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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Jan 13. 2020

헤세와의 대화[서평]

헤르만헤세 《데미안》

논술학원의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다가, 원장님이 MBTI(성격유형검사)를 요구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이다,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와 같은 성격검사의 문항들을 보면서, ‘착한 쪽으로 표시하자’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오지선다의 성격·인성·적성 검사를 통해 내가 온전히 설명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것의 결과를 통해 나를 보여주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물론 그날도 ‘학원 아르바이트생으로서 올바른 성격’을 원장님께 보여주기 위해 성격검사에 응했고, 사회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에게도 검사에 응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대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오지선다보다 훨씬 더 고차원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성격, 나아가 내면적 자아를 찾고자 하는 싱클레어의 이야기를 담은 『데미안』이 탄생하기 전에,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헤르만 헤세는 융에게 정신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헤세는 융의 학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융의 분석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데미안』은 ‘의식적 자아(ego)의 알을 깨고 내면적 자아(self)를 찾아 날아가는 새’의 이야기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싱클레어가 만난 데미안과 에바부인은 각각 아니무스와 아니마의 상징이기도 하다. 융의 이론에 따르면 목표를 향한 추진력인 아니무스와 배려와 치유의 에너지인 아니마 모두 개성화, 즉 내면적 자아에 도달하기 위해 포용해야 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자신의 스승이기도 했던 피스토리우스를 떠나는 것으로부터 도약했듯이, 『데미안』과 같은 헤세의 문학은 융의 학문을 넘어서 인간의 정신에 대해 보다 깊이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러한 헤세만의 여정의 핵심에는 바로 ‘아브락사스’가 있다. 아브락사스의 구체적인 이미지는 『데미안』에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이는 본래 인간의 몸에 수탉의 머리를 갖고 두 개의 다리는 뱀으로 이루어진 악마이자 신인 존재이다. 『데미안』의 대부분의 문장들은 ‘아브락사스적’인데, 단정 짓는 것을 기피하며 헝클어져있고 추상적이고 뭉개져있는 편에 가깝다. 이를 테면 사랑에 대해서도 “사랑은 그 두 가지 모두였다. 두 가지 모두인 동시에 그보다 훨씬 이상의 것이었다. 사랑은 천사의 영상이며 악마였고, 남자인 동시에 여자였고, 인간인 동시에 동물이었고, 최고의 선인 동시에 극단적인 악이었다. 이런 삶을 사는 것이 내게 주어진 본분인 듯 보였고, 이를 맛보는 것이 내 운명인 듯했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아브락사스’야 말로 헤세가 상상했던 내면적 자아의 이미지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정신을 8가지 유형으로 나눈 융의 심리 유형론 -이는 앞서 언급했던 MBTI의 기초가 되는 이론이기도 하다- 보다 더욱 복잡한 파문을 일으킨다.
 
“나는 오직 내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삶을 살려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리 어려웠을까?”라는 『데미안』의 첫 문장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 싱클레어가 데미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던진 이 질문은 무수히 많은 질문들로 연쇄된다. 곧 4학년이 되는 내가 이제는 해보고 싶은 것을 좀 접어두고 자격시험이나 취업준비에 몰두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재적 자아가 하고 싶은 일은 왜 자꾸만 좌절되는 것일까? 내재적 자아는 텅 빈 채로, -사회로부터 요구받은- 의식적 자아의 목소리를 따라갈 때, 우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조급함과 불안을 느끼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에게 ‘데미안’이 되어준 헤세의 문학을 접한 후, 그런 조급함과 불안들은 다시 새로운 에너지가 되었다. 이제 구분 짓는 세계에서 벗어나, 나만의 상상력으로 얼마나 날것 그대로의 내재적 자아를 마주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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