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 퇴사이유

'계약만료'라 쓰고 '퇴사'라고 읽는다.

by 맨아래접시

'퇴사하겠습니다'를 쓰고 있지만, 정확한 나의 퇴사이유는 '계약만료'다.

(호기로운 제목과 달리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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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5년을 근무하고 재임용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임용원서를 내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3가지 정도로 나열해 본다.






1. 환경이 열악하다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사업특성상 대상자의 민감한 부분들을 의논해야 하는 때가 종종 있다. 전문가 입장에서 이 가정의 문제는 무엇이고, 우리가 어떤 중재를 하면 좋을지, 비슷한 사례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 지역사회 자원 투입 규모나 간섭 정도는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결과는 어떠했는가 등 여러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한 사업이었다.

지침서대로 독립된 공간에 사무실을 꾸렸다. 이리저리 동선을 맞추고 책상과 의자, 상담에 필요한 가구를 배치하고 알뜰살뜰히 공기청정기도 구해서 쾌적한 환경도 만들었다. 교육도 충분히 받았겠다, 이제 사업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사업 의욕은 충분했다. 심지어 타 지역에서 사무실 환경을 참고하겠다고 출장을 내고 견학을 오기도 했다. 팀장급 직원들이 와서 사무실을 둘러보고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갔다. 우리가 직접 이런 환경을 만들어 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1~2년에 불과했다. 코로나 비상상황이 지속되면서 코로나 업무와 관련 인력이 늘어나자 어쩔 수 없이 사무실 여유 공간을 나눠 함께 썼다. 독립된 공간은 철없이 떠드는 이상향일 뿐이었다.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상황이 좋아지면 예전 우리 사무실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코로나 비상상황이 수습되고 일상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대대적인 사무실 재배치가 있었다. 팀장급 이상들이 모여서 한 사무실 재배치는, 각 팀별로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는 업무들끼리 나눴다. 물론 실무자들 생각과 다른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늘 그랬듯 업무는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통보되고 지시된다. 우리는 원래 사무실을 내어주고 다른 팀과 함께 새로운 공간으로 배치됐다.

이전보다 3~4배가 많은, 어쩌면 그 이상 일지도 모를 인원이 사무실에 근무하게 됐다. 그동안 활발히 있었던 우리 의견교환에 문제가 생겼다. 다른 직원들이 일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춰야 했다. 눈치를 보며 채팅이나 카톡으로 대화했다. 정확한 정보전달이나 정보교환이 어려워지고 점점 의견을 나누는 일이 줄었다.

해가 바뀌면서 예산 부족을 이유로 같이 일하던 동료가 퇴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재임용을 하지 않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는 당사자에게 큰 충격을 줬다. 옆에서 지켜보던 우리들도 많이 놀랐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과 사람이 물건처럼 이용당하고 버려질 수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한 회의에서 어떤 기관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시선제(시간선택제 공무원)는 오래 일하는 기간제(근로자) 아닌가요?"

별생각 없이 그 말을 흘려듣고 있던 나는, 옆에서 아연실색했던 옆자리 동료의 얼굴이 생각났다. 진짜였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비어있는 자리를 보면서 허전했다. 풀(full) 충전 에너지로 늘 팀 분위기를 기분 좋게 만들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녀를 '하이텐션'이라 불렀다.

회사는 맨날 돈 없다면서 사업 규모는 더 커졌다. 실적 압박도 잦아졌다. 인력은 줄었지만 그만큼 한 명이 해내야 하는 업무는 늘었다.



2. 처우가 부족하다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코로나 대응에 대한 보상이 이뤄졌다. 선별진료소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직원들은 대부분 기간제와 공무직, 임기제들이었다. 물론 우리도 자진해서 좋아서 한 건 아니다. 등 떠밀리듯 가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지만 코로나 비상상황이 지난 후 표창은 기관의 장이나 간부들이 받았다. 코로나 비상상황에 없었더라도 '감염'과 관련된 자리에 '지금'있다는 이유로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행정적으로 적절한 판단과 조치가 잘 이뤄진 부분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는 데는 매우 동의한다. 하지만 이상했다. 상에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보상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고 했던가.

입사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아서,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챙겨 주겠노라고 선심 쓰듯 말하는 팀장의 말이 거짓말처럼 들렸다.


재임용을 앞두고 지난 5년을 자꾸 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나보다 늦게 입사한 정직원(공무원)들을 보면 그들은 승진도 하고 업무에 대한 보상도 받는다. 초임 공무원 임금이 지나치게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승진도 하고 업무의 능률이 오를수록 인정받으면서 성장한다.

반면에 나는 5년 전과 지금이 똑같은 '시간선택제임기제 마급'일 뿐이다. 갓 입사한 신규들이 눈을 반짝이면서 '주사님' 혹은 '선생님'이라고 부르다가, 연차가 더해질수록 점점 눈높이가 비슷해진다. 때로 직급에 따라 상하관계를 따지며 그에 맞는 대우를 바라기도 한다. 가끔 그런 사람들의 낌새를 알아차리게 되면 어이가 없다가도 곧 허무해진다.


다시 재임용이 된다 해도 임금체계 상에서 지난 5년 동안의 경력은 인정되지 않는다. 최저임금에 기준한 임금으로 재책정될 뿐이다. 이는 신규임용자와 재임용자의 임금이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보면 된다. 지난 5년간 내가 일하고 터득했던 노하우는 임금으로 보상되지 않고 인정도 되지 않는다. 실제로 타 지역에서 재임용된 사례를 보면 3년 차 시선제보다 6년 차 재임용자가 임금을 더 적게 받는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하지만 만약 내가 재임용이 된다면 나는 신규임용자의 임금을 받으면서 경력자 몫을 해내야 한다.

지난 5년 동안 나는 승진의 기회조차 없이, 내려오는 행정업무를 떠맡으며, 동료의 빈자리를 성실하게 채웠을 뿐이다. 나의 소중한 시간과 노동,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현실에 깊은 허탈감과 무력감이 몰려왔다.

지난 내 5년이 아깝다.



3. 일이 재미없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5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지게 된 듯하다.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어제와 같은 오전 일과를 보내고, 점심을 먹고, 비슷한 시간에 커피를 마신다. 장소만 다를 뿐 오전에 했던 일을 하거나 매주 혹은 매달 같은 날에 해야 하는 일들, 똑같은 화면을 보고 일하다 시간을 확인하고, 퇴근 시간 5분 전부터 시작되는 퇴근 준비. 그렇게 월화수목금요일을 보내면 주말이 돌아온다. 토요일은 하루 종일 기면(drowsy)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일요일에는 다음날 출근준비를 한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반복되고 한 달이 지나간다. 늙어간다.


점점 열악해지는 근무 환경, 충분하지 못한 보상,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에 지쳤다. 언제까지 이렇게 재미없는 일을 해야 하나. 그저 오늘 하루를 재밌게 살고 싶었던 나는 어디 갔을까. 매일 재밌게 살아도 모자랄 판에 재미없는 하루들이 모여 재미없는 내 인생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내일이 궁금하지도 않다. 똑같을 테니까.

정해진 날짜에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은 많지 않아도 하고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이렇게 무의미하게 살고 싶지 않다. 재. 미. 없. 다.아까운 내 하루가 재미없이 지나갔구나!!


생각이 많은 퇴사 전 마지막 주말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