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전선이 북상한 내 방은 구름보다 위에 있다.
장마가 시작된 저녁에는 에이포지를 벽에 이어붙이고 낙서(樂書)를 했다.
볼 수가 없으니, 덩-덕 쿵 덕 쿵
냄새를 맡으며, 덩기덕 쿵 더러러러
경계 없이 창과 벽에 부딪치며 춤을 추었다.
그러다 한밤중에는 차가 쿵 부딪히는 소리 다음으로 경찰차 사이렌이 들려왔다
사고를 연기하는지 사고로 연기가 나는지 알 수 없었으나
다만, 빨간빛에 쪼일까봐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낙서를 해야 했다.
장마가 물러간 아침에는 강박적 취침을 모퉁이로 몰아 접고
일어나니,
잉크 없었던 펜, 발톱, 이빨, 털, 살로 하얗게 상처 난 벽이다
내 집이 아닌 내 방에서
벽이야 벽하며 벅벅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에 스카치테이프 자국이 난 에이포지를 담는다.
가만, 내 목구멍에서도 벅벅 소리가 나는데
장마를 믿고 멀리 나온 지렁이는 이제 죽음을 믿고 울어버릴 수 있단다.
달팽이보다는 빠른 걸음으로 미끄덩댔을 뿐인데
태생적으로 유연한 달팽이는 제 몸이 제 집이 될 수도 있다는데
번개 같은 무지개가 내 몸을 관통해서
색이 많아 색을 잃은 하얀 지렁이가 된다.
오, 하얀 지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