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건 약이 아니다
어릴 적, 엄마가 요거트 기계를 사온 적이 있다.
집에서 요거트를 만들어먹을 수 있다니!
우리 모두는 기대감에 들떠서 당장 우유도 사고, 면포를 사고, 기계를 깨끗이 닦아서 요거트가 만들어지는 시간까지 하루를 꼬박 기다렸다.
그렇게 드디어 완성된 요거트!
한 숟가락을 떠먹는 순간, 엥? 모두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 맛도 안 나는데?”
당시엔 무가당 요거트라는 개념조차 몰랐으니, 기계가 고장 난 줄 알았다.
풍선처럼 부풀었던 기대가 푸쉬식-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가족 모두가 실망했고, 엄마는 헛돈을 썼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집에서의 요거트 만들기는 단 한 번으로 끝이 났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의 요거트는 잘못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그저 설탕도, 토핑도 없는 ‘무가당 요거트’였을 뿐.
마트에서 파는 설탕 요거트에 익숙했던 우리는 아무런 단맛이 없는 그 맛을 상상도 못했기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언제나 그건 달콤할 거라고, 즐거울 거라고, 잔뜩 기대를 하고, 그렇게 흘러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은 예상을 깬 담백함을 주고, 시큼떨떠름하고 때로는 아무 맛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계가 고장 났다고 탓하기 쉽지만, 사실은 원래 그런 맛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요거트를 감정에 빗대어 생각해봤다.
겉으론 괜찮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오만하고, 질투하고, 화를 내고, 그냥 아무 의욕조차 없는 날들.
욕심이 부풀어 오르거나, 의미 없이 채우려는 마음, 누군가를 소유하고 싶은 충동까지.
별것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삼키려 하면 씁쓸하게 다가오는 감정들이다.
삶은 늘 화려하거나 달콤하지 않다.
어떤 날은 무가당 요거트처럼 밋밋하고, 아무 성과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계속 곱씹다 보면 은근한 고소함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 맛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서 그렇지...
결국 무가당 요거트만으로는 살 수 없어서 우리는 토핑이라는 행복을 찾는다.
꿀처럼 마음을 감싸주는 겸손, 과일처럼 상큼한 친절, 바삭한 그래놀라 같은 성실함.
어떤 건 몸에 좋은데 맛이 없고, 어떤 건 달콤한데 건강에 해롭다.
드물지만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토핑이 있듯, 삶의 태도도 그렇다.
무엇을 얹느냐에 따라 같은 요거트가 전혀 다른 디저트가 되는 것처럼, 같은 하루도 전혀 다른 얼굴을 하게 된다.
그날 엄마가 만든 요거트는 실패가 아니었다.
우리가 몰랐을 뿐, 그 자체로 온전한 요거트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큼하고 무심한 맛을 받아들였더라면 토핑을 올릴 즐거움도 함께 배웠을 텐데.
삶도 그렇다.
무가당의 본맛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 위에 어떤 토핑을 얹을지 고민하는 일.
나는 이제, 씁쓸한 맛을 정리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그 위에 올릴 수 있는 좋은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