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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주독야독

2025년 1월의 독서

주제: 금주, 전업작가, 교통

by 야간선비

1. 슬슬 술 끊을까 생각할 때 읽는 책

슬슬술.jpg 『슬슬 술 끊을까 생각할 때 읽는 책』, 가키부치 요이치 지음, 정지영 옮김, 대성korea.com, 2021
○ 술은 음식도 기호식품도 아니다. 술은 약물이다.
○ 예전에는 기차에서도 흡연할 수 있었다. 상식은 갑자기 바뀐다. 술을 마신다는 것이 이상하게 취급되는 미래가 올 것이다.
○ 신체상으로 금주에 단점은 전혀 없으며, 음주의 장점 또한 전혀 없다.
○ 뇌는 금주를 학습하는 데에 90일이 걸린다. 3개월이면 술과 작별이 가능하다.


전형적인 신년맞이 결심을 위한 독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일본인이며, 의학박사이다. 도쿄 알코올의료종합센터의 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다고 한다. 책 맨 앞 장을 들추어보니, 원어(일본어)로 된 제목이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


sorosoro, osakeyameyokana.


찾아서 검색해 보니, 아래와 같이 나온다.


そろそろ, おさけやめよかな

소로소로, 오사케야메요카나


파파고를 돌려보니, '슬슬, 술 그만 마실까'라고 한다.


담배는 끊었지만 술은 끊기가 참 힘들다. 대학생 때부터 10년이 넘도록 피웠던 담배는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니 알아서 끊게 되었는데, 술은 그렇지가 않다. 힘들면 힘들다고 마시고 기분 좋으면 기분이 좋다고 마시는 나에게, 이제 술을 마실 때 필요한 이유와 구실 같은 건 사실상 필요 없게 되었다. 그저 술이 좋으니까 마시는 것이다. 어디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분명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


이 책은 시작부터 술을 정확히 정의 내리고서 내용을 전개시킨다. 술은 음식도 아니고 기호식품도 아니며, 다름 아닌 약물이라는 것이다. 각종 음식에 따라 어울리는 술의 페어링을 본능적으로 시도하는 나로서는 술을 밥상 위에 올라가는 엄연한 구성품으로 생각해 왔지만, 저자는 술을 마약과도 같은 의존성 약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문장을 읽자마자 신기하게도 술맛이 싹 달아나버리는 것을 경험했다. 내 영혼을 수백 번 적셨던 소주와 맥주와 막걸리가 학교 과학실 삼각 플라스크에 담긴 화학물질과도 같은 존재로 규정되고 나니, 벌써부터 금주에 한 발짝 다가간 느낌이다. 무엇이든지 정의를 어떻게 내리는지가 관건이다.


술과 인간의 관계는 계속 변화하는데, 음주문화는 현재 급속도로 바뀌는 중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이 책이 2021년에 출간되었으니, 4년간 그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그 결과는 더더욱 확연해졌을 것이다). 특히 본격적으로 술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일터에서다. 술을 마시지 못하면 눈치를 보고, 술을 강제로 권하고, 술로 영업하고, 술이 있어야 소통이 된다고 생각하는 전근대적 문화는 여태껏 모든 개인과 조직구성원을 술상 앞에 강제로 앉혀놓았지만, 저자는 이제 이 모든 게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술을 좋아하고, 자주 하지만 않는다면 회식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며, 두어 달에 한 번씩 하는 회식은 팀 내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주고 팀원 간의 친밀도를 높여준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술을 마시며 대화하면 대화도 좀 더 편하게 흘러가기 마련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결국 집단으로 술이라는 약물에 의존하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회식을 하며 서로의 술잔을 부딪혀야 속마음도 털어놓고 유대감도 형성한다는 것은 술 없이는 회사가 굴러가질 못한다는 것과도 같다. 저자의 말대로 술이 없는 회식은 실제로 현재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트렌드인데, 더 나아가 회식 자체를 고리타분한 구시대적 유물이자 꼰대들의 허물이라고 생각하는 풍토 또한 이미 널리 확산되었다. 실제로 나도 작년 한 해 동안 회사에서 공식적인 회식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내가 취직하고 처음 일을 했을 당시에는 회식을 한 번 했다 하면 멀쩡히 집에 돌아오는 경우가 없을 정도로 폭음을 권유하고 장려하는 분위기였는데, 격세지감이다(물론 회식날 나의 운명은 그날의 회식을 주도하는 상사의 음주습관에 따라 달렸다. 술 좋아하는 상사를 만나면 1년 내내 피곤하다).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술에 의존하게 되는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게으르고 너저분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알코올의존에 걸릴 것이라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사실은 그 반대였다. 자신에 대해 엄격하고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 뭐든지 열심히 하는 모범생, 자신 앞에 놓인 과제와 관계에 '과잉적응'하는 유형의 사람들에서 의외로 알코올 의존증이 쉽게 발현된다고 한다. 타인의 눈치를 살피고 본심을 억누르면 사고와 행동이 불일치하는 자기 불일치 상태가 되는데, 그 불균형을 조절하고 불편함을 혼자 감내하기 위해 술에 손을 댄다는 것이다. 한 가지 일에 쉽게 몰두하는 사람 또한 충동조절이 쉽지 않기에 술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나 또한 이러한 이유로 술병에 자꾸만 손을 가져다 대는 것은 아닐까 고민해 보게 된다.


저자는 적정 알코올 섭취량을 알려준다. 남성의 경우 하루평균 순알코올 20g 이하, 술로 따지면 맥주 500ml, 25도 소주 100ml, 와인 2잔 정도이며, 여자의 경우에는 신체 특성상 남자의 절반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이틀 연속 마시면 안 된다고 설명한다. 맥주 500ml 한 잔으론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나는 여태껏 얼마나 많은 술을 몸에 부어 넣어왔던 것인가.


혹시 나도 알코올의존의 경계선에 있는 건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저자는 몇 가지 위험신호를 알려준다. 업무 중에 술 생각이 난다거나, 월요일 아침에 숙취로 인해 예정에 없던 연차를 낸다든가, 낮술을 즐겨한다거나, 술을 마셔야만 즐거움이 생기고 차와 커피로는 대체가 안 된다거나, 쉬는 날에 술 마시는 것 외에 달리 할 게 없다거나, 술을 줄이거나 끊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한다거나(자기 통제 불능의 시작) 등이다.


이 책을 읽으면 술의 대사과정 또한 과학상식으로서 습득할 수 있게 된다. 술을 마시면 주로 위장에서 알코올이 흡수되고 이 알코올을 간에서 처리하는데, 알코올분해효소와 마이크로솜 에탄올 산화효소가 알코올을 분해하는 일꾼들이다. 그런데 다 분해가 되질 않아서 남은 알코올로 인해 취기가 오르게 된다. 이 분해 과정에서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생기는데 이게 유해물질이다. 이 유해물질을 청소하기 위해 아세트알데하이드분해효소가 작용하게 되고, 개인마다 분해능력이 달라서 두통이나 구역질 일으키게 된다. 이 지난한 과정을 통과하여 최종적으로 아세트산(무해한 물질)으로 분해되어 몸 밖으로 배출되게 된다.

알코올분해효소와 아세트알데하이드분해효소가 개인마다 능력치가 달라서, 이에 따라 술이 세다고 느껴 폭음하는 사람, 술에 잘 취하긴 하는데 숙취가 심한 사람, 술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새빨개지는 사람, 몸이 술을 아예 거부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알코올은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하고, 세로토닌과 오피오이드 또한 증가시켜서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술 몇 잔으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기분 좋음과 도피성 안정감은 매우 값싸고 간편하므로, 따라서 술에 쉽게 빠지게 된다. 우리의 간은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분해하기 위해 풀가동을 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하루종일 몸이 피곤해진다.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분해하느라 다른 노폐물을 처리할 수도 없다. 또한 알코올로 인한 이뇨작용은 탈수증상을 일으킨다. 그러면 혈액도 끈적해진다. 알코올 분해 시 생기는 아세트알데하이드와 활성산소가 염증과 노화를 일으킨다. 이뇨작용으로 인한 탈수와 비타민B의 과소비로 피부는 엉망이 된다. 각종 성인병과 급속노화의 서막인 셈이다.


저자는 신체상으로 금주의 단점은 전혀 없으며 음주의 이점 또한 전혀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알코올의존 환자들이 금주를 시작하면 보통 뇌는 이것을 90일 만에 이를 학습하므로, 술을 마시지 않는 생활습관을 제대로 형성하기 위해 주변의 도움을 받고 금주계획을 공표하는 등의 여러 방법을 동원해 보기를 권고한다.


책의 초반부에 매우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예전에는 기차에서도 흡연할 수 있었던 것처럼, 상식은 갑자기 바뀐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에서의 흡연은 이제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언젠가는 저녁식사 자리에서의 소주 한 잔이 매우 기괴하게 여겨질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2. 빵 굽는 타자기

빵굽타.jpg 『빵 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2000


○ 작가가 되는 것은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되는 것이다.
○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방향을 위해 기꺼이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저자의 젊은 날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 다른 걸 다 떠나서 일단 책이 재미있다. 작가의 재치있고도 섬세한 묘사와 문장력에 매료된다.


미국 소설가 폴 오스터의 자전 에세이다. 글을 써서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비애를 담담하게 써 내려간 책이다. 영어 원제목은 <hand to mouth>인데, 원제목이 훨씬 더 책 내용을 잘 요약 대변해준다. 책의 시작 부분을 읽으면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곧바로 느낌이 온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 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 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내 불찰이었다. 나와 돈의 관계는 늘 삐걱거렸고, 애매모호했고, 모순된 충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문제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내 꿈은 처음부터 오직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열예닐곱 살 때 이미 그것을 알았고, 글만 써서 먹고살 수 있으리라는 허황된 생각에 빠진 적도 없었다. 의사나 경찰관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신들의 호의를 얻지 못하면(거기에만 매달려 살아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있을진저),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비바람을 막아 줄 방 한 칸 없이 떠돌다가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작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했고 각오도 되어 있었으니까, 불만은 없었다. 그 점에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 물질적으로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었고, 내 앞에 가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겁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한 것은 재능 - 나는 이것이 내 안에 있다고 느꼈다 - 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그것뿐이었다. (pp. 5~6)


어렸을 때부터 작가로 살아야겠다는 것을 '깨달은' 저자는 글쓰기로 생활을 해결한다는 그 가시밭길을 기꺼이 걸어 나간다. 저자는 애당초 인생에 다른 옵션은 없었다는 듯이, 자신과 맞지 않는 회사생활 등은 오래 하지 못하고 이내 그만두어버린다. 각종 기금에서 가끔씩 나오는 창작 지원금, 프랑스어 번역을 통한 비정기적인 수입, 싸구려 영화 시나리오 요약, 보드게임 제작 및 판매 시도 등 끊임없이 불안정한 방식으로 경제활동을 영위하면서 작품활동을 이어나간다. 전업작가로 먹고산다는 것은 궁핍함과 예측불가능으로 가득한 생존게임 한복판에 자신을 기꺼이 내동댕이치는 일이다.



3. 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

거대도시.jpg 『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 전현우·정희원 지음, 김영사, 2024
○ (2021년 기준) 서울시내 도로의 평균 주행속도는 23km/h, 버스는 18km/h에 불과하다(지금은 더 느려졌을 듯).
○ 하루 중 일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빼면 남는 건 8시간인데, 경인권 출퇴근러들은 이 중 절반이 통근시간이다. 자유시간의 절반을 길바닥에 뿌릴 수밖에 없다.
○ 서울의 도로와 주차장을 합친 면적은 강남3구보다 넓고 서울 전체의 5분의 1 수준이다.
○ 빠른 속도의 맹신, 과격한 운전, 주차난, 교통사고 등등, 우리 사회 전체가 일종의 카푸어다.
○ 자동차는 생애의 94프로를 그저 주차장에서 보낸다.
○ 승강기는 건물 중심부에 화려하게 존재하지만 계단은 건물 뒷공간에 으슥하게 존재한다. 건물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편리한 것만을 먼저 보여준다. 환경과 건강에는 좋지 않다는 소리.
○ 80~90년대에는 주로 20~59세의 남성이 교통망을 사용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20~80세 남녀 모두가 경제활동을 하며 교통망을 이용한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감소하지만 교통은 더 빡빡해지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정희원 교수께서 이번엔 의학이 아닌 교통에 대한 책을 썼다길래 냉큼 사두고서는, 읽기를 미루다가 이제야 다 읽은 책이다. 이 책은 철학자와 의사가 대한민국의 교통에 대한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을 전개한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나는 20대 때까지 인천에 살았고, 결혼 후 서른부터는 서울에서 거주 중이다. 따라서 그 멀고도 먼, 통학이라기보다는 여행에 가까웠던 왕복 4시간의 통학길을 익히 경험한 바 있으며, 지금은 서울 안에서 회사까지 편도 40분 정도의 출퇴근길을 반복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교통은 생존을 위한 필수 인프라이지만, 동시에 현대인의 삶을 옥죄는 형벌이다. 끝없이 바위를 굴려야 하는 시지푸스처럼, 직장인들은 끝도 없이 지옥철과 만원 버스에 몸을 구겨 넣어야 한다.


이 책은 서울의 주요 도로와 고속도로가 막힐 수밖에 없는 이유, 대중교통 사용자들이 겪는 엄청나게 높은 밀도와 압력에 대해 다루고 있고, 이와 관련하여 개인의 건강과 지구의 환경까지 포섭해내고 있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데이터들과 함께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교통인프라가 빚어내는 각종 사회현상 및 이로 인해 영향을 받는 개개인의 모습을 다시금 조망해 볼 수 있다.


한 가지 이 책에서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있었는데, 요즘의 자동차들이 점점 거대해지고 있고 이 현상을 저자들은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대형차일수록 탄소배출량이 많고 도로면적과 주차면적을 많이 차지하며 수송의 효용이 떨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고, 이러한 일종의 '거함거포주의'가 자동차산업과 자본시장이 빚어내는 사회경제적 환상이라는 것도 일견 합당하지만, 사실 안전을 생각한다면 차량은 크면 클수록 좋은 게 맞다. 뉴턴의 운동법칙 중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교통사고를 이루는 핵심 운동역학 중 하나다. 현대 캐스퍼와 팰리세이드가 서로 충돌한다면, 그 충격으로 인해 발생한 힘은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두 차량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팰리세이드 탑승자는 살아남겠지만, 캐스퍼 탑승자는 아마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것이다. 내가 아무리 안전운전을 한다고 해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내 차를 들이받을지는 알 수가 없거니와, 도로 위에는 승용차뿐만 아니라 덤프트럭과 트레일러까지 지나다닌다. 예측불가능의 도로 위에서는 최대한 크고 튼튼한 차량을 타고 다니는 것이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는 유일한 길이다.


또한 이 연장선상에서, 이 책에서는 줄곧 탄소배출로 인한 환경오염을 매우 중요한 문젯거리로 꾸준히 제시하고 있는데, 나로서는 이러한 환경보호에 대한 구호제창이 아직 와닿질 않는다. 아마 현재의 삶을 유지해 내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일 것이다. 돈을 벌어오고 가족을 돌보는 것에 급급한 와중에 탄소배출량 같은 걸 생각할 여유는 없다. 아기가 있는데 환경을 생각해서 대중교통으로만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전비가 뛰어난 전기차를 사용하고는 싶지만, 차량을 바꿀 여윳돈은 없다. 환경보호라는 과업이 인류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라는 것은 알겠으나, 나처럼 하루하루를 허덕이는 일반 직장인 입장에선 그것은 일종의 대학교 교양 수업과도 같은 고상한 내용으로서 저 멀리 머물러 있을 뿐이다. 아마 삶에 여유가 생긴다면 나 또한 일상에서부터 고개를 돌려 땅과 하늘과 바다를 보며 자연을 걱정할 능력과 교양 수준이 자연히 생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당장 내 눈앞이 캄캄하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지식과 놀라운 통찰이라기보다는 앞으로의 교통 환경이 어떻게 될까에 대한 나름의 예측과 상상을 해보는 기회였다. 대한민국의 교통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 출산율(또는 출생률)은 급감하여 인구감소는 기정사실화 되었고, 이로 인해 서울 및 수도권 쏠림현상과 지방 소도시 공동화는 착실하게 진행될 것이다. 지방의 대중교통 인프라를 신설하기엔 점점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될 것이다. 외국인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이는 것 외엔 지방 거점도시의 인구 규모를 수호할 방법이 없다.

- 노인 인구의 급증, 기대여명의 증가, 만성질병의 생활화 등으로 인해 대형병원을 오가는 인구가 매우 늘어날 것이다. 대형병원은 어디에 있는가? 결국 서울이다.

- 재개발, 재건축으로 인해 건물의 용적률이 몇 배씩 상향되어가고 있음에 비해, 도로의 규모는 늘릴 수가 없다. 서울에 계속 인구가 몰린다면 그 까마득한 초고층 아파트는 결국 완판되어 입주자로 가득 찰 것이고, 그러면 세대당 차량을 적어도 1대씩은 반드시 끌고 다닐 것일 터인데, 그렇다면 기존 도로 용량이 이 교통 수요를 소화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 서울 도로는 더 막힐 것이 뻔한데, 내부순환로나 올림픽대로와 같은 자동차전용도로뿐만 아니라 골목골목과 아파트 단지 초입 등등의 바퀴가 굴러다니는 모든 도로는 차량으로 가득 차서 옴짝달싹 못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교통사고도 증가하고 운전시비도 늘어가고 스트레스도 커지면서 결국 각종 사건사고를 낳게 될 게 뻔하다. 지옥철 또한 지옥을 넘어 불지옥이 될 것이다. 출퇴근 지하철에서는 그 높은 인구압으로 인해 책조차 읽을 수 없다. 이 모든 것들이 결국 통근시간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는 시도로 이어질 것이고, 결국 직주근접이라는 키워드는 부동산 가격형성 필수요인이라는 왕좌를 굳건히 지켜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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