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로스마미 김여사 Dec 19. 2018

식구

그냥 내가 바뀌면 될 것을...

 어린 시절 우리가족은 항상 맛있는 부분을 나에게 양보해줬었다. 잔병치레가 잦은데다 입이 짧았던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거나 잘 먹는 음식이 있으면 온 식구들이 나서서 그 음식을 나에게 양보해줬었다. 그때는 그것이 응당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음을 안다.


 결혼을 하고 원 가족 아닌 또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양보 받았다. 바로 신랑. 신랑은 항상 맛있는 부분은 나에게 양보하고 내가 잘 먹지 않거나 잘 먹지 못하는 나머지를 먹는다. 특히 생선을 먹을 때면 살이 많은 부분을 발라 내 밥숟가락에 얹어주고는 숟가락으로 접시에 남은 살 부스러기를 싹싹 긁어먹는다. 내가 보낸 어린 시절과 다르게 생선 한 마리의 살을 서로 양보해야 할 만큼 모자란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맛있는 부분을 양보해주는 신랑에게 그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사랑을 느낀다.


 신랑의 사랑표현은 밥상에서만 국한 되지 않는다. 회사에서 맛있는 간식꺼리를 선물 받게 되면 나와 아이들에게 먹이려 잘 챙겨두었다가 퇴근 후 주섬주섬 챙겨온 것을 가방에서 꺼낸다. 직원들이 해외여행을 갔다가 사온 과자, 커피하나, 차 티백 하나라도 그 자리에서 먹지 않고 챙긴 뒤 가족들과 같이 맛본다. 가방에 챙겨온 작은 과자하나를 나와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조금씩 맛보고 새로운 맛을 좋아할 생각에 늦은 오후 조금 출출해도 참는다. 우리 아이들은 과연 아빠의 사랑을 언제쯤 알까?


 아이가 태어나고 제일 맛있는 부분을 차지하는 첫 대상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 되었다. 우리 부부의 사랑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통해 아이들 입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게 아닌가 싶다.


 가장 맛있는 부분을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양보하는 것이 당연한 우리부부의 식사 모습을 지켜보던 내 지인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자기 부부는 가장 맛있는 부분을 자기들이 먹는데 왜 우리는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족 내에서 위계질서까지 언급하며 가장인 아버지가 가장 좋은 음식을 먹고, 그 다음에 엄마가 먹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냐고 우리 식사방식을 못마땅해 하는 듯 말했다. 지인의 식사 방식이 나름대로의 일리는 있으나 가족마다 추구하는 행복이 다르고 생활방식이 다른데 우리가족 식사방식이 비난받을 일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들 상관없다. 식사를 할 때 마다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는 우리가족의 식사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밥을 같이 먹는 사이라는 뜻의 ‘식구’라는 한 단어가 인생의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밥을 먹어 힘을 내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즐기고, 배부름을 알고, 사랑을 알게 하고, 정을 알게 한다. 한 번의 숟가락질, 한 번의 젓가락질로 사랑을 지속적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사이 식구. 식구가 있어서 행복하게 식사를 하고 오늘 하루 또 힘을 낸다.


 매끼를 같이 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처럼 오래오래 같이 둘러 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 밥 한 공기에 두 세가지 반찬이 다인 밥상이지만 서로 마음껏 챙겨 주며 밥을 먹을 수 있는 식구가 있어 너무 행복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가 만들어 준 나의 꿈, 나의 인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