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과 퇴사 후 일상은 다르다
몇 시간째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며 벽시계를 봤다. 오후 2시.
지금쯤이면 점심 식사 후에 이미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마 출장 중이었을 것이다.
집 안이 적막하다. 거실 수족관에서 쪼르르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물소리가 거슬려서 남편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물생활은 남편의 취미였다. 남편은 물소리가 나지 않게 수족관 물조절에 신경 썼다. 수족관 수위가 낮아진 것인지 물소리가 났다. 집안이 적막한 탓에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난밤 12시가 훨씬 지나서 잠자리에 든 나는, 어쩌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남편이 출근하는 5시 반 전에 눈을 떴다. 여름 해는 부지런해서 5시가 조금 넘어도 날이 밝다. 쉽게 잠이 들지 않아 옆으로 누웠다가 남편의 진동 알람에 다시 잠을 깨웠다. 누워서 남편이 일어나길 기다린다. 잠귀가 어두운 남편은 알람이 두어 번은 더 울려야 겨우 일어난다. 같은 방을 쓰는 내가 깨지 않게 최대한 조용히 준비하는 남편을 보기도 하고,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있다. 자는 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눈을 뜰 에너지가 부족해서라고 해두자. 남편의 마지막 알람이 울리고 5분에서 10분 정도 더 기다리면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눈을 감는다. 남편은 5시 반에서 5시 40분쯤 집을 나서는 것 같다.
아이들은 7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선다. 부지런한 아이들은 게으른 엄마가 일어나기도 전에 서두른다. 중학생인 두 아들은 아침에 깨워본 적이 거의 없다. 거의 없다는 말은, 있긴 있는데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마도 첫째는 수업 전에 친구들과 공을 조금이라도 더 차고 싶어 할 것이고, 둘째는 학교 앞에서 맥모닝을 먹을 요량으로 일찍 나가는 것 같다. 학교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 등교시각은 8시 40분까지 가면 된다.
오늘은 7시가 되기도 전인 6시 58분에 맥모닝 결제 알림이 왔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한참이 지난 시각이지만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다. 물에 젖은 솜 같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종일 누워있다가 남편 퇴근 시간이 돼서야 겨우 일어났다. 남편은 퇴근을 하고 나는 하루를 시작하는 셈이었다. 남편과 저녁을 간단히 차려 먹었다.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둘째가 학원까지 갔다 왔다. 수업이 더 늦은 첫째는 11시가 다 되어야 집에 온다. 아마 오늘도 그럴 것이다.
애들은 하교 후 비는 시간에 집에 들렀다 간다고도 했다. 어제는 들르지 않았다. 아마 내가 집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주말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뭐 토요일 하루는 휴식이 필요하니까 늦잠도 자고 게으름도 피울 수 있겠다. 토요일 늦은 오후부터는 밀린 집안일 좀 하고, 일요일은 남편과 장을 보거나 가까운 곳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일요일 저녁은 아이들과 외식하고 월요일 출근 준비와 등교 준비를 했다.
퇴사 후 일상은 주말과는 다르다. 모두가 일상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만 휴일인 것이다. 주말에 반드시 해놔야 주중에 수월한 집안일들이 오늘 안 하면 내일 해도 되는 일이 되었다. 시간을 쪼개고 에너지를 나눠야 했던 것들이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퇴사 전에 상상한 퇴사 이후의 삶은, 여유롭게 행복한 일상을 누리며 살 것 같았다. 퇴사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퇴사 전에 상상했던 퇴사 후의 모습은 지금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옷만 대충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집 앞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올 생각이었다. 아파트 정문을 지나자 둘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부터 나와 눈만 마주치면 같은 말만 하는 둘째는, 이제는 대꾸도 하지 않는 나를 보며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한다.
"사과가 웃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