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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스마미 김여사 Dec 19. 2018

가끔 놀라는 나의 못생김

그냥 내가 바뀌면 될 것을..

 한 남자를 만나 평생을 사랑할 것을 맹세하고, 두 아들을 낳아 키우는 동안 그러면 안 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거울을 손에서 놓고 살았다. 아들 둘을 키우다 보니 뭔가 체력이 점점 달리는 것을 느꼈지만 아들들의 에너지를 내가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지 내가 늙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어느 날 아침.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시장에 들러 반찬거리를 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길거리에 주차되어있는 차 유리창에 비친 나의 얼굴이 1초간 스쳐갈 때, 그동안 몰랐던 나의 늙어감과 못생김을 마주할 수 있었다. 20살 이후 노화가 진행된다고 흔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방금 스친 그 얼굴이 내 얼굴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요즘 거울에 비친 실제 나의 얼굴보다 거실에 걸린 결혼사진 속에 내 얼굴을 더 많이 보고 살다보니 머릿속에 나의 얼굴은 결혼 전 가장 예쁘고 행복했던 시절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세수를 할 때, 로션을 바를 때, 외출을 하기 전에 슬쩍슬쩍 거울을 보기는 하지만 그땐 얼굴에 뭐가 묻은 것이 없나, 머리는 산발이 아닌가 정도만 체크하는 수준이라 나의 늙어감에 대해서 깨닫지 못했었다. 

 요즘 들어 친정집에 갈 때마다 엄마가 하는 소리는 “너 지난번 보다 팍 늙었다. 아들 둘 키운다고 기운이 달려서 그래. 고기 좀 먹어.”다. 단어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되는 엄마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딸이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엄마의 말이야 이제는 가장 정확한 말이 아닌가 싶다.


 어릴 적부터 우리 엄마는 아낌없는 사랑으로 “우리 딸이 최고로 예뻐!”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엄마한테 예쁘다는 칭찬을 듣고 자라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때로 객관적으로 예쁘지 않은데 예쁘다는 칭찬만 듣고 자란다면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느끼는 괴리를 깨달았을 때처럼 크나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내가 정말 예쁜 얼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교 때 내가 관심 있었던 남자애가 누가 봐도 예쁜 여자랑 사귀어 아쉬움 없이 포기를 했던 때, 신랑을 만나기 전 했던 소개팅들에서, 그리고 그날 아침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첫째를 낳고 지드래곤 같은 아들을 바랬던 나의 오만을 다시 한 번 반성했으며, 조합만 잘 되면 된다는 기대에 둘째 아들을 낳았지만 역시 지드래곤 같은 아들이 아닌, 첫째와 똑같이 생긴 아들이 태어난 것을 보고 말 그대로 유전자 힘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얄팍한 자존심에 아들들이 모두 아빠를 닮았다고 그동안 둘러댔지만 그날 차 유리창에 비친 나의 모습은 아들들에게 물려준 50%의 유전자의 책임을 통감하는 순간이었다.


 예쁘지 않은 유전자의 힘을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아한 삶을 목표로 하는 나에게 전혀 우아하지 않은 나의 모습을 봤을 때 어떻게든 헤어 나오고 싶었다. 3년간 잊고 살았던 선크림을 다시 바르고, 지나가던 길에 화장품 가게를 들러 마스크 팩도 샀다. 뭔가 생기가 없어 보이는 나의 얼굴을 감추기 위해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빨간색 립글로스도 사다가 바르려고 화장품가게에 들렀다.


 여자가 죽을 때 까지 가꿔야 하는 것은 남편에게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것보다 스스로 자존감을 바닥을 치지 않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연애를 하면 예뻐진다는 칭찬을 주변에서 듣던 것처럼, 매일 매일을 연애하듯이 살아야겠다.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다행히 우리 아들들이 아직까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말해줘서 너무 고맙다. 어느 날 아들이 내게 말했다. “우리 엄마는 공주보다 더 예쁜데.” 세상에. 이런 과분한 칭찬을 아들에게 듣다니. 아들을 실망 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아하게 늙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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