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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0 : 구상섬전』 독후감

2025년 12월의 독서

by 야간선비
한 줄 소감 :
양자물리학이 류츠신을 만났을 때


『삼체 0 : 구상섬전』,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다산책방, 2025


이 작품은 『삼체』로 유명한 중국의 SF 대문호 류츠신이 『삼체』 이전에 먼저 집필했던 2005년작 SF소설이다. 제목에 '삼체'가 들어가지만, 주인공 중 1명을 공유한다는 것과 작품 말미에 나오는 몇 줄의 내용 말고는 사실상 삼체 시리즈와는 딱히 연관성은 없다. 제목만 보면 프리퀄 같아 보이지만 전혀 아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독립된 작품이다.


구상섬전球狀閃電은 말 그대로 공 모양의 번개를 뜻하는 것으로, 실제로 가끔씩 관찰되는 자연현상이라고 한다. 주인공 '천'은 어렸을 적 구상섬전으로 부모님을 여의게 되고, 이를 계기로 구상섬전 연구에 인생을 바치게 된다. 주인공은 무기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여군 린윈 소령, 천재 물리학자 딩이 등과 만나게 되며 구상섬전의 신비로움을 하나씩 파헤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삼체』 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풍부한 각종 학문들을 동원하여 촘촘하고 방대한 세계를 부드럽고도 섬세하게 진행해내간다. 물리학, 양자물리학, 기후학, 철학, 군사학 등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작가의 역량은 정말이지 작품을 읽는 내내 입을 다물어지지 않게 만든다. 특히나 이 작품의 주요 소재인 양자물리학은 작품의 전반적인 신비로움과 긴장감을 조성하면서도 본 작품이 소설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게끔 문학적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책의 볼륨이 상당하고 잘 알지 못하는 과학 지식이 상당수 동원되지만, 작품이 너무 재미있어서 금방 읽게 된다. 2025년 연말을 이토록 멋진 작품으로 마무리하였으니 대단히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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