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봄이었다.
코로나가 익숙해지고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접어들 때쯤, 사람들은 서서히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동안 중단되었던 행사들도 하나둘 속속히 재개되면서 회사에서도 지난 몇 년간 중단되었던 직원 연수를 재개했다.
입사한 지 4년 차였지만 단체 연수는 처음이었다. 처음 가보는 직원 연수가 궁금하기도 하고 내심 걱정이 됐다. 직원 화합의 의미로 랜덤으로 조를 나눠 활동하고 같은 방을 쓴다고 했다. 입사 후 줄곧 한 곳에서 같은 일만 하던 나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속한 조와 숙소, 이동하는 버스에는 아는 이름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직원 연수는 두어 달 동안 여러 일정으로 나눠서 진행됐다. 먼저 다녀온 직원 후기로는 이동하고 먹이고 체험의 반복이라며 생각보다 다녀올만하다 했다. 사무실에 있는 대부분의 직원이 연수를 먼저 다녀왔고 나와 마음선생님은 맨 마지막 차수에 갔다.
마음선생님은 공무직이라 종종 공무직 집합교육이나, 공무직 노조교육, 공무직 단합대회 등이 있어 이번 연수와 같은 활동이 익숙한 듯했다. 마음선생님은 아는 사람들이 좀 있다고 했다.
남녀가 섞여서 7명이 한 조가 되었다. 그중 남자 2명을 제외한 5명이 한 숙소를 썼다.
방 두 개에 거실 겸 부엌이 딸린 숙소였다. 방 하나는 퀸사이즈쯤 되는 침대가 있었고 나머지 방은 벽장 외에 가구가 없는 빈방이었다. 눈치껏 침대방에는 2명이 쓰고, 남은 빈 방에서 나머지 3명이 바닥에 침구를 깔고 자야 할 것 같았다. 침대방을 쓰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구가 들었다.
"몇 급이세요?"
누군가 생각지도 않은 질문을 했다.
"아 저는 9급이에요."
질문을 받은 맞은편에 있던 어리게 보이는 젊은 여자가 대답했다.
"아, 저는 7급."
곧이어 묻지도 않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이 자동으로 대답했다.
"저희는 6급이에요."
질문을 한 여자가 옆에 또래로 보이는 여자 손을 잡으며 말한다.
짧은 대화 중에 빠르게 서열 정리가 됐다.
'가, 나, 다, 라, 마... 그럼 나는 15급인가?'
내 정확한 직급은 '시간선택제임기제 마급'이었다. 쓰기도, 말하기도 길고 번거로운 직급이다. 저걸 왜 물어보나? 싶으면서도 곧 내 차례가 올 거라 예상하고 손가락을 짚어 급히 내 급수를 셌다.
"그럼, 저희가 저기 침대방을 써도 될까요?"
6급 여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이 방에 들어와서 말한 적이 없다. 내 대답은 모두가 궁금해하지 않았다.
"네."
내키지 않는 듯 누군가가 대답했지만 6급 여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자기 짐을 챙겨서 침대방으로 들어갔다. 이어 문이 닫혔다. 직급이 서열이 되어서 서열이 높은 사람들은 침대방을 쓸 수 있었다. 침대방은 바다가 보이는 방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빈방으로 가서 본인의 짐을 정리하고 다음 일정 전까지 휴식을 취하는 듯했다.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불편해졌다.
45인승 버스에 30명 정도만 탑승한 터라 버스 안이 널널했다. 친한 사람과 짝을 지어 앉은 사람도 있었고 일행이 있지만 여유 있는 좌석 덕에 혼자 앉은 사람도 있었다. 아니면 나처럼 아는 사람 없이 혼자 앉은 사람도 몇 명 있는 듯했다. 연수 일정이 이어지면서 서서히 적응이 되면서 좀 편해졌다.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관광이나 체험을 하고 식사를 할 때는 마음선생님 일행이 나를 기다렸다가 같이 이동하기도 했다.
빠듯한 일정이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저녁 식사 이후로는 가벼운 강연과 레크리에이션이 이어졌다. 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삼삼오오 아는 사람들끼리 각자 테이블에 모이기 시작했다. 마음선생님과 나는 행사장에서 나와 숙소 앞바다가 보이는 길을 걸었다. 아직 바닷바람이 쌀쌀했지만 갑갑한 행사장을 나와서 맞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바다 위로 한참 위로 뜬 달이 밤바다를 환하게 비췄다.
-선생님, 공무직은 몇 급이에요?
엉뚱한 질문에 마음선생님은 대답대신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봤다. 나는 숙소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말했다.
-그래서 오늘 바닥에서 자야 해요. 허리가 아파서 침대에서 자고 싶었거든요.
밝은 밤바다를 마주하고 나란히 앉은 마음 선생님은 내 어깨 위로 팔을 둘렀다.
"공무원 위에 공무직 있는 거 몰라? 여기가 좀 이상해서 그렇지 우리 어디 가면 대접받으면서 일해. ㅎㅎ"
마음선생님의 농담에 불편한 기분을 웃어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