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과 실수에 대한 두려움
설마 내일이 수능? 완전히 까먹고 있었네. 문제집도 하나 없고, 공부도 안 했는데 어떡하지!
대학 졸업이 코앞인데 아직도 수능 전날 백지상태가 되는 꿈을 꿉니다. 꿈인데도, 수능 날 눈물이 나올 정도로 떨렸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비슷한 꿈에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매번 허겁지겁 핸드폰을 확인하며 깨는 제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요. 시험을 치른 날이면 더 자주 이런 꿈을 꾸는 것 같은데, 시험이라면 덜덜 떨며 긴장하는 성격 탓인듯합니다.
저는 시험을 앞두고 "실수도 실력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이 가장 무섭습니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문제를 풀거나 말을 해야 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조여 오는데, 한 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니요. 그런데 실수의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애매모호해서, "다시 시험장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텐데......" 하는 생각이 저를 더욱 괴롭힙니다. 분명 알고 있었는데 시험 때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들이 불어나고 불어나서, 결국 실패에 대한 자책은 모두 저 자신을 향하게 되죠. 그래서 시험하면, 날 것 그대로의 실패와 실력을 마주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요즘 취업 준비가 한창인 주변 친구들을 보면, 시험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도 함께 느껴집니다. '서류에서 떨어지면 어떡하지? 면접은 가야 할 텐데……', 전전긍긍하며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는 것이 아마 모든 취업 준비생들의 마음이겠죠.
2년 전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언니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어요.
"언니 요즘 어떻게 지내?"
"취업은 반포기 상태야. 하고 싶은 일이 이제 뭔지도 모르겠고, 자격증 따면서 지내고 있어."
"자격증?"
"한국사, 컴퓨터, 영어, 중국어…… 뭐, 이것저것 스펙도 쌓을 겸 겸사겸사 준비하고 있어. 근데 이 생활도 나쁘지 않아, 은근 재밌어."
처음에 저는 이 언니가 이제 시험을 즐기는 경지에 도달했구나 싶었는데,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자격증 시험을 보다 보면, 합격과 실패를 떠나서, 은근한 희열이 느껴진다는 것이에요.
"자격증 시험은 급수도 정해져 있고, 점수도 나오지, 근데 취업은 합격 아니면 불합격이잖아. 조건이 안돼서 서류에 지원조차 하지 못하거나, 서류에서 떨어져서 면접에는 아예 가지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까, 한 달에 한 번씩 도전의 기회가 주어지는 자격증 시험이 오히려 마음 편한 것 같아."
시험은 모순된 두려움입니다. 시험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는 실력을 영영 발휘하지 못하고 도태될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다가도, 시험을 보고 나서는 실수와 함께 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커지니까요. 시험에 대한 양가적인 불안에서 마구 흔들릴 때, 시험 앞에서 떨며 당황하고 실수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당장 시험을 앞두고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어느 순간의 시험을 의식하며 긴장하게 되는 것이겠죠.
저는 지금 일주일 후에 있을 시험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시험 때문에 두려웠을 혹은 두려울 감정을 들여다보고 나니, 실수하게 되는 제 조급한 마음도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시험 결과와 저의 실수에 대해 돌아보려고 합니다. "실수도 실력이다"라는 말로 자신을 몰아세우기보다는, 실수는 '내가 두려움에 맞선 자리'라고 생각해 보려고요. 실수 때문에 실패했다고 자책하기보다, 우선 저 자신을 다독이면서 두려움과 마주하려고 합니다. "실수도, 할 수 있는 거지"라며 실수를 응원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