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가만한 나날』 (민음사, 2019) 【비평】
지난 9월 7일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 ‘조커’는 주인공 ‘아서’가 악당 ‘조커’가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영화에는 훨씬 더 복잡한 맥락이 있지만, 여기서는 ‘아서’의 웃음에 주목해보려고 한다. 황폐한 고담시에서 광대로 살아가는 ‘아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웃음이 나오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그는 울고 싶지만 웃고 있어야 하며, 그래서 그의 웃음은 불안한 모습으로 슬픔을 토해낸다. ‘아서’의 이런 분열증은 ‘조커’의 광기로 변해, ‘조커’는 광대의 표정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혹자는 이 영화가 사는 게 팍팍하다는 이유로 저지른 살인을 정당화시키고 있다며, 위험한 영화라고 혹평한다. 1) 그러나 ‘조커’를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영화 ‘조커’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이 영화가 우리가 위험하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터지는 웃음을 참아야만 하거나 억지로 웃어야만 하는 이 시대의 광기’2) 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세희의 『가만한 나날』은 8편의 단편을 통해 이 시대의 잠재적인 조커로 살아가는 2030세대의 ‘불안’의 감정을 여러 층위로 나누어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1) 흔들리는 불안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의 ‘나’와 「그건 정말로 슬픈 일일 거야」의 ‘연승’과 「현기증」의 ‘원희’는 달리고 있다. 어디로, 어떻게?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의 ‘나’는 아내 ‘루미’와 함께 오래오래 사는 게 꿈이다. 그런데 자꾸만 ‘나’는 엄마와 누나가 떠나고 혼자 남은 아버지의 모습에서 “70살이나 80살 먹은 내”가 겹쳐 보인다. 그 불안의 환영을 지우려는 듯, ‘나’는 ‘루미’와 함께 전기장판을 사서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지만, 그것은 들고 가는 내내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아버지의 집에 -과하게- 큰 전기장판을 설치하고 난 후에도, ‘나’는 아버지와 요양병원을 가니 마니하며 싸웠고, ‘루미’는 ‘나’를 따라 아버지의 집 밖으로 나오면서 “밖이 더 따뜻한 것 같아”라고 말한다. ‘나’는 ‘루미’에게 “내가 아버지처럼 되면 너도 날 떠날거야?”라며 ‘나’의 불안이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라고 확인받고 싶었지만, 그때 루미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건 정말로 슬픈 일일 거야」의 ‘연승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인 대학 선배 ‘소중한’은 이름 그대로 ‘연승’에게는 소중한 선배다. 선배의 집으로 향하는 내내 ‘연승’은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이날 ‘연승’은 선배로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이쪽(다큐멘터리) 길을 택했으나 점점 자신의 선택을 세상에 원한을 품는 알리바이로 삼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현기증」의 ‘원희’는 그녀의 가족(특히 엄마)이 그녀를 구속하고 있는 금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꿈이다. “훌륭한 딸이 되지 않”기 위해 그녀는 여행을 즐기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배낭여행을 갔고, ‘상률’과 동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엄마 몰래 상률과 사는 집을 더 큰 곳으로 옮기는 -엄마의 구속으로부터 더 멀리 도주하는- 과정에서 ‘원희’는 새로 이사하게 될 어두컴컴한 집과 허름한 가전제품들을 보며, “때가 되면 손에 들어올 줄 알았던 모든 것들”과의 거리를 실감한다. ‘원희’는 “그는 남이었다. 언제든 헤어질 수 있었고, 헤어지면 그만이었다. 그와 함께 이런 일까지 감수할 수는 없다”면서 ‘상률’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녀는 위태로운 바위 위에서 신이 나서 웃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는 엄마의 꿈이, 지금까지 자신을 옭아맸던 엄마의 걱정이 오히려 현실과 멀지 않다고 생각하며 새집을 둘러본다.
그러니까, 이들은 저마다의 욕망을 향해 달린다. ‘나’는 ‘루미’, ‘연승’은 ‘소중한’, ‘원희’는 ‘상률’의 손을 잡고 -혹은 잡았다고 착각한 채로- 달린다.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목적지는 흐릿해지며, 끝까지 의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타자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달리다가 흔들린다. 이리저리 불안에 몸을 맡기며 흔들리면서 달린다.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 불안의 이미지를 마주한 이들은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만약 이 불안이 현실이라면 ‘그건 정말로 슬픈 일일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아직 ‘슬픈 일인’ 것이 아니라 ‘슬픈 일일’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은 불안의 가능성을 안고서 어딘가를 향해 나아간다. 이들을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맥락에서 보면 ‘아프니까 청춘’으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의 맥락에서 본다면 ‘흔들리며 피는 꽃’으로 명명할 수 있으려나? 어찌되었든 이들은 흔들리는 불안의 힘으로 내달리고 있다.
2) 갇혀있는 불안
「가만한 나날」의 ‘경진’은 첫 출근을 앞두고 있고, 「감정연습」의 ‘상미’는 이제 막 정직원이 되었다. 「드림팀」의 ‘선화’는 옛 직장 사수였던 ‘은정’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래, 청춘들은 -젊으니까- 아파하고 흔들리다 보면 마침내 사회생활을 시작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법이다! 그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가만한 나날」의 ‘경진’은 첫 출근부터 “자신을 프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감정연습」의 ‘상미’는 정직원이 되기 위해 인턴생활을 같이 했던 ‘태영’의 실수를 은근히 바랐고, 그를 미워하게 되었다. 「드림팀」의 ‘선화’도 회사에서 만만해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배웠다. 그녀의 팀장이었던 ‘은정’은 ‘선화’에게 고시원 산다는 얘기를 회사사람들에게 하지 말라고 조언했고, 선화가 “조금이라도 무르게 대응하는 듯하면 파티션 너머에서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사회생활이 그렇잖아. 사람들 시선이 그렇잖아. 남자들이 다 그렇잖아. 한국 사회에서 아직 여자는……”,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는 후배에게 ‘은정’은 자신이 배웠던 매뉴얼대로 ‘사회생활 식’ 배려를 해주었다. 마키아벨리가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3) 라고 말했듯, 사회생활의 안전한 출발을 위해 청춘들은 상대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비웃듯 입을 꽉 다무는 표정’(「감정연습」)의 가면이 필요했다.
가면과 가면 속에 살아있는 자아 사이의 틈은 얼마큼 될까? ‘겉보기에는 구도가 근사하고 멋지지만, 정작 사람이 활동하기에는 엉망인, 계단이 너무 가파르고 좁아 오르내릴 때마다 굴러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감이 드는’(「감정연습」) 건물 쯤 되려나. 「가만한 나날」의 ‘경진’이 회사에서 맡은 역할은 ‘채털리 부인’이라는 계정으로 의뢰받은 광고를 최대한 일반인이 작성한 ‘솔직한’ 후기답게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일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채털리 부인’, 아닌 ‘경진’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으로부터 “채털리 부인님이 올린 후기를 보고 구매해서 쓰기 시작했거든요. 날마다 사용한다고 했는데 괜찮으신지……”라는 쪽지를 받는다.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하는 동기를 보며 조금은 우쭐해하기도 하고, ‘프로답게’ 열심히 일만 했던 경진은 존재하지 않는 ‘채털리 부인’이 자행한 폭력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그리고 쪽지를 받은 바로 다음날 그녀는 클릭 한번으로 ‘채털리 부인’을 정말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드림팀」의 ‘선화’는 ‘은정’이 가르쳐 준대로 회사 사람들에게 “미간을 찌푸리고 딱딱하게 말을 했다”가도 “꼭 이렇게 해야만 할까?”라며 당장이라도 ‘사회생활 식’ 가면을 벗어버리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선화는 ‘은정’을 오랜만에 마주하고도 “말을 많이 하면 말리는 거”라고 다짐할 정도로, 이미 그 가면을 쓰는 것에 익숙해져있었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은정’을 뒤로 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면서 ‘선화’는 자기도 모르게 ‘은정’처럼 후배들을 대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일상의 모순들을 마주하면서 가면과 가면 속의 자아 사이의 틈은 커져 가고, 가면 속 자아는 마침내 그 틈을 비집고 나와 타자에게 위로받기를 원한다. 「가만한 나날」의 ‘경진’이 팀장에게 문제가 된 살균제를 회사에서 리뷰 한 적이 있다고 말했을 때, 팀장은 “그랬어? 그거 진짜 나쁜 놈들이더만. 어떻게 그런 일이 있냐.”라며 서둘러 대화를 끝내고 걸음을 빨리 할 뿐이었다. 「감정연습」의 ‘상미’는 한밤중 119 구급대원이 아랫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어쩌면 자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옆집 여자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그 여자는 “문 부수고 들어간 다음에 복구하는 중이래요.”라며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상미는 “그 여자가 자기에게 뭔가 더 따뜻한 말을 해주길, 심지어 가벼운 포옹을 해주기를 기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면 속 ‘경진’과 ‘상미’가 원했던 것은 ‘너 거기 있었구나!’, ‘그 속에서 많이 힘겨웠겠다.’식의 공감 섞인 위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참히 좌절되며, 오히려 “왜 이래? 뭘 원했던 거야?”(「가만한 나날」)라며 스스로를 다그치기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면은 틈이 없도록 더욱 꽉 맞게 고쳐 씌워지며, 가면 속 자아는 “이제 시작인데 왜 끝인 것만 같지”(「감정 연습」)와 같은 아포리아적 불안에 빠지게 된다.
3) 낯선 만큼 황홀한 불안
「얕은 잠」의 ‘미려’는 난생 처음 서핑을 배우고, 서핑 보드 위에서 ‘얕은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 해변의 풍경은 달라져 있었고, ‘미려’에게는 그녀가 매사에 -심지어 버스 정류장을 찾을 때에도- 의존했던 남자친구 ‘정운’도, 시계도 없었다. 고민 끝에 그녀는 용기를 내서 낯선 집에 도움을 청했고, 그 집의 남자는 집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녀를 “파도에 떠내려온 아가씨”라고 소개했다. ‘미려’는 “파도에 떠내려온 아가씨”답게 낯선 파도에서 용기 낸 시간들을 생각했다. 보드를 짚고 일어서는 순간, 어쩌면 미세하게 떨렸을 “가슴과 배와 다리가 서늘”해지는 그때의 감각을 떠올렸다. 낯선 해변에서 길을 잃고 낯선 집에 오게 된 ‘미려’는 서핑 보드 위에서 얕은 잠을 잘 때처럼 “자신이 편안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과 키스」의 ‘준희’는 마치 옛 애인을 추억하듯 ‘현진’과 만나고 헤어졌던 때를 회상한다. ‘준희’는 당시 H를 만나고 있었고, H는 ‘현진’의 만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렇게 처음에는 “남편의 애인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여자처럼” 경계하는 마음으로 ‘현진’을 관찰하다가, 어느새 ‘준희’는 ‘현진’에게 빠져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준희’는 ‘현진’이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낯선 동네의 낯선 공간을 물색”했는데, 그들이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장소도 서로 모르는 사람의 집이었다. 그날 밤 둘은 “준희, 너 H 만나니?” / “결국 그거였구나.” / “뭐가 그거예요?”라며 끝맺지 못한 대화로 비 오는 아침을 맞았고, ‘현진’은 우산 속에서 ‘준희’에게 입을 맞추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다. ‘준희’가 처음 ‘현진’을 만났을 때, 그녀는 “가슴 아래쪽에서 조각 하나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느꼈다. 이후 ‘현진’과 몇 번 더 만나게 된 뒤에도, 그녀는 ‘현진’이 이유 없이 자신을 “두렵게 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현진’을 떠올리면 불안함이 앞섰던 ‘준희’의 그 모든 떨림은 사랑이었을까? “타액을 섞듯 기억을 교환”했던 ‘현진’과 ‘준희’의 이야기는 『항구의 사랑』(김세희, 민음사, 2019)의 ‘준희’를 통해 세밀하게 확장된다.
김세희는 ‘청춘’에 대해 “이미 지나갔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되는 것”4) 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시대의 2030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김세희는 청춘들에게 애써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다만, ‘흔들리는 불안’과 달리 ‘아프지 못하는 청춘’이자 ‘피지도 지지도 못하는 꽃’과 같은, ‘갇혀있는 불안’에 빠진 혹은 빠지게 될 이들에게 불안한 인물들의 불안한 이야기를 건넬 뿐이다. 불안한 연말이다. 어떤 이들은 사회생활의 출발에서 낙오되어 불안해하고, 어떤 이들은 (첫)출근을 앞두고 불안해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안한 선 위에서 ‘미려’와 ‘준희’를 닮은 춤을 춰보는 것은 어떨까? 여전히 불안하지만 새로운 떨림을 느끼는 몸짓으로.
출처
1) 정민권, “아서가 아닌 조커가 주는 ‘위험한 메시지’”, 에이블뉴스, 2019.12.09.
http://www.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06&NewsCode=000620191206173349117112
2) 박지훈, “<조커>의 폭력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문제와 우리 시대의 문제”, 씨네21, 2019.10.17.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4058
3) 알랭 드 보통, 『불안』, 은행나무, 2011, 124-125쪽.
4) 신연선, “이제 진짜 작가가 된 느낌이에요 (G. 김세희 작가)”, 채널예스, 2019.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