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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Jan 13. 2020

의심하는 철학 [서평]

데카르트《방법서설》

침대에 누워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가끔씩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죽고 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침대가 꼭 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누워있는 몸이 붕 뜬 것 같은 소름 돋는 경험을 한다. '지금 내가 여기 '존재'하긴 하는 걸까?' 하는 막연히 두려운 생각을 끝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든 적이 여러 번 있다. 데카르트는 ‘I am thinking therefore I exist’라는 말로 지금까지 널리 기억된다. 하지만 나는 앞선 경험 때문인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존재'가 명확히 보장될 수 있는지 그에게 되묻고 싶다. 또한 일반적으로 참인 명제의 역은 거짓인데,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라는 명제의 역은 성립하지 않은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유하고 행동하는 것보다 ‘실존’이 앞설 수 있지 않을까? 하이데거나 라캉과 같은 현대 철학자들도 끊임없이 이 명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렇듯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 데카르트의 철학은 다시 그것에 대한 생산적인 ‘의심’들을 낳는다.
 
대학을 졸업한 후 데카르트는 9년간 이곳저곳을 여행하는데 이때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 지식이 아니라 관습이나 전례였음을 깨닫고, 방법적 회의를 도구로 진리를 찾아내는 방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방법서설>을 쓰게 된다. 그는 우리가 참된 진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꿈이나 악령의 속임수일지도 모른다는 식의 의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마침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 철학에서 벗어나 인간의 감각적 경험, 상상, 의지까지 의심하며, 이를 주관적이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여긴다. 이후 모든 것을 의심한 끝에 그는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다시 말해 명백히 참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제1원리를 발견해낸다. 나아가 합리론자로서 데카르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성적 사유를 통해 제1원리를 추론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명제 이외에도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의문을 갖은 부분은 바로 그가 “오직 인간만이 정신적인 존재이고,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맹목적이고 죽어있는 기계와 같다.”라고 주장한 점이다. 데카르트는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인간의 행동을 흉내 낼 수 있는 기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계는 인간과 같이 말이나 기호를 사용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인식이 아닌 기관의 배치에 의해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결코 인간과 같이 인식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17세기 과학혁명의 바탕이 되었던 이와 같은 기계론적 세계관은 21세기 (4차 산업) 혁명에도 유효할까? 미래에 휴머노이드가 상용화된 모습을 그린 드라마 <Humans>에서 한 인물은 “나에겐 미래가 없어. 저 로봇보다 잘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거든”이라며 절규한다. AI는 인간과 같이 인지하고 사고하는 것에서 나아가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것을 목표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에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은 무엇일까? 데카르트가 현대사회의 기술발전을 예측하지 못했듯이 지금 이 질문에 대해 내린 답은 명확하지 않겠지만, 어쩌면 미래에는 인간이 ‘인간이라는 사실’ 그 자체만이 AI와 구분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AI가 인간과 매우 유사한 형상과 이성을 갖게 되더라도, AI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AI일 뿐이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죽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고민하기 시작한 역사에서 데카르트의 철학은 새로운 출발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학문의 발전 못지않게 탄탄한 철학적 토대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는 21세기 눈부신 발전을 이룬 과학기술의 뒤편에서 끊임없이 인간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해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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