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하고 첫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아직 어리고 사회경험이 없던 나는 늘 실수투성이었다. 처음 하는 업무. 새로운 환경과 낯선 사람들 속에 혼자 떨어진 나는, 늘 긴장하고 자연스럽지 못했다. 어색하게 움직이고 엉뚱한 짓을 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기숙사 생활을 했던 나는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일찍 출근해서 부지런히 일했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소리는 좋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충분히 그럴만했다고 변명한다. 인력이 부족해서 충분한 교육과 인계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출근하고 일주일 만에 혼자 근무를 했다고 하면 말 다한 거 아닌가. 일을 하고 확인받을 수 있는 선배가 없어서 오버타임으로 근무하면서 일을 배웠다.
프리셉터였던 5년 차 선배는 '롤모델'이었다. 일 잘하고 성격도 좋아서 모두가 좋아했다. 물 흐르듯 능숙하게 일하는 선배를 보며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일 잘하는 사람은 쉽게 일하는 것 같아 보인다. 같이 근무하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일이 힘들지 않다.
병동 환자들이 먹는 약부터 검사 결과, 과거력 외에도 병동의 모든 세세한 일을 꿰뚫고 있는 책임 간호사는 말 그대로 '넘사벽'이었다. 내가 잘못된 인계를 하고 있으면 옆에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다가도 잘못된 인계를 수정했다.
수(간호사) 선생님은 병동에서 진짜 '어른'이었다. 열댓 명이 넘는 병동 식구들을 아우르고 이끌었다. 넘실거리는 무서운 바다를 가르는 큰 배 같다고 생각했다. 병동 직원을 대신해서 환자나 보호자, 타 부서 직원들과 대화를 하고 문제를 해결했다. 격앙되어 있는 사람들 앞에서도 수쌤은 동요하지 않고 덤덤하게 대응했다. 화를 내고 욕을 하던 사람들은 불만과 억울함을 충분히 쏟아냈다. 묵묵히 들어주고 공감하는 수쌤 앞에서 그들은 순한 양이 되어서 감사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그때는 롤모델과 넘사벽이던 선배들을 보면서 앞으로 나의 5년 후, 10년 후 내 모습을 그렸다. 지금보다 더 나은 어른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일했다.
그런데 여기는 어른이 없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롤모델로 삼고 따를 사람이 없다. 나의 미래를 짐작해 볼 대상이 없다.
하기 싫은 일을 미뤄내고 모르는 척 앉아있고 싶지 않다. 타인의 흠을 들춰서 뒤에서 흉보는 사람이 되기 싫다. 나의 감정을 참지 않고 그대로 쏟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사무실 곳곳에 눈을 돌리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성인들이 많다.
어른: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성인: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 보통 만 19세 이상의 남녀를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