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의 독서
한 줄 소감 :
“이게 다 네가 핸드폰을 많이 봐서 그래”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는 정말 맞는 말이었다.
스마트폰과 sns가 주는 폐해는 익히 몸소 느끼고 있다. 나는 인스타그램은 일체 안 하지만(나는 이것이 나의 대단한 능력이자 축복받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카카오톡은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 시도 때도 울리는 카톡 알림과 각종 어플 알림만으로 핸드폰을 꺼내보는 것이 하루에 수십 회는 족히 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사고력과 집중력을 빼앗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 책 한 권을 장장 3주에 걸쳐 읽고 정리한 이유도 사실 회사와 육아로 인해 바빠서가 아니라 시도 때도 울리는 카톡 알림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 때문일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머리에 산만함까지 더해졌으니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 책은 조너선 하이트라는 미국의 심리학자가 쓴 책이다. 스마트폰과 sns가 '그다지 좋지만은 않다'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이미 인지하고 있겠으나, 그것이 정확히 어떻게 인간의 행동과 심리에 결박되어 있는지, 특히 한창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악영향을 미치는지 세세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초등학생은 물론이요 유치원생들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이제 언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심리학 지식이나 육아 경험이 없더라도 이러한 광경은 결코 옳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은 인간의 아동기가 가지는 진화론적 특징부터 시작해서, 스마트폰과 sns가 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부모와 교육기관이 아이들을 어떻게 잘못 돌보고 있어 왔는지, 디지털 세계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게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지, 아이들의 성장에 필수적인 환경과 제도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상세하고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챕터 구성이 책 전체의 논리 전개 구조와 아주 잘 들어맞고, 각 장의 마지막마다 요점 정리도 되어 있어서 책을 읽는 동시에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에도 매우 좋다.
책을 다 읽고 들었던 의문이 있다. 만약 스마트폰을 항시 사용하는 아동기가 뉴노멀이라면? 과거의 공동체 기반 유대감과 신체활동을 통한 성장이 아니라 스마트폰 및 가상세계를 기반으로 한 성장이 새로운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라면? 아이폰이 등장하고 나서 불과 20년이 채 안 된 지금 시점에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인류가 진화해 온 신체적 심리적 메커니즘과 현대사회의 생활방식이 너무나도 상극이라는 점이 문제인 것인데, 현대의 산업구조와 사회문화를 과거로 회귀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 혼자 이 책의 내용대로 내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내 아이는 물론이고 나 또한 주변 이들이 당연시하는 스마트폰 사용을 거부하거나 자제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아이들의 스마트폰 및 sns 사용에 관한 문제점에 대해 '목소리를 크게 내고 함께 행동할 것'을 당부하지만, 이게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책에서는 '스마트폰 사용 통제로 인해 내 아이가 또래들과 못 어울릴 가능성이 생긴다고 해도, 그러한 단점이 스마트폰 사용으로 초래되는 단점보다 훨씬 낫다'고 단언한다. 이제 곧 돌을 맞이하는 내 아들에게 나는 이 책의 내용대로 올바른 성장 환경을 마련해 줄 수 있을까. 일단 당장 내가 해줘야 하는 것은, 적어도 18개월이 될 때까지 가족들과의 영상통화 외에는 화면 경험을 일체 제한하는 것, 그리고 아이 앞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다. 하나씩 시작해 보자. 아이가 아무리 울거나 보채도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보여주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스마트폰과 sns는 비단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마찬가지로 좋을 게 없으므로, 퇴근하고서는 휴대폰을 집 한 구석에 던져놔야겠다. 뭐가 위험한지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천지 차이다.
○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 : 전인류가 행하는 위험한 실험
- 요즘 아이들은 항상 불안을 느낀다. 불안과 두려움은 동물계에서 생존에 필수적인데, 특히 사회적 위협과 사회적 죽음은 또래집단의 압력을 많이 받는 청소년에게는 매우 큰 걱정거리다.
-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요즘 아이들은 거의 항상 온라인에 접속해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다른 사람의 관심과 자신에 대한 평가에 목숨을 거는 아동청소년기에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단톡방과 인스타그램은 아이들을 항시 불안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이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몸을 쓰고 주변 또래들과 무리 지어 활동하는 ‘놀이 기반 아동기’가 아닌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를 보내는 최초의 세대인바, 이건 전인류가 행하고 있는 대단히 위험한 실험이다.
○ 인간의 아동기가 유난히 긴 이유
- 인간의 능력은 한 마디로 '배우는 능력'이다. 이를 위해 다른 동물들보다 사춘기에 도달하기까지의 아동기가 매우 길다. 아동의 작고 약한 몸에 비해 뇌는 성인 크기의 90%까지 성장한 상태인데, 이렇게 불리한 신체조건으로 오랫동안 생활하게끔 진화된 이유는 학습능력이 뛰어난 자들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아동기에 걸쳐 최대한 많은 것들을 학습하게끔 우리는 진화해 왔다. 즉, 서로를 학습하고 조상의 지식과 지혜를 터득하여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었고, 이로 인해 타 동물들에 비해 아동기가 유난히 긴 것이다. 이렇게나 중요한 아동기에 스마트폰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 아이들은 반드시 놀아야 한다. 놀지 못하면 정서와 인지능력에 손상을 입는다. 저자는 특히 어른 없이 스스로 하는 자유놀이, 그리고 몸을 쓰는 신체적 놀이는 필수라고 강조한다. 다칠 수 있는 상황에서 놀아봐야 어떻게 안 다치는지를 알 수 있고, 친구들과 놀면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법, 서로 사과를 주고받는 법, 상대의 기분을 파악하는 법,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하는 법, 경쟁에서 졌을 때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 등 민주사회에 필요한 자세와 지혜를 자연스럽게 배운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이와 정반대의 경험만을 제공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맺는 관계는 비체화, 비대면, 비동기화, 일대다 방식으로써, 아주 손쉽게 맺고 끊는 이러한 관계는 참여와 이탈이 매우 쉽고 도덕과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로운바, 한마디로 일회용품처럼 한 번 쓰고 버리는 관계만을 형성한다. 따라서 스마트폰은 아이들에게 있어 '경험 차단제'이다. 상대방과 말과 몸짓, 비유와 상징을 주고받는 사회적 서브와 리턴이 되지 않는다. 손짓, 얼굴표정, 움직임이 의미가 없어져 가는 것이다. 저자는 청소년들은 표정을 짓는 법 대신 이모티콘을 선택하는 법만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거대한 소셜미디어 세계의 그 비동기화된 바닷속에서 아이들은 되려 외로움을 느끼고 연결을 간절히 원하게 되며, 오프라인 세계에서의 소통과 대화가 점점 더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므로, 이로 인해 더욱 스마트폰과 sns에 중독되게 된다. 정말이지 완벽한 악순환인 것이다.
- 아동기 동안 뇌는 '재배선'된다. 가지치기와 말이집 형성(신경세포의 축삭 돌이를 감싸고 있는 덮개)을 통해 아이의 뇌는 어른의 뇌 구조로 고착되어 간다. 이 시기에 무언가를 반복하면 마치 굳기 직전의 시멘트 위에 글자를 새기는 것처럼 영원히 지속되는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민감한 시기에 스마트폰을 끝없이 매일같이 시도 때도 없이 반복 사용하게 되면 화면 기반 경험 외에는 아이가 관심을 갖지 않게 되며, 디지털 세계 속을 배회하며 성인용 콘텐츠에 압사당한다. 10대 초반의 '민감기'에, 즉 '학습의 창'이 열린 그 시점에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쏟아지는 각종 게시물과 성인물에 무분별하게 노출된다.
- 인간은 롤모델을 선정하고 그를 모방하며 성장하게 되어 있다. 이 롤모델의 역할을 부모도 아니고 이웃 어른도 아니고 학교 선생님들이 아닌, 광고로 장사를 하고 자극적인 게시물로 이목을 끄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 소셜 미디어의 인플루언서들이 장악하고 있다.
○ 반대로 되고 있는 자녀 보호의 방식
- 아이를 과잉보호하면 아이는 방어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바람을 맞고 자란 나무는 스트레스 우드(stress wood)가 생겨서 단단하게 변한다. 성장하기 위해선 때때로 넘어지고 부서질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안티프래질 능력이 있다. 이걸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헬리콥터 양육을 해서는 안 된다.
- 아이들은 강아지와 같아서 스릴을 추구한다. 즐거움과 두려움의 균형을 찾으면서 세상을 탐구한다. 위험을 판단하고 적절히 대처하는 등의 다양한 능력을 배우게 된다. '신체적 부상 위험을 포함한' 스릴 넘치는 놀이를 해야 한다. 타박상과 자상이 발생할 수 있지만 괜찮다. 오히려 어른이 주도하는 스포츠가 부상 위험이 높다.
- 따라서, 부모는 현실 세계에서는 아이를 느슨히 관리하고 온라인 세계에서는 관리를 빡세게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부모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낯선 사람과 조우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스마트폰은 쉽게 손에 쥐어준다.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 이것은 자녀 교육 태도와도 연결이 되어 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를 소중하고 섬세한 경주용 자동차인 것처럼 대하며, 동시에 스스로를 피트 크루(a pit crew)라고 생각한다.
- 또한, 공동육아의 개념이 사라졌다. 이제 부모가 아닌 다른 어른들은 위험한 존재들로 인식된다. 세상은 과거보다 안전해졌다는 것이 통계적인 사실임에도, 세상은 너무나도 위험한 곳이라고 인식되고 있으며, 이로부터 자녀들을 보호하려는 태도는 아이들의 성장을 방해한다. 이제는 조금만 아이를 혼자 두어도 아동학대로 인식되는 시대다. 아이들의 안티프레질 능력이 성장할 기회가 전부 차단되고 있다.
○ 스마트폰이 아동청소년에게 끼치는 악영향 4가지
- 에드워드 손다이크 : '순간의 깨달음을 얻는 순간은 없다. 우연한 많은 자극 중에서 한 가지 자극이 강화되고 각인되는바, 동물의 학습은 합리적 의식의 결정에 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뇌에서 어떤 경로를 부드럽게 닦는 것이다.' 이것이 스마트폰 사용에 적용되고 있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어떤 것의 비용은 즉각적으로건 장기적으로건 그것과 교환하는 데 필요한 삶의 양이다.' 스마트폰 사용은 인생에 있어 엄청난 기회비용을 요구한다.
- 1. 사회적 박탈 : 오프라인 친구가 없다. 신체적 놀이도 없다. 부모도 폰을 보느라 아이는 뒷전이다.
- 2. 수면 박탈 : 수면 부족은 우울증과 행동 문제와 상관관계가 있다.
- 3. 주의 분산 : 커트 보니것의 소설 '리슨 버저론' 같은 디스토피아가 현실세계에 펼쳐지고 있다. 하루 평균 울리는 스마트폰 알람은 192개에 달한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주의라는 것은 동시에 가능한 여러 대상이나 일련의 생각 중에서 하나를 마음이 분명하고 생생한 형태로 차지하는 것, 이것은 어떤 것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것.' 니콜라스 카 '한때 나는 단어들의 바다를 탐구하는 스쿠버 다이버였다. 하지만 이제 다는 제트스키를 탄 남자처럼 수면 위에서 질주한다.' 멀티태스킹이란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주의를 옮기는 게 최선인데, 그렇게 할 때마다 많은 주의를 낭비한다. 그리고 휴대폰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고 능력에 손상을 입는다.
- 4. 중독 : 동물 본인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때마다 매번 보상을 주는 것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것이 바로 변동 비율 계획. 이렇게 하면 가장 강하고 지속적인 행동을 만들어낸다. 보상을 기대하면서 도파민 수치가 높아지는데, 원하는 결과가 정확히 언제 나올지를 모르기 때문에 행동을 미친 듯이 반복하게 된다. sns 회사들이 이러한 원리를 사용한다. 댓글과 좋아요를 갈망하게 만들고, 계속 앱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다르다
- 여자 아이들에게 소셜 미디어가 더 해롭다. 외모 비교와 완벽주의에 더 영향을 많이 받고(전면 카메라 기능이 도입되고, 각종 필터링과 포토샵 기능이 추가됨에 따라 여성 청소년의 우울증 및 자살률은 크게 늘었다), 여자의 공격성은 물리적인 것이 아닌 관계를 향하고, 여자들은 감정과 장애를 더 쉽게 공유 및 공감하고(남자들은 모이면 뭔가를 함께 하길 원하지만 여자들은 감정과 기분에 대해 이야기하길 원한다 / 갑자기 많은 10대들이 자신을 정신질환자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온라인상에서 약탈과 착취의 대상이 된다(나체사진을 공유하거나 랜덤채팅에서 성인남성의 먹잇감이 되거나). 소셜미디어는 관계의 수는 대폭 늘리지만 그 질은 떨어뜨린다. 현실 세계에서 가까운 몇몇 친구와 시간 보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 남자아이들은 이륙에 실패한다. 니트족. 히키코모리. 현실 세계에서의 위험을 겪지 않은 남자아이들은 포르노와 게임에 빠져든다. 불확실한 연애 대신 포르노로 성적 만족을 대체한다. 공동체에 뿌리내리는 능력이 약하다. 게임에서 모르는 사람을 바꿔가며 잠깐씩 만나고, 가명과 아바타를 쓴다. 밈과 유행이 광풍처럼 휘몰아치고, 그에 따라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해 그저 유행과 피상에 휩쓸려 다닌다. 이러한 아노미 상태에서는 자살률도 올라간다.
○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의외로 이 책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책으로 영적 수련을 제시한다. 스마트폰은 이 영적 고양과 완벽히 정반대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 타인과 함께 공유하는 신성한 체험에 비해 가상세계는 공동체라고 할 만한 응집력이 없다.
- 신체적 움직임을 통한 체화 또한 누워서 하는 스마트폰엔 의미가 없다.
- 고요함과 침묵과 명상은 수초 간격으로 울리는 알람이 방해한다.
- 자기 초월이 아닌 자기 과시가 이루어지는 것이 소셜 네트워크이다.
- 느린 분노와 빠른 용서가 아닌 정반대로 행해진다.
- 자연을 보며 느끼는 경외감도 경험할 수 없다.
- 법과 제도로 아이들을 보호하자(나이 확인, 학교에서 폰 걷기 등).
- 부모는 목수가 아닌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 부모 먼저 스마트폰을 멀리 하고,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잔심부름시키기 등), 화면경험을 통제하고(18개월까지는 영상통화만, 24개월까지는 보호자와 함께 하는 교육프로그램만, 5살까지는 주중 1시간 주말 3시간, 가족 식사와 외출 시에는 화면 금지, 자녀보호기능 활용, 아이를 달랠 목적으로 화면 사용하지 않기, 잠자기 1시간 전에는 기기를 침실에서 치우기), 아이가 혼자 부모 시야 밖으로 다니는 연습을 하게 하고, 아이들이 함께 모여 밤새는 것을 장려하고, 최소 목적지 5분 전부터는 아이 혼자 걸어가도록 해주고, 어른의 감독이 없는 자유놀이를 권장하고, 캠핑을 가고 등등이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