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지하철 생활자라면 느긋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마포구청역에서 삼성역까지 출퇴근하는 직장인입니다. 몇 가지 통근 루트가 있지만 6호선을 타고 합정역까지 간 다음 2호선으로 환승하는 것을 가장 선호합니다.
집을 나서 마포구청역에 당도한 순간부터 지하철 생활자로서의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첫 번째 코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열차에 탑승하는 것입니다. 도태되는 순간 지각의 나락으로 떨어지니까요. 출근 시간대 합정 방향의 6호선은 평소와 다르게 끔찍합니다. 특히 합정역 2호선 환승 지점과 바로 연결되는 6-2번 플랫폼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무릇 지하철 생활자라면 '저 인간 시루가 아무리 빽빽해도 이 한 몸 욱여넣는 건 문제없다'는 느긋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일단 마음을 먹고 열차에 발을 들이면, 몸도 들어갑니다. 참고로 빠른 환승을 하려면 조금 위태롭지만 출입문 바로 앞에 서는 것이 유리합니다. 안정적인 포지션을 추구하다 중심부로 밀려들어 갈 수도 있으니까요.
두 번째 코스는 환승입니다. 열차가 환승역에 정차하는 즉시 누구보다 빠르게 튀어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각 플랫폼에서 썰물처럼 터져 나오는 사람들과 엉겨 병목현상을 겪을 수 있습니다. 선두를 유지하며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다 보면 운 좋게 정차 중인 2호선 열차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때 무사히 탑승한다면 이후 큰 난관은 없다고 할 수 있죠.
세 번째 코스는 자리 선점입니다. 합정에서 삼성까지 가는 긴 여정 내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확률은 희박합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객실 내 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자리는 보이는 즉시 차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탑승 시 바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없다면 배팅을 시도해야 합니다. 웬만하면 영등포구청부터 구로디지털단지 사이에서 내릴 만한 승객 앞에 서는 것을 추천합니다. 어쩐지 IT 기업에서 일할 것 같은 중년 남성의 복장을 한 사람을 물색하는 것이죠. 지금껏 생각보다 높은 성공률을 기록했습니다. 당산에서 내릴 사람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운이 따라줘야 합니다. 주로 캐주얼한 복장의 젊은층에 배팅하는 방법인데 운이 나쁘면 강남권 가는 사람들이 당첨될 수도 있습니다.
세 코스를 완수하면 충분히 자축해도 좋습니다. 이제 사내에서의 고행만 견디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