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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웃사이드 더 시티 Apr 24. 2017

유럽 생활이 행복한 이유

새로 시작한 유럽 생활은 말 그대로 천국이었다. 처음 한 두 달은 아시아 국가들에서의 빠르고 편리한 생활이 그리웠지만 점차 나는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졌고 유럽은 내 인생의 목적지가 되었다.

이 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느리게 사는 삶이 이렇게 행복한 삶인 줄 평생 몰랐겠지...


유럽에 지내면서 친구들이 항상 내게 얘기한 것은 "Enjoy your life"였다. 처음에는 이 친구들은 항상 놀 생각밖에 안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처럼 영어 실력을 더 빨리 향상하고, 좋은 직업, 좋은 파트너를 빨리 찾아야 한다는 걱정에 매일 시달리며 지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경치가 눈 앞에 펼쳐지 있어도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차 적응하면서 그 친구들이 말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저녁이 있는 삶은 삶을 더 기름지고 풍부하게 한다. 유럽 친구들은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정치, 역사, 예술, 기술, 철학, 연애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그들의 전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전공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또 본업 외에도 취미 생활로 할 수 있는 파트타임 잡을 갖고 있는 친구들도 많은데 굉장히 균형 있는 삶을 산다. 10대 친구들도 스스로의 길을 찾기 위해 배낭 하나메고 혼자 여행을 다니곤 하고 자신만의 뚜렷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 학생 시절 책상 앞에서 공부만 하며 좋은 대학,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내 인생의 전부였던 나의 모습과는 참 대조되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뭔지 어릴 적부터 다양한 시도를 하며 찾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또한 유럽은 나의 편협한 사고와 편견을 깨부수게 만든 곳이기도 하다. 단순 음식점 종업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프로페셔널한 자세로 임하며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그 나라의 역사까지 설명하는 모습은 단순 웨이터라는 편견을 지워버리게 만들었다. 심지어 청소부 아주머니도 "I always make the best condition. Trust me." 라며 자신감에 찬 눈빛으로 일하는 모습이 참으로 빛났다. 그분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도 감동시키고 존경하게 만들었다. 비록 청소부 일지라도 그녀는 자신감이 넘치고 행복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가 내게 말한 "Enjoy your life. Life is too short"는 내 가슴 한편에 남아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를 생각하게 만들었고, 직업과 직책보다 그 직업에 임하는 자세를 가르쳐주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그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딴생각과 걱정을 하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다고 한다. 항상 5년 뒤, 10년 뒤 먼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행복하게 살지 못하며 청춘을 흘려보냈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오늘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한 이 순간을 보내는 것이 그들이 말한 Enjoy your life 였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 찬란한 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매너들이 일상생활에 자리 잡혀있는데 문이 닫히기 전에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매너와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만큼 느리게 걷고 느리게 사는 곳이기에 남을 배려하는 여유들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길에서 만나서 반갑다며 방금 사온 빵을 나눠주시던 스페인 아주머니,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와 음식을 나눠주신 독일 아주머니, 이탈리아 음식을 만들어준 이탈리안 친구들, 안면도 없는 나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신 프랑스 아저씨, 친구가 죽었을 때 슬픔을 같이 공유해주던 파리지앵들, 심카드를 사면 돈 아까우니 윗층의 멋진 까페에서 wifi를 사용하면서 뷔르셀 시내를 둘러보라던 벨기에의 휴대폰 가게 아저씨, 자전거로 암스테르담 투어를 시켜준 네덜란드 청년, 그들의 따스한 정은 얼음장 같았던 나의 마음을 녹였다. 콩 한쪽도 나눠먹는 인심을 이 먼 땅에서 느꼈다. 내가 이 곳에 있지 않았더라면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친구들을 어떻게 사귈 수 있었을까? 내 직업이 무엇이건 나이가 어떻건 어디서 왔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고 진정한 친구가 되어준 유럽 친구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하다. 유럽은 내게 진정한 인간관계를 쌓을 수 있게 만든 곳이었다. 부끄럼을 많이 타고 소심한 이탈리안 친구, 쾌활하고 유머러스한 독일 친구, 여성을 존중하는 무슬림 친구, 룸메이트들을 돕기 좋아하는 시리안 난민 등을 만나며 그 사람의 국적과 피부색,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유럽 생활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깨닫게 하고, 인종차별과 내 안의 편견들을 없애며 세상에는 다양한 사고와 생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물론 지내면서 어려운 일들도 겪었다. 돈이 바닥이 나서 현지인들 집 소파에 자면서 얹혀산 적도 있었고, 길을 잃어버려 미아가 된 적도 있었고, 인종차별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나쁜 일보다는 더 좋은 경험들과 좋은 사람을 만났기에 유럽에서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이 공간에 모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행복한 경험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유럽에서의 슬로우 라이프가 그리워 스마트폰을 보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보단 걷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공원에 산책 나와 햇살 아래 여유를 즐기며 그때의 추억들을 회상하곤 한다. 반드시 이 행복했던 경험을 다시 되찾으러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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