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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Apr 22. 2020

거짓말을 치기

거짓말 미로 탈출기

 

거짓말을 ‘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띠로 내 주변을 둘러싸는 거다. 신속하게 나를 보호하고 위로하는 일이다. 거짓말을 친 ‘그 공간’은 가건물과 같아서 쉽게 부서져버린다. 그래서 거짓말을 ‘두른다’ 거나 ‘짓는다’ 보다 좀 더 일회적인 성격이 강하고 부실해 보이는 ‘치다’라는 단어를 쓰게 된 것! 아무튼 공간이 부서진 후에 거짓말이라는 띠는 빠르게 내 통제 밖의 일이 된다. 이후 나는 길에서 두루마리 휴지처럼 구겨지고 길게 늘어져 발에 치이는 거짓말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제야 아직 얼룩이 남아있는 그것을 주어서 ‘이 거짓말로 내가 뭘 닦은 거지’라고 생각한다. 아마 지금의 이 눈물보다는 더 더러운 것을 닦았을 텐데...     


내가 제일 치(우)고 싶지 않은 거짓말은 ‘지금 이후에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은 좀 슬퍼지자’이다. 난 지금 나의 몸과 얼굴과 조금의 신념조차 갖고 있는데도, 자연스럽게 ‘좀 더 갖춰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아마 지금의 부족함을 위로하기 위해서겠지.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더 잘하게 될 거야. 아직 덜 배워서 그래. 내공이 부족해서.라고 거짓말 치지 말자. 엄밀히 말하면 이건 더 거대한 거짓말 안에 겹겹이 거짓말들이 설치되어 있는 경우다. ‘하다, 하다, 가다, 가다 보면 언젠가 비로소 완벽하게 갖춘 상태가 있다’는 거짓말. ‘완벽한 끝이 있다’는 거짓말! 언제쯤 이 거짓말의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상태로 태어나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로 죽는다!     


조급한 마음으로 거짓말의 미로에서 빠져나왔을 때, 비로소 나는 전혀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빈 뜻으로, 자발적인 그러나 무의미한 내 시간과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만든다기보다 마련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하다.) 이것들은 정말 소중하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기 좋은 노래를 발견하고 노래 제목과 노래를 부른 가수를 검색해볼 때, 책을 소리 내어 읽을 때, 책의 문장들을 기록해둘 때, 쓸데없는 글을 쓸 때, 글을 다 쓰고 조그맣게 소리 내어 읽어볼 때, 글이 정말 마음에 든다면 녹음해서 (내 글이고 내 목소리여서 조금은 오글거리지만) 여러 번 들어볼 때, 눈치 보지 않고 멍청한 그림을 눈과 어깨가 아플 때까지 그릴 때, 이전에 적어두었던 글을 다시 읽어보며 더 좋은 문장으로 고쳐 적을 때, 용기 내지 못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자책, 후회, 그리움, 의심 같은) 마음 없이 떠올릴 때, 짜증 없이 슬퍼질 때, 가만히 자는 가족들의 큰 숨소리를 듣고 있을 때,    

  

내가 멋있는 것을 갖고 있고 하고도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어질러진 책상을 간단히 정리하고 잠을 자러 가야지.




BGM : 가수 이랑의 앨범 '신의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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