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내가 바뀌면 될 것을..
맞벌이로 일을 할 때는 가정주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막상 가정주부가 되고나니 가끔은 가정주부라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 부당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는 가정주부가 어린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경우 이상하게 여기는 시선을 받을 때가 있다. 아이가 어리다고 어린이집에 맡기면 안 되고 집에서 무조건 양육을 해야 한다는 법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36개월까지는 주 양육자에게서 길러지는 것이 아이들 정서상 좋다고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정주부라도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상황은 있기 마련이다.
가정주부가 아이들 어린이집이나 학교를 보내고 난 뒤 항상 쉬는 시간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 틈을 이용해서 자기계발을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다니는 도서관만 하더라도 가족들을 보내놓고 도시락을 싸다니며 도서관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순한 자기계발이든 재취업을 위함이든지 간에 어찌됐든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 취급을 할 때는 정말 못 참겠다.
가정주부는 집안이 항상 깔끔해야 하고 집에서 밥을 해먹여야하나? 내가 반찬을 자주 사먹는다고 이야기 하면 다른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본다. 가족이 먹는 음식인데 바깥에서 경제적인 활동을 하느라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음식을 사 먹인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싫다. 집이 좀 지저분하면 어때? 집안 청소 말고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루 종일 집안만 청소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처음만나는 사람과 흔히 통성명을 하고 난 뒤 으레 이어지는 질문 “어떤 일 하세요?”. 일을 할 때는 가볍게 대답하던 일이 휴직을 3년쯤 연달아 하다 보니 내 직업에 대한 정체성을 잊어버렸다. 내 직업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공무원이라고 하기에는 복직여부가 불투명하고, 작가라고 하기에는 아직 출판된 책이 없고, 부동산 투자자라고 하기에는 투자규모가 작은 것 같고, 그렇다고 사업을 준비하다고 하기에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고, 주부라고 하기에는 뭔가 싫다. ‘주부’라는 단어는 곧 ‘집에서 노는 여자’라는 부정적인 숨은 의미가 포함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짧은 시간 머릿속에서 뭐라고 대답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주부요.’라고 그냥 대답했다. 애초에 ‘주부’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면 될 것을 괜히 망설였다. 그렇게 망설이며 시간을 끈 뒤 ‘주부’라고 대답을 한 뒤도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주부라고 말하기는 꺼려하면서도 나는 주부라 너무 행복하다. 정말 주부만큼 좋은 직업이 없는 듯 하다. 만능 프리랜서랄까. 무엇보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고, 사람이 붐비지 않는 평일 조조영화도 볼 수 있다. 문화센터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강의도 듣고, 부동산 임장도 마음껏 다니며 투자해 돈도 벌 수 있다. 이 밖에도 수없이 좋은 점이 많지만 앞에 나열한 몇몇 가지만으로도 얼마나 좋은 직업인지.
주부라고 무조건 집에서 노는 사람이 아니다. 아마 대부분의 주부들이 자녀교육, 경제적 활동, 자아 실현 등에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계속 노력하고 있다. 나는 지금 주부라서 이 모든 것을 해볼 시간과 기회를 가졌으며 이 시간과 기회를 충분히 활용해보려고 한다. 어영부영시간을 보내기에는 세상에 해보고 싶은 좋은 일이 너무도 많다.
다음에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하시냐고 물어보면 그때는 당당하게 ‘주부’라고 말하고 싶다. ‘만능 프리랜서.’ 누구보다도 시간을 여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