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만료 D-5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 오른쪽 허리 아래로 찌르르 통증이 느껴졌다. 아차 싶어 얼른 왼쪽으로 돌아누웠다. 언젠가 봤던 의학 관련 정보에서 디스크가 찢어지면 찢어진 쪽으로 디스크가 흘러 신경을 누른다고 한다. 디스크의 오른쪽이 찢어져서 오른쪽으로 흐르면 오른쪽 신경을 눌러 오른쪽 다리가 아프고, 왼쪽이 찢어지면 왼쪽 다리가 아프다는 것이다. 찢어진 디스크의 반대쪽으로 누우면 디스크가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디스크라고 진단받은 적은 없다. 요통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적이 없으니까.
몇 년 전부터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가며 허리 통증이 시작된 것 같다. 요통은 허벅지를 타고 오금 뒤까지 타고 내려가 걷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워졌다. 한 번 시작된 요통은 4~6개월 정도 증상이 계속됐다. 그러다 익숙해질라치면 통증이 줄어들면서 좋아졌다. 디스크는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회복이 된 것이다. 허리가 아프고 좋아졌다를 반복하면서 요통이 언제 또 도질까 걱정됐다.
그때부터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근육량을 늘리고 코어힘을 키우면 디스크를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운동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나는, 아프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해야만 했다. 그런 나이가 됐다.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퇴근하고 녹초가 돼서 집에 오면 드러눕기 바쁜 내가. 퇴근길 운전대를 잡는 순간부터 '집에 가면 바로 누워야지'를 중얼거리던 내가 퇴근 후에 필라테스를 다녔다. 운동은 지독하게 싫어하지만 거의 매일 출석했다. 아플까 봐 겁이 났다. 1년 동안 꾸준히 운동했다. 그리고 다시 8개월을 더 다녔다. 이사 후에도 2년 치를 한꺼번에 끊어서 꾸준히 다녔다. 다들 힘들어서 끙끙거리는 동작도 잘했다. 나는 고인물이 되었다.
"자, 회원님은 응용동작 가실게요."
표정변화 없는 나를 보며 강사는 조금 더 힘든 동작을 요구했다. 나도 힘들었지만 힘든 표정을 하면 더 힘드니까 인상 쓰지 않을 뿐이었다. 대꾸할 힘이 없어 강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그게 또 됐다.
운동복은 두어 벌을 가지고 사계절을 입었다. 쌀쌀해지면 바람막이나 코트, 패딩을 입으면 됐다. 어차피 운동하면 덥고 땀도 나니까 한겨울에도 반팔 운동복에 긴 레깅스를 입었다. 여름은 원래 더우니까 긴 레깅스를 입고 참으면 됐다. 필라테스는 처음 등록할 때 2년 치 목돈만 내면 돈이 거의 안 드는 운동이다.
이사한 지 10개월쯤 되던 날,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필라테스 수업을 예약을 하려던 참이었다. 앱문제인지 수업 예약이 되지 않았다. 앗싸. 기분이 좋았다. 수강인원이 다 차서 예약이 안 되나 보다. 오늘은 운동을 안 가도 되는 합법적인 핑곗거리가 생겨서 마음이 편했다.
다음 날도 수강예약이 되지 않았다. 조금 이상했다. 곧 센터 공지문이 올라오고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단톡방에는 센터에 등록한 회원들이 계속 들어왔다. 센터 피해자는 200명 정도였다. 200명 중에 센터 대표와 강사들은 없었다.
'필라테스 사기사건' 이후로 한동안 운동을 다니지 않았다. 다시 요통이 생겼다. 출장 가서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일어나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도 가끔 허리나 다리 통증이 느껴지면 덜컥 겁부터 난다. 한번 통증이 시작되면 4개월 이상 지속된다. 왼쪽으로 돌아누우면서, 저녁에 해가 지고 땅이 식으면 산책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전화가 울린 건.
"맨접씨, 아침부터 미안해."
교통사고로 두 달간 병가를 쓴 직원이었다. 빠르게 생각해 보니, 병가를 끝내고 복직한 모양이었다.
"팀장이 출장을 나가라는데 다녀오면 기록을 남겨야 하잖아. 그게 잘 안되네. 어떻게 해야 하지?"
정년의 나이를 바라보는 병가직원은 입사 3년 차지만 여전히 사업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알려고 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근무하는 동안 팀장과 자주 부딪혔다. 그러던 중, 접촉사고는 보기 싫은 팀장과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되는 아주 훌륭한 이유가 됐을 것이다. 처음 2주, 4주, 그러다 기어이 유급병가 60일을 다 채우고 복직한 것이었다.
지난 5년간 거의 매일 바라보던 컴퓨터 화면을 떠올리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거기 'ㄴ'자 화살표 버튼 표시가 있는데 누르면 진행예정, 진행 중, 진행완료 이렇게 3개가 뜨거든요.
"아, 어디 있지. 안 보이는데."
-컴퓨터 화면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주세요. 저도 확실하게 기억이 안 나서 확인해 봐야겠어요.
더듬은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확인할 겸 컴퓨터 화면 사진을 요청했다. 잠시 후 들어온 카톡 사진은 초점이 나가있었다. 아놔...

그렇게 두어 번 더 통화를 했지만 잘 안 됐다. 직군이 달라 권한이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결국은 타 지역에 근무하는 동일 직군 직원에게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다며 넘겼다. 지금 사무실에서는 알려줄 사람이 없다.
"그래. 잘 쉬고 조만간 만나서 밥 한 끼 하자."
병가 중에도 수 차례 만나서 점심을 먹자고 했었지만, 병가 중인 직원을 만나서 식사를 하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다 낫고 나중에 출근하면 그때 먹어요'. 매번 내가 하는 말이었다.
다 낫고 출근하면 그때 먹자는 말. 그날이 오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