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입학식 날은 나에게 아무 소리도 없는 고요한 한낮의 거리로 남아 있어. 집에서 학교까지 3킬로의 거리를 우리 둘이 손을 꼬옥 잡고 걸었지. 등교 시간은 이미 한참을 넘었고, 학교 가는 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던 것 같아. 아무도 만나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었어. 엄마도 나도 고개를 숙이고 걷는 것 같았거든.
그 전날도 아빠는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왔지. 그런 날이면 엄마의 울음과 비명, 물건 부서지는 소리들로 아주 많이 무서웠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이불을 뒤집어쓰고 빨리 잠들기만을 기도하는 일뿐이었지. “진아야, 빨리 자자, 눈 감아” 3살 어린 동생에게 했던 말들은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어.
엄마… 눈을 감아도 눈물이 계속 날 수 있다는 걸 다들 몇 살쯤 알까? 어린 나이부터 고생했다던 엄마도 내 나이부터 알았을까? 폭력의 세계에서 기댈 곳이라곤 고작 얇은 이불 하나뿐인 세상이었어. 무서워 몸이 덜덜 떨리면서도 밖에서 저 거대한 재앙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엄마를 돕지 못하는 죄책감은 나를 더 나쁜 아이로 만들었어. 엄마를 혼자 그곳에 두는 게 미안해서 나는 정말 많이 울었어.
그런 다음 날은 무성 영화 같아. 간밤의 불씨가 아직 남아있을까 가만히 앉아 숨죽이며 힐끗힐끗 엄마의 기분을 살피거든. 어쩌면 그 ‘소리 없음’은 나에게만 해당됐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는 나, 이불은 벗어났지만 움직일 수 없는 건 똑같았거든.
빨갛게 부은 엄마 눈을 보며 입학식이지만 학교는 당연히 못 갈 거라 생각했어. 농부의 흙색 가득한 옷장에서 분홍색 윗도리와 바지가 나왔을 땐 정말 놀랐지. 엄마가 내 왼손을 잡았고 우린 말 없이 걸었어. 우리가 가는 곳마다 소리는 사라지고 세상엔 오직 엄마의 분홍색만 존재했었어. 분홍색은 나한테 슬픈 사랑의 색이야.
내 손을 잡고 걷는 엄마의 표정은 어땠을까. 엄마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바닥만 보고 걸었던 나는 이제야 29살 어렸을 엄마의 얼굴이 궁금해.
전교생 200명 정도의 작은 학교. 버스도 없던 그 시골길을 작고 여린 두 어깨가 느린 걸음으로 1시간은 걸었을까. 운동장은 텅 비어있었어. 학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일이 있어도 가야 할 만큼 중요한 곳이라고 막연히 알게 됐지. 엄마도 아빠도 없는 낯선 곳이지만 그래서 묘한 안도감도 느껴졌어. 엄마는 나를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까? 기다리는 거라곤 고된 농사일과 주정뱅이 남편뿐인 그곳으로?
나 혼자만 어딘가로 가는 것이 미안해서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났어. 내 눈도 아마 빨갛게 퉁퉁 부엇을거야.
엄마, 눈각다귀라는 곤충은 추위에 다리가 얼기 시작하면 살아남기 위해 다리를 자른대. 얼음이 몸 전체에 퍼져 목숨을 잃는 일을 막기 위해서 말이야. 바다 갯민숭달팽이는 기생충에게서 몸을 보호하려고 목을 자르고도 살아남는대. 그러니까 엄마. 나는 엄마가 그렇게 살아가길 바랐어. 팔 다리가 잘리고, 목이 잘리고도 살아남기를 말이야.
엄마보다 더 귀하다는 자식들도 버리고 어디든 가서, 주정뱅이 남편이 없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지금보다 많이 웃으면서 살길 말이야. 선녀보고 왜 아이 셋을 낳으라고 했는지 알겠다고 씁쓸하게 웃는 게 아니라
아이 셋을 다 놓고서라도 가고 싶은 곳으로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선녀가 되기를.
그래서 나는 엄마를 떠나지 못하게 한 아이 셋 중의 하나인 나를 아주 오랫동안 미워했어.
그리고 분홍색은 내가 가질 수 없는 색이 돼버렸지. 너무 예쁜데 너무 슬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