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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Nov 07. 2019

정은호『방바닥이 속삭인다』 【문학 나눔 선정도서】

시집과 같은 제목의 시 「방바닥이 속삭인다」에서 화자는 출근시간이 다가오는데 방바닥에 붙어있다. 아내는 마치 학교 가기 싫어 꾀병을 부리는 아이에게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라’라고 하듯, ‘구들장을 지고서라도 출근하라’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바닥은 ‘여전히 속삭인다’ 1). 몸이 힘들고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하는 노동의 현장은 ‘여전히 치열하다.’ 정은호 시인은 창원공단에서 ‘치열한’ 노동자로 일하며 시집 『방바닥이 속삭인다』을 써 내려갔다.     


나는 늘 같은 자리에서

뺑뺑이 치다

힘겨우면 거친 숨을 내몰아 쉬고

     

선풍기야!

나도 날개를 멈추고 싶다.     


그런데 누가

누가, 스위치를 쥐고 있나


「선풍기」 부분 2)     


일터에서는 선풍기도 노동자도 쉬지 않는다, 아니 쉬지 못한다. 누가 노동자의 스위치를 쥐고 있나. 누가 노동자를 기계처럼 일하게 만들었나. 해마다 노동현장에서 끔찍한 사고는 왜 일어나는가. 지난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에서 김군의 가방에 들어 있었던 컵라면은 하나의 은유로 읽힌다. 1시간 이내로 스크린도어 고장 신고가 접수된 곳으로 가야 하고, 인력부족으로 혼자 작업할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에 대한 은유로 느껴진다. 선풍기, 컵라면... 나는 노동자들이 매일 무겁게 짊어지고 있는 이 은유의 의미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나.     


다 같이 머리 깎자! 공장 본관 앞에 조합원들 모아놓고 삭발식 하려는데     


나이 든 형들이 먼저 머리 깎겠다 나서는데, 그래도 시를 쓴다며 임금체불에 비정규직이 어떻고 떠들었던 나는 형들처럼 쉬 나서지도 못하고 쭈뼛거리며 눈치만 보고 섰던


「그날」 부분 3)     


 시인이자 화자가 받아야 하는데 받지 못한 연말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나는 2년 전 즈음 9호선 파업이 시작되었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9호선 파업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 나는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이 지연되고 지옥철이 더 지옥철이 되겠구나, 걱정만 늘여놓았다. 그리고 얼마 전 9호선 파업이 일주일간 또다시 진행되었다. 왜 2년 전 일은 반복되는가. 나의 무관심이 노동자의 목소리를 작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이번 파업에서 9호선 노조는 1인 근무 폐지를 위한 인력 충원, 연봉제에서 호봉제로 전환, 비정규직 보안요원 4명의 정규직화 등을 요구했다.     


시 <입>의 ‘살아있다는 것을 / 쉴 새 없이 증명하는 / 금붕어 4)’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의 목적은 돈을 벌어 살기 위한 것인 동시에 일을 함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현대사회는 전자만을 강조,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노동자의 투쟁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고,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로서 그들의 투쟁이 힘 있는 목소리가 되어 노동환경이 지금보다 부드러워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렇듯 시집『방바닥이 속삭인다』는 취업을 거쳐 앞으로 나의 삶이 될 ‘노동’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도록 속삭다.

정은호, 『방바닥이 속삭인다』, 문학의 전당, 2019.

정은호 시집 『방바닥이 속삭인다』(문학의 전당)는 ‘문학나눔 선정도서’이며, 위 서평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2019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의 “서평단 붘어 2기”로 선정되어 작성했습니다.


1) 정은호, 『방바닥이 속삭인다』, 문학의 전당, 2019, 35쪽

2) 위의 책, 13쪽.

3) 위의 책, 36쪽.

4) 위의 책,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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