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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웃사이드 더 시티 Jan 16. 2021

또다른 사이비, 신사도 교회를 나오며

쿤달리니와 토론토 블레싱

신사도 운동이란?

새로운 시대에 그리스도가 있던 사도들과 같이 기적이나 은사를 일으키는 운동이다. '빈야드 운동', ‘, 토론토 블레싱’, ‘쿤달리니’, '은사주의 운동' 등으로도 불린다.



신사도에 빠지게 된 계기

신천지가 접근하기 전 원래 다니던 교회는 신사도 교회였다. 이단이라는 말은 많았지만 내 생애 첫 교회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그 교회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딱히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신사도 운동이 뭔지도 몰랐다.)

대략 이런 분들을 앞세우는 교회였다

특히 수련회 때 은혜(?)가 많이 일어났었는데 목사님이 한 명 한 명 안수 기도(임파테이션)를 해주었었고 치유, 집단 방언, 쓰러지거나 몸부림치며 뒹구는 행위와 강렬한 경련, 기이한 울부짖음 등의 현상이 나타났었다. 나 또한 수련회에서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흐느낌을 느꼈는데 그 뒤로 원하던 회사에 기적같이 합격하게 되어 기독교를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그게 하나님의 기름부음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톰 크루즈도 사이언톨로지에 입교하게 된 계기가 평생 앓고 있던 난독증을 종교를 통해 극복하게 되어서 사이언스톨로지를 믿게 되었다. 인간이 외계인의 환생이고 엉터리 기계로 정신 분석을 할 수 있다는 교리는 이만희가 영생한다는 교리보다도 코미디지만 무려 전 세계에 8백만 명이 믿고 있다.

간절히 바라던 것이 기적같이 일어나면 자칭 예수이건 SF작가이건 쉽게 믿게 되기 마련인데 신사도 운동은 질병 치료, 집단 방언, 기이한 현상, 금이빨, 금가루 등 직접적이고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더 쉽게 미혹 된다.



쿤달리니와 최면의 유사점

쿤달리니
최면 기법



나오기로 결심한 계기

신천지의 미혹에서 벗어나 다시 원래 교회로 돌아가니 신천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하나씩 보게 되었다. 요한계시록과 종말론을 강조하는 점, 목사님이 신격화 되어있고 엄격한 탑다운 체제라는 점, '순종'을 거듭 얘기하며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순종 하게끔 길들이는 점, 매주 죄 고백을 통해 셀에 더 종속되게 하는 점, 교인들이 교회에 모든 시간과 삶을 할애하지만 현실에서의 삶은 나아지지 않거나 경제적인 문제를 간과하는 점, 극우를 지지하는 점, 청년들이 많은 교회라는 점, 대부분의 청년들이 같은 교인끼리 결혼해 아이도 같은 교인으로 자라는 점, 탈퇴자들을 배도자 취급하는 점 등을 보며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5년간 다닌 교회는 사탄마귀 교회였다니..


물론 신천지처럼 거짓말로 모략 전도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구조나 세뇌 방식은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가정 파괴 사례나 이단이라는 증언들이 더 많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제사장이 코 앞인데 교회 안 나와서 되겠냐는 절친의 말에 신천지가 오버랩 돼 보이는 건 뭘까...

결정적으로 나오게 된 것은 왜 우리 교회는 신천지나 이단의 문제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는지에 이의를 제기했더니 그것은 하나님의 역할이니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맡길 것을 요구했고, 내가 이단의 문제에 대해 자꾸 파헤치면 되려 악한 영에게 사로잡힐 수 있으니 그만두라고 질책했다.

최근 대부분의 교회들은 이단 대처에 힘을 쓰고, 예방 교육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문제의 근원을 보지 않고 아예 문제 자체를 덮어버리는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 교회가 이단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회피하는 것은 똑같이 이단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토론토 블레싱의 메카, 토론토 신사도 교회 출신 추수꾼을 붙힌 신천지

내게 접근한 신천지인 P는 신천지 이전에 토론토의 백인 교회를 다녔다. 그가 가끔씩 비유풀이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했지만 신사도 사상을 더 많이 얘기한 걸로 봐서 신천지 이전 교회가 토론토의 신사도 교회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가 내게 매일 얘기했던 건 Consciousness, Awareness, Character, Personality, The universe, Discipline, Meditation, Transcendence과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것은 훈련을 통해서 깨우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종로 Y 모 어학원에서 그가 가르친 강의라고 올린 사진에는 consciousness를 3단계로 나눠서 설명함. (원 안에 원 이런 식으로 그렸었는데 19년도 11월 종로 Y 어학원 원어민 회화들은 사람들은 더 자세히 알 듯)

그리고 매일 방에서 Meditation을 했었는데 무릎 끊고 기도하는 기독교식 '묵상'이 아닌 요가 자세로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는 '명상'이었고, Ekhart Tolle의 The power of now를 꼭 읽으라고 보냈는데 이 저자는 뉴에이지 명상의 대가인 영적 지도자(?)다. Ramana Maharshi라는 힌두교 구루에게 영감을 받았고 힌두교, 불교 영성에 대해서 많이 얘기하는데, 원래 신사도의 기원이 힌두교에서 구루들이 초보 영성 수련자들에게 임파테이션 할 때 나타나는 쿤달리니 각성 현상에서 넘어왔는데 쿤달리니의 본질은 몸에 잠들어있는 뱀을 깨우는 것이다.

약쟁이 P가 내게 간증한 내용은 하나님의 빛과 음악을 듣고, 우주를 보았고, 죽었다 깨어나니 칠흑뿐인 어둠이었다는 등의 내용이었고, 히피처럼 치렁치렁 풀어헤친 헤어 스타일과 기괴한 패턴의 티셔츠, 헤비메탈에 유독 집착했는데 전형적인 기독교인보다는 뉴에이지에 심취한 히피로 보였다.

실제 쿤달리니 각성은 LSD 같은 환각제 증상과 매우 비슷하고, 존 웜버 교회의 빈야드 운동을 전파했던 히피들은 마약을 즐겨했다.

사실 그가 내게 강조하던 영적 깨우침, 뉴에이지식 수행은 신천지가 강조하는 성경 비유풀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신사도 운동의 어노인팅(=쿤달리니)은 신천지에서 지향하는 바는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심지어 방언하는 교회들도 비판함)

내가 다니는 교회를 AI 뺨치게 분석해 맞춤형 추수꾼을 붙인 신천지의 용의주도함은 신사도의 매직쇼를 뛰어넘는 소오름이었다. 내가 넘나 초신자여서 처음부터 세뇌시키는 건 힘들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토론토에 있던 당시부터 한국에 오기까지 2년에 걸쳐서 천천히 접근했고, 이 신사도 교회의 교육 시스템을 활용해 어느 정도 베이스가 쌓이고 난 이후 그때부터 다니는 교회에 가는 것을 막으며 비유풀이를 가르쳤다. (밥 다 지어놓으니 숟가락만 얹는 야비함에 지렸따)

하지만 뭔가 포인트를 잘못 잡은 듯한데 당시 전 교회에 관심이 있던 건 부흥과 기름부음이었지 60-70년대 히피 껄렁이들의 뉴에이지 문화나 사상이 아니었다. 가도 너무 멀리 갔다.



교회를 나오고 나서

겨우 돌아온 곳도 이단이었다는 것에 대한 허탈감이 밀려왔고, 종교를 예전과 같이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또 몇 달간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서 몸에서 아편을 제거한 것처럼 후유증이 밀려왔다. 종교 중독에 걸린 건 신천지인들 뿐만 아니라 나 또한 포함되어 있던 것 같다. 교회를 나오며 자연스럽게 배도자가 되었고, 10년 지기 친구와 동고동락하던 교회 친구들은 모두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나는 신앙을 저버린 배도자라는 죄책감도 함께 왔다.

다른 교회를 알아보려는 노력을 안 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악한 영을 접한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을 접신시켜주겠다는 이상한 전도사와 내 신앙심이 부족한 거라고 나무라던 다른 교인들과 이야기하고 나니 다른 곳에 가도 똑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종교의 카오스에서 헤맬 때 내 곁에서 지지하고, 문제를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일깨워주었던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무신론자들이었다.

후유증에 시달릴 때 끝까지 지지 해준 친구가 한 번은 "Do you really need religion?"라는 말을 던졌는데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흔쾌히 Yes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종교가 정말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종교는 의무라고 생각했고, 영적 체험과 복을 더 받고 싶다는 마음에서 다녔던 것 같다. 애초에 내 신앙은 잘못된 주춧돌들을 쌓아왔기 때문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하나님이 있다고 믿고 싶지만 현재는 종교보다는 과학과 역사, 심리학을 더 신뢰하고,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일까라고 고민하기보다는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더 고민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내 인생에서 뉴 에이지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칼 마르크스의 시대가 도래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칼 마르크스가 있던 당시 아편은 마약으로도 사용되고 진통제로 사용되었다. 진통제는 치료제가 아니기에 단지 '통증을 가라앉히는 수단'으로 쓰이는데 오용하면 위험에 이른다. 그 증거로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중독으로 죽음까지 갔다가 도파민을 자극할 만한 다른 대체제를 찾아 사이비 마약 카르텔의 본거지인 한국까지 온 당사자 P를 보면 도파민 중독이 얼마나 위험한 지 알 수 있다.



한국에는 어째서 유난히 교회가 많을까? 전국 거리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건 빨간 십자가다. 그만큼 아픔과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이기 때문에 구급이 필요한 게 아닐까?

사이비 종교들만 비판할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한국에는 왜 유독 사이비가 많은지에 대한 원인을 찾고 사회가 방치하고 외면한 문제점들 먼저 고쳐나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하나님의 손에만 맡기는 것은 혼돈과 파괴를 낳는다. 이 시대에는 관용을 빙자한 방관보다는 사회의 질서를 위한 강력한 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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