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

by 맨아래접시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

이름만 공무원이지 장기간 일하는 기간제 근로자라고 보면 된다. 주로 실무업무를 하게 된다.


바닥에 닿지 않으려 있는 힘껏 발길질했더니 유유히 유영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난다고 했던가. 최종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고 혼자서 마음껏 기뻐했다.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남편은 차마 내가 드러내지 못한 기쁨을 대신 표현했다. 부모님들도 함께 기뻐하셨다.

바닥으로 가라앉던 삶이 비로소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임명장을 받자마자 교육이 릴레이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일주일 혹은 보름 정도 출장을 다녔다. 긴 시간 집을 비워야 했지만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내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에 신이 났다. 하루 8시간씩 교육을 듣고 일주일에 한 번 시험을 치는 일이 반복됐다. 즐거운 불만을 동료들과 나눴다.


사업 담당 공무원은 이전에 두어 달 기간제로 일하면서 안면을 터 뒀던 사이였다. 오가다 가볍게 웃으면서 인사하는 정도였지만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짧은 근무기간에도 적을 두지 않고 지낸 과거의 나를 칭찬했다. 동료들과 합이 잘 맞았고 담당 공무원도 일을 꽤 잘하는 편이어서 타 지역에 비해 사업 실적이 잘 나왔다.


곧 끝날 거라던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우리도 순번을 정해 선별진료소 근무를 했다. 팀장은 같은 공무원이니까 같이 일해야 된다며 선별진료소 근무자 명단에 우리 이름을 올렸다고 했다. 상의하달식이다. 주변에서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나는 불평 없이 따랐다. 방호복을 입고 선별진료소로 향하는 직원들을 보며 빚지는 마음을 느껴지던 차였다.


2021년이 시작되는 1월이었다. 내복을 챙겨 입고 껴입은 방한조끼 위로 레벨 D 방호복을 입었다. 추우니까 겨울이겠지만 컨테이너 없이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던 그 해 겨울은 너무 추웠다. 등짝과 허리춤에, 발바닥에 핫팩을 붙여도 온몸이 저절로 바들바들 떨렸다.

선별진료소에 상주하는 인력은 점차 공무직과 기간제, 임기제로 구성됐다. 정직원들은 행정업무가 바쁘다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육아휴직이든 병가든 휴직을 쓸 수 있는 직원들은 적극적으로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확진자와 접촉자 이송도 하게 되었다. 관용차로 쓰는 경차 안에는 앞 좌석과 뒷좌석 사이로 비닐을 붙여 공간을 나눴다. 확진자 혹은 접촉자들을 뒷좌석에 태웠다. 근무 중에 주소가 적힌 메모가 오면 관용차를 몰고 혼자 그곳으로 갔다. 가끔 낯선 곳으로 가게 돼 정신없이 다니다 보면 속도위반이나 주정차 위반 딱지가 날아왔다. 과태료는 운전한 본인이 내야 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2년이 지나서 음압차가 들어왔다. 원래 있었던 것인지, 그제야 운행하게 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확진자를 1명씩 태우고 이동하던 음압차는, 얼마 되지 않아 자리를 비집고 앉아야 할 만큼 만석이 되었다. 나는 음압차 조수석에 앉았다.

요양시설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달에 한 번 꼴로 하던 코로나 검사를 2주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일주일에 두 번까지 늘어나자 코로나 검체 채취도 했다. 코 안으로 검체스틱을 입천장과 평행하게, 하비갑개를 따라 비인두까지 도달하도록 깊숙이 넣어 검체를 채취하는 방식은 혈관 따라 24 게이지 바늘을 넣는 것보다 까다로웠다. 검체스틱이 콧구멍에 들어가기도 전에 아프다며 고개를 돌리는가 하면, 비인두에 닿는 검체스틱이 아프다고 투덜거리고 욕설을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 일주일에 두어 번씩 코로나 검사를 하는 사람들은 콧구멍이 헐고 딱지가 앉았다며 역정을 냈다. 두 개밖에 없는 콧구멍 중에 본인이 원하는 콧구멍으로만 검사를 하라는 사람도 있었다. 많게는 하루에 100명 이상의 콧구멍을 들여다봤고 100명이 넘는 사람을 만났다.

코로나 업무 중에 검체채취가 가장 힘들고 부담스럽다고 했다. 누군가 우리가 받는 월급 중에 욕값도 있다고 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맞는 말이었다.


본업은 미뤄지고 어느새 내 업무는 코로나 관련 업무가 주 업무가 되었다. 선별진료소 근무나 확진자 이송이 없는 날은 역학조사를 하거나 격리자를 위한 구호물품을 포장했다. 수백 개씩 포장하고 박스채로 나르는 일을 하면서 힘들었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있어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다. 일은 점점 적응이 되고 손은 빨라졌다. TV나 인터넷 뉴스에서 매일 코로나 업무로 고생하는 공무원과 의료진을 응원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남편과 아이들은 나를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친정엄마는 체력 약한 딸 걱정에 하루가 멀다며 손수 달인 홍삼을 보내주셨다. 매일 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우면 땅속으로 푹 꺼질 듯 녹초가 됐지만 한편으로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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