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3, 그때 그만뒀어야 했다

by 맨아래접시

그때 그만뒀어야 했다.

5년 전에 같이 입사한 동료는 올해 들어 업무량이 늘면서 불만이 폭발했다. 담당자의 병가로 업무 공백이 생기자 팀장은 '업무 공백은 그 밑에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이다'라며 담당자가 하던 행정업무를 우리에게 미뤘다.


"다 같은 공무원인데 같이 일 해야죠."

코로나 때도 그랬다. 같은 공무원이니까 같이 일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맞다. 시선제인 나는 확진자 이송, 검체채취, 역학조사와 같은 실무업무를 했다. 정직원들은 주로 행정업무를 봤다. 예산 문제로 실무자들은 주말이나 휴일 같은 날 초과근무를 더 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다행이었다. 정직원들은 주말 없이 새벽까지 일했다. 정직원들은 실무자보다 훨씬 더 일이 많다고 했다. 웃음기 빠진 푸석한 얼굴을 보면서 마음에 짐이 생겼다. 연차 쓰기도 미안했다. 바쁠 때니까. 하지만 해를 넘기기 전에 남은 연차를 모두 소진하라니 안 쓸 수 없었다.


"같은 공무원인데 같이 일하자." 당시 과장이 자주 하던 말이었다.

내가 연차를 낸 오후에 우리 사업 인력들만 불러 앉힌 자리에서 그랬다. 맘 놓고 연차도 못쓰는 정직원들도 있는데 편하게 연차 쓰는 우리가 미웠나 보다. 과장은 정직원까지만 '내 직원'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과장은 연차 사용을 놓고 '박탈감이 느껴진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 말은 심했다.

코로나 이후 보상과 포상은 대부분 정직원에게 돌아갔다.


그때 그 과장은 없지만, 여전히 팀장이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다 같은 공무원인데 같이 일 해야죠."

다 같은 공무원인데 시선제인 우리만 불러서 이러고 있다.

무조건 못하겠다고 하는 것보다 일단 해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업무를 줄여달라 할 생각이었다. 연초라 1월 한 달간 내려오는 공문이 어마어마했다. 대략 50개 이상은 되었지 싶다. 밀려드는 공문을 읽어내는 것만 해도 벅찼다. 공문을 읽을 줄만 알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것도 공문을 쓰는 것도 힘들었다. 1월 안으로 제출하라는 공문은 20여 개 정도 됐던 것 같다. 생소한 행정업무는 입사동기와 내가 했다. 병가직원은 팀장의 행정업무 지시에 가장 크게 반발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같이 할 일 있으면 시켜. 내가 도와줄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퀘스트를 수행하듯 공문을 해결해 나갔다. 그런데 팀장은 늘어난 업무 부담은 고려하지 않고 사업 실적을 압박했다. 작년보다 올해 실적을 더 높이는 게 정상인데, 계획서에는 작년과 올해 목표가 같다는 게 문제였다. 사업 인력이 줄고 기존 인력들의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무턱대고 목표 실적을 올릴 수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행정업무를 병행해야 하는 가운데, 실무사업에 집중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는 혼자서 지금 1.5인분을 하고 있거든요. 선생님들이 하는 행정업무가 0.3인분 짜린데, 그걸 세 명이서 나누면 0.1명 밖에 안 되는 거잖아요. 출장 다녀와서 1~2시간만 하면 되는 업무예요. 그걸 지금 못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럼 7급 담당자가 하던 일이 0.3인분밖에 안 되는 업무였습니까?"

입사동기가 폭발했다. 팀장과 동기간에 날 선 공기가 흘렀다. 동기는 참지 않았다.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입사동기는 회사 내 불편하고 부조리한 부분들을 지적했다. 나는 보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날카롭게 찾아내는 그녀를 보면서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런 관점으로 주변을 보는 그녀가 대단해 보였다.

일에서도 잘 맞는 부분 많아서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그렇게 3~4년을 지낼 때쯤 그녀의 비판적인 시선이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그녀는 늘 투덜댔다.

사무실 내 모든 사람들 말과 행동에 트집을 잡았다. 보통의 눈으로 보면 아무렇지도 않을 일들이 입사동기 눈에는 모두 흠집으로 보여 험담으로 쏟아졌다. 그런 얘기를 옆에서 듣기만 해도 진이 빠졌다.

혼자 있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원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다.

무슨 일인지, 혼자 일을 하면서도 늘 투덜거렸다.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건 아닌가 눈치가 보였다. 심지어 책상 정리를 하면서도 투덜댔다. 나는 그녀의 불평을 못 본체했다.


친해지고 편해지면서 점점 나를 함부로 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을 넘었다.

전날 부탁한 일을 깜박하고 처리 못한 적이 있었다. 다음날 출근해서 다짜고짜 화내는 입사동기를 보고서야 생각이 났다. 미안하다 사과하고 마저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풀리지 않는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고야 말았다.


"개짜증나네."


단순한 본인 감정표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음성신호가 내 고막에 박히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고 당황스러웠다. 맞서고 싶었지만 직장에서 볼썽사납게 싸울 나이도 아니다. 나는 싸움을 잘 못한다.

급하게 짐을 챙겨 예정보다 일찍 출장을 나갔다. 출장 내내 그 일이 생각났다. 그런데 출장을 다녀오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날 대했다. 내가 너무 민감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뒤로 비슷한, 더 심한 일들이 몇 번 더 있었다. 몇 번이고 내 감정의 밑바닥을 긁어냈다. 나는 내 감정의 바닥까지 긁어내는 사람들을 정말 싫어했다. 지금도. 감정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평온을 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나와 달리, 그녀는 몇 시간 뒤 혹은 다음 날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날 대했다. 아마도 그녀는 이전에도 이런 일이 많았던 것 같고,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을 넘겼던 것 같다.

그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늘 평온했던 나는 그 무렵 자주 지치고 쉽게 분노했다. 퇴사를 생각했다. 1년 전,


그때 그만뒀어야 했다.




팀장의 0.3인분 발언을 계기로 입사동기는 보름 후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두 달쯤 뒤에 교통사고로 나머지 직원이 병가에 들어갔다. 아마도 나는 이제 1.3인분 정도 몫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