성격도 아니기에, 한때 갈망했던 것들을 이내 이성적으로 살펴보는 편이다. 결국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이별을 말했으며, 부모님의 의사에 따라 교직이수를 고려해보게 되었다.      


그러니 돈키호테는 나의 영웅이다. 당시 부유한 것이 기사의 조건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의 집안은 부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기사가 될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주막집 주인을 기사라고 부르며, 그에게 자신을 정식 기사로 임명해달라고 청했다. 또한 그는 “그의 이름에 고향의 이름을 덧붙여 돈키호테 데 라만차 2)”라는 기사로서의 자아를 창조했다. 후편에서 서술되어 있듯이 그의 묘비명은 “미쳐 살다 정신 들어 죽다”였는데, 이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돈키호테’로 살기위해 평생을 바친 이야기의 주인공일 뿐, 나의 영웅 ‘돈키호테’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편 말미에 세르반테스가 써놓은 “아마도 또 다른 누군가가 더 나은 악기로 연주하리.”라는 문장은 『돈키호테』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든 더 나은 ‘돈키호테’로 살아주길 바라는 그의 마음으로 읽히기도 한다. 나에게 풍차, 객줏집, 이발사의 놋대야는 무엇으로 보일 수 있는가? 내 앞에 보이는 것들을 다른 무엇으로 착각할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는 있는가? “아마도 또 다른 누군가가 더 나은 악기로 연주하리.”라는 문장을 기억하며, 두고두고 생각해볼 일이다.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시공사, 2011, 535쪽. 

2) 위의 책,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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