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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Nov 21. 2019

최문자『우리가훔친것들이만발한다』【문학나눔 선정도서】

브런치의 다른 글에서도 곧 다루게 되겠지만, 요즘 나는 ‘쓰는 행위’에 대해 자주 궁금해한다. ‘쓰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어떤 힘을 가지는가?’, ‘쓰는 사람은 무엇으로부터 쓰는가?’, ‘읽는 사람은 쓰는 행위와 무관한가?’, 다시 ‘시를 쓰는 것은 어떻게 쓰는 행위인가?’...... 그러다 시를, 문학을 읽고 쓰는 것이 어쩌면 나와 반대편에 -혹은 완전히 무관한 자리에- 두었던 것을 끌어와 주변에 두는 일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에는 유독 ‘시’, ‘시인’이라는 시어가 자주 쓰였다. 시인은 시를 쓰면서도 ‘시를 쓰는 행위’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걸까? ‘작가와의 만남’에서 최문자 시인을 만났을 때, 운 좋게도 이런 고민에 대한 시인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눈물이 나는 건

슬픈 시를 쓰는 건

모두 비누 때문이지

소량의 물에도 사라지는 거품이 그리는 그림

불행한 불확실성 때문이지     

(중략)     

나를 모르는 자와

그를 모르는 내가

비누의 페이지로 가서

거품으로 말을 나누고

장롱 깊은 곳에 그 말들을 넣어 두었지만

말조차 깊은 비누였던 것     


「비누들의 페이지」 부분 1)


'비누들의 페이지'에서 시는 비누 '거품'으로 쓰였다. 내가 모르는 -혹은 (열심히) 모르는 척 해왔던- 자들과 '비누 거품'으로 나눈 이야기를 '비누'처럼 녹여 시에 적다 보면, 시인에게선 눈물 냄새의 비누향이 난다. 분명히 무언가 느껴던 것 같은데, 무엇도 명확히 담지 못한(듯한) 내 습작시를 읽을 때, 기시감을 느낀 이유는 이 때문일까?      


시가 무엇인지 질문을 했을 때, 최문자 시인은 난감해했다. 다만 시인은 “어떤 시인들은 ”내가 쓴 것이 모두 시다“ 라며 시를 다소 가볍게 여기기도 하지만, 시는 절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전에 ‘시인’하면 무거운 돌을 가슴에 올려두고 다듬는 장인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그보다 시인은 한없이 가볍게 떠오르는 ‘비눗방울’을 시의 글자 위에 올려놓는 사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떠오르거나 사라지는 시인의 몸짓은 ‘불행한 불확실성’이다.      


몰래 쓴 편지가 하얗다

어떤 감정이 흰색을 뒤집어쓰고

쓸 수 없는 데를 쓴다

물 한잔으로 적실만큼 어떤 말을 하고 있다     


봄인데도 

편지는

지나간다

없어진다

떨어진다

툭툭

무슨 꽃처럼     


「편지」 부분 2)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쓰면, 누군가에게 -나에게라도- 전해질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 시 「편지」를 읽으며 ‘시’를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무슨 꽃처럼’, ‘하얀’ 편지를 툭툭 떨어뜨리는 시인의 마음은 무엇일까? 최문자 시인은 어렸을 때도 편지를 잘 쓰지 않았다고 하면서, 만약 시가 편지에 비유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물에 보내는 편지’에 가까울 것이라고 했다. 가만한 사물에게 몰래 쓴 편지를 부치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다시 시집의 처음으로 돌아와 ‘시인의 말’을 보자. “시 이것을 견디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나를 의심했다. 자주 불가능해서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는 시인의 말에서 “훌륭한 시를 보면 잠이 안 올 정도로 치열하게 써야 ‘꾸준히’,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최문자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시를 쓰기 전에 ‘시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최문자 시집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민음사)


최문자 시집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민음사)는 ‘문학 나눔 선정도서’이며, 위 서평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2019 문학 나눔 도서보급사업의 “서평단 붘어 2기”로 선정되어 작성했습니다. 



1) 최문자,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 민음사, 30쪽.

2) 위의 책,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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