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근무
마지막 점심인데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사놓은 식권도 다 쓴 김에 가까운 중국집에서 마지막 점심을 먹기로 했다. 늘 챙겨주시는 마음선생님은 마지막 식사까지도 굳이 자기가 사겠다며 더 비싸고 맛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제한된 점심시간을 핑계로 가까운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내심 불편했다.
사람들은 나의 퇴사일을 묻고 또 물으며 나의 마지막을 가늠했다. 카운트다운을 세는 것처럼 나의 퇴사일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나를 잊을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친하든, 친하지 않든 간에 회사 내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종결하는 것처럼 들렸다. 마지막, 계약종료, 나의 퇴사가 이 회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의 끝처럼 느껴졌다.
저는 우동 먹을래요.
"더 맛있는 거 먹어. 탕수육도 시키고 요리류도 시켜봐. 너는 꼭 중국집에 와서 우동 시키더라."
우동은 중국집이 맛있다. 중국집 우동은 짬뽕에 들어가는 해산물이 그대로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탄력 있게 잘 빠진 중국집 면과 해산물이 들어간 시원한 국물이 잘 어우러진 중국집 우동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여기 중국집 너무 맛있죠? 주말에 남편 오면 꼭 여기와 봐야겠어요."
삼선짜장을 먹던 방문선생님은 맛있는 점심을 먹거나 가성비 좋은 커피를 마시면 가족들을 생각했다. 수도권에서 10년을 살다가 내려온 지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은 방문선생님은 혼자 계시는 시아버지께서 최근에 암 진단을 받고 치료하는데 병원에 모시고 다닐 보호자가 없어 내려왔다고 했다. 남편은 직장 때문에 수원에 있기로 하고,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지방으로 내려온 방문선생님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주말부부 한다고 하는데 너무 좋잖아요. 아무래도 남편이 있으면 집안 청소나 남편 식사도 신경 쓰이고 매주 온다는 거 기름값도 들고 하니까 자주 오지 말랬어요. 제 고향이기도 하니까 시간 날 때 친정도 종종 들르고 겸사겸사 좋지요."
-선생님도 이 달 말까지 근무시죠? 계약 끝나면 더 일하실 거예요?
"일하는 거 너무 재밌는데, 이번에 계약 끝나면 좀 쉬려고요. 나이 때문인지 무릎이 아파서 못하겠어요. ㅎㅎ... 쪼그리고 앉아서 혈압을 재야 하니까 앉았다 일어서야 할 때 무릎이 아파요. 어르신들이 바닥에 누워계시거나 침대에 누워계시면 옆에 쪼그리거나 무릎을 꿇어야 하거든요. 그게 힘들어요."
누울 곳 겨우 있는 좁은 방에 조심조심 들어가는 방문선생님 모습을 상상했다. 주변 가구와 물건을 흩트리지 않기 위해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자리를 만들어 겨우 앉는 방문선생님 모습이 그려졌다. 보급품이 든 짐을 양손에 들고 좁은 쪽방촌 길을 다녀야 하는 수고로움과 양말이 쩍쩍 들러붙는 집 안으로 불편한 내색 없이 들어서야 하는 고충을 안다. 가족들도 살펴본 지 오래된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세세한 안부를 묻는 방문간호사들을 존경한다. 단순히 만성질환을 관리하기 위해 방문하는 직원이 아니라 마른 손 한번 더 잡아드리고 말벗이 없어서 못했던 이야기도 들어주는 사람들이 방문간호사였다.
"이제 더 더워지니까 방문이 더 힘들 거예요. 어르신들 선풍기도 안 틀고 있는 집도 있거든요. 자기는 안 덥대. 근데 우리는 여기저기 다니니까 너무 덥지. 주민센터에서 에어컨 달아주면 뭐 하냐.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모셔놓고 있는데. 우리가 가서 너무 덥다고 하면 잠깐 틀어 주거나, 그것도 우리 나오면 바로 끄더라. 선생님 더운 여름 몇 달 푹 쉬고 좀 시원해지면 일하러 나오세요."
베테랑 마음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미 시작된 뜨거운 여름이 걱정되는 듯했다.
"아 진짜 이제는 조금만 더워도 미추어 버리겠어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나이 때문인지 이제는 조금만 더워도 못 참겠어요..."
'미쳐'도 아니고 '미추어'라고 힘줘서 말하는 방문선생님이었다.
"... 진짜 갱년 긴가 싶은 게 무릎도 안 아팠는데 일하면서 아프고, 더위도 너무 많이 타니까. 일은 재밌는데 몸이 힘들어서 일을 못하겠어요."
늘 웃는 얼굴로 말씀하는 방문선생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방문선생님은 심성이 고운 사람이다. 민원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방문선생님을 따라가 본 것은 아니지만 가끔 전화로 민원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안다. 다짜고짜 화를 내거나 반말을 하는 민원에게도 상냥했다. 원래 말투가 그런 분들도 계시니까 이해한다고 했다. 귀가 잘 안 들려서 본인 목소리를 크게 말씀하기는 분도 있다고 했다. 방문선생님처럼 생각한다면 민원 발생이 '제로'에 수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사 후에 중국집을 마주 보고 있는, 길 건너 가성비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커피도 맛있고 가격도 좋아서 종종 찾는 곳이었다. 10잔을 마시면 1잔을 더 주는 쿠폰이 여러 개가 됐다. 모두 두어 잔씩 모자라, 10개를 채우지 못한 것들이었다. 퇴사 후에 일부러 찾아올 일이 없을 것 같아 모아뒀던 커피 쿠폰을 가지고 나온 터였다.
"앗! 선생님 제가 계산할게요. 오늘 마음선생님이 밥 사셨으니까 커피는 제가 꼭 살게요."
방문선생님이 호주머니로 향하던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방문선생님의 마음을 알기에 쿠폰을 꺼내려던 손을 빈손으로 뺐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5시 정각. 퇴근시간이 됐다.
그동안 마음을 나눴던 사람들이 꽃다발이며 케이크, 소소한 마음들을 전하고 갔다. 최근 두어 달 내내 서운했던 마음이 오후 근무동안 부끄럽게 사라졌다. 퇴근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서먹했던 팀장과 먼저 인사를 나누고 직원들과 인사를 했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왔지만 덤덤하려 애썼다.
같은 사무실을 쓰는 취약계층 방문사업 쪽을 보니 아직 마음선생님은 출장 중인 듯 자리가 비어있었다. 취약계층 방문사업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H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늘 바쁘신 H 선생님은 나의 퇴사 사실을 미처 몰랐다는 듯 동그란 눈을 하고 보셨다.
"아... 나는 어제 웬 양말이 책상 위에 있길래... 이런 건 줄 몰랐네..."
전날 구매한 양말을 방문선생님들께 한 묶음씩 드렸던 터였다.
"... 그래. 고생했고... 살다가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해."
작년에 남편상을 당한 H 선생님은 보답할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며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다. 덤덤하려 했던 감정이 무너져 눈물이 핑 돌았다. 마지막까지 잘 감췄던 감정을 들킬까 곧 마음선생님 책상으로 몸을 돌렸다.
-마음선생님은 바쁘신가 봐요. 아직이네.
혼잣말인 듯 중얼거리며 마음선생님 책상 서랍을 열어 남은 커피쿠폰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