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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웃사이드 더 시티 Dec 06. 2017

성역할, 성평등에 대해서

유럽으로 오고 나서의 변화

남자친구와 나와의 관계에는 남녀 간의 역할이 따로 없다. 우리는 그저 서로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 그가 요리를 하면 나는 설거지를 하고, 내가  청소를 하고 있으면 그는 빨래를 갠다. 그가 꽃을  오면 나는 그를 레스토랑에 초대해 저녁을 산다. 이번 여름 그가 유럽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게 비행기 티켓을 보냈다. 나는 반대로 그가 아시아 문화를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에 비행기 티켓을 끊어주었다.    누구도 그러기를 요구하지 않았고, 남자 혹은 여자이기 때문도 아니다.  해야만 하는 룰도 아니다. 단순히 상대방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하는  전부이다.

굳이 남자/여자다움을 분류해야 한다면 나는 좀 더 남성스럽고 그는 여성스러운 편에 가까운데 나는 혼자 세상을 탐험하고 야외 활동하는 걸 좋아하고 Independent 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반대로 남자친구는 집 안에서 조용히 독서하며 집안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부끄러움이 많다. 그러나 그는 내게 직업도 여행도 그만두고 집 안에서 내조하며 여자다워지길 강요하지 않으며, 나 또한 그에게 사회생활을 잘하고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데이트 비용을 더 내고 리드하며 남자다워지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성향이 다른 두 사람으로 인식하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 가르쳐주면서 해결한다.


나는 요리를 음식물 쓰레기로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어서 내가 만든 음식을 나누어 줄 때마다 플랫메이트들이 피하는데 남자친구가 요리를 가르쳐 준 이후로 적어도 플랫메이트들이 도망가지 않는 수준에 도달했다. 반대로 내가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상황에는 남자친구를 데려가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맥을 넓힐 수 있게 하고, 여행 갈 때 가이드하면서 플랜 짜는 방법을 가르쳐주어 남자친구도 혼자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여자가 집안일을 잘하고, 남자가 사회생활을 잘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스스로 그 역할을 맡고 싶다면 자발적으로 하면 되는 것이고, 상대방도 그에 동의한다면 문제 될 것 없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강요를 한다면 그것은 연인 혹은 부부의 관계가 아닌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가까울 것이다. 자신의 성을 이용해 권리를 남용하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실 우리가 남 혹은 여가 아닌 '같은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유럽이라는 환경에 있어서인 이유가 크다. 이 곳에는 단순히 남과 여로만 구분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가치관과 성별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우리 옆 집 이웃은 레즈비언 커플인데 여성의 몸을 갖고 있지만 자신들이 남성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남자친구는 마켓에 갈 때 종종 남성의 몸이지만 여장을 한 사람들에게 데이트 권유를 받기도 하는데 "그래서 넌 그 사람이 남자라고 생각해, 여자라고 생각해?"라고 물으니 "글쎄? 모르겠는데."라고 말한다. 한 독일 여성 친구는 이사갈 때 기꺼이 따라와서 "야, 나 무거운 거 잘 옮겨."하면서 짐을 들어주고 벽에 나사 박는 일을 도와주었다. 또 어떤 독일 남성 친구는 길가다가 여성들에게 가끔씩 캣콜링을 당하는데 수치심을 느낀다고 한다. 사실 이 곳에서 지낸 이후로는 무엇이 남자/여자다운 것인지 잊혀간다.

사회적인 시스템도 한 몫하는데 이 곳은 군대 의무제가 아니며, 여성들은 출산했을 시 적어도 6개월 이상 몇몇 국가의 경우 3년 유급 휴가를 받는다. 자신이 원할 때 다시 직장으로 복귀가 가능하기에 경력 단절로 인해서 전업 주부가 될 일이 없다. 직장 내에서도 그 누구도 여직원에게 커피를 타오라고 하지 않으며 남직원에게 무거운 짐을 옮기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각자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한다.

그리고 데이트를 하는 경제적, 심리적 부담도 적어서 어느 한 쪽이 기울어질 일이 적다.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을 물려받은 이 축복받은 땅에는 딱히 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활동들이 많기 때문이다. 날 좋은 날 집 앞에 있는 바닷가에 가서 같이 수영하거나 공원에 누워서 책을 읽고 절벽을 따라 트레킹 하기도 하고, 도시 곳곳의 유적지들을 찾아다니며 살아있는 역사를 경험한다. 인접 국가 간의 이동이 쉽고 비행기 비도 20-50유로 밖에 안 들어서 가끔 주말에 짧게 한 도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리고 홈 파티 문화이다 보니 집에서 친구들과 같이 요리하고 영화 보고 잡담하면서 지내기에 딱히 외식비나 데이트 비용이 발생할 일이 많이 없다. 집에서 요리할 때 Lidl 같은 대형마켓에서 식재료를 사면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 또, 지중해 특성상 일을 느슨하게 하는 분위기이고 수평적인 직장 문화이다보니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관계에 영향을 미칠 확률이 적다. 6시 칼퇴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는데 서로를 돌아보고 커뮤니케이션하기에 시간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여유가 많다. 유럽에 지내면서 가장 만족하는 것은 직장이 내 인생의 전부인 삶이 아닌 직업, 사랑, 인간관계, 취미생활 모두를 균등하게 배분하며 살 수 있다는 점인데 연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서로의 역할들을 균등하게 나눠 가질 수 있는 개념이 오래전부터 정착이 된 곳이기에 우리가 서로를 균등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게 아닐까 한다. 나는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나라와 성별을 떠나서 서로가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어디가 되었건 평등함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유럽에 있어도 불행한 커플들도 만났고, 극한의 환경인 홍콩에서도 서로 아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커플들도 만났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 무엇이 문제랴.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곳은 나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공간일 뿐, 이것이 가이드라인도 아니며 옳고 그름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어가면 될 뿐이다. 우리는 남녀의 역할에서 벗어나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저번 인종차별 관련된 포스트 글에 김치X들이 해외 나가서 돌아다니니까 인종차별을 당하는 거다, 거기에 대한 맞대응으로 한남X 등의 댓글들이 신고 처리되었는데 남혐, 여혐을 하는 두 부류 모두 딱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그들이 혐오를 부르짖어도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일반인들은 현실에서 모두 예쁜 사랑을 하며 행복하게 잘 살아간다. 세상에 자신을 인정해 주는 단 한 명의 짝 없이 소중한 청춘을 혐오의 감정에 사로 잡혀 낭비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참으로 딱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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