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연희살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챠오챠오 Jul 22. 2020

연희살이를 열며

연희살이

* '연희살이'에는 정서적 폭력, 물리적 폭력, 자살, 그리고 정신과 상담이 묘사되어 있으니 트리거를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고향 집 앞에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계곡이 하나 있다. 딱히 깊지도 물살이 세지도 않아 어린 때의 나는 매일같이 계곡에 들어가 잘박거리곤 했다. 


 여섯일곱 살 즈음의 어느 여름날, 며칠 동안 비가 쏟아지다 오랜만에 하늘이 맑게 갰다. 오늘은 왠지 계곡으로 나가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둑 위에 서서 둑 아래 요동치는 물살을 보니 아름답게 햇빛에 반짝였고,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맑게 갠 하늘은 푸르렀고, 부는 바람은 상쾌했고, 나는 발을 헛디뎠다. 정신 차릴 새 없이 나는 물살에 휩쓸려갔고, 계곡 여기저기 부딪혔다. 거센 물살에 담금질당하며 포착한 물결들은 끔찍할 정도로 밝게 반짝이며 부서졌다. 얼굴의 온갖 구멍으로 비릿한 물이 들이닥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살고 싶었다. 살아야 하는데, 죽음에 가까워져도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살고 싶어요. 살려주세요.      


나는 결국 살아남았지만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던 그 감각은 여전히 생생하게 내 곁에 남아있다. 




 나는 서울시 연희동에 산다. 연희동 주민이 된지는 벌써 4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연희동에 사는 같은 학교 선배인 Z의 자취방 객식구로 지내는 것으로 시작해 반년 동안 연희동 안에서만 두 번 이사를 했고 근 3년을 Z와 함께, 최근 반년은 혼자 지냈다.


  연희동은 좋은 동네이다. 대학 옆 동네지만 조용하고 깔끔하며, 술집이 많지 않아 밤에 취객도 별로 없다. 교통편도 좋고 무엇보다도 맛있는 식당이 많다. 이런 여러 가지 요건들 외에도 밝은 분위기가 사람을 여유롭게 만드는 동네이다. 하지만 나에게 연희동은 단순히 '좋은 동네'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연희동에 살며 내 인생 최악의 순간과 함께 큰 터닝 포인트를 맞았고, 이곳에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쟁취했기에 더욱 이곳에 애착이 간다.


 연희살이는 나의 집나의 가족에게서 도망쳐 연희동에 뿌리내리기까지의 이야기이다. 나는 짧은 평생을 내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헤매며 나의 삶과 죽음과 사람들 간의 관계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연희동에 정착하고 나서야 그 답을 조금이나마 얻으며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더듬거리듯 공감하거나 어떠한 인상을 받아 긍정적 변화를 겪는다면 상당히 기쁠 것 같다큰 감명을 줄만큼 유려한 문체도그다지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온 이들이 소소한 공감과 함께 위로를 받기를 바라며 이 재미없고 무겁기만 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