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냉이
엄마~가난했지만 가난한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 건 아마 그 시절 먹을 게 산에 지천이어서 그랬나 봐.
봄에는 정옥언니네 집 근처 빈 밭에서 냉이를 뜯었어.
해 먹을 줄 몰라도 그 향이 너무 좋아서 호미 들고 열심히 뜯었거든.
비가 온 다음 날은 냉이가 잘 뽑혀 더 신이 났지.
하루는 미라 언니가 빨갛게 냉이를 무쳐줬는데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나보다 고작 3살 많은 언니가 부엌에 들어가서 야무지게 설탕 고추장 꺼냈던 모습이 말이야.
11. 산딸기
체하면 그 음식이 다신 먹기 싫다던데
산딸기는 그럴 리가 없지!!!
덩굴에 다리며 팔에 상처를 입어가면서도 맛있게 따먹고
먹다 체해서 다 토해도 다음날이면 또 먹으러 갈 수밖에 없는 맛이야.
12. 오디
여름에는 앞마당에 있는 앵두와 고야를 먹고 산에 가면 산딸기와 오디를 먹었어.
한 번은 술 마시는 아빠를 버티지 못하고 엄마가 집을 나갔고
진아랑 둘이 오디를 따러 갔거든. 우리 키에 닿는 나뭇가지가 얼마나 되겠어.
바가지 하나 들고 먹고 싶은 거 아껴가며 집에 와서 신나게 먹을 생각에 두 고사리 손으로 진짜 열심히 땄단 말이야.
집에 와보니 술이 잔뜩 취한 아빠 앞에 원장할머니(먼 친척 할머니)가 앉아 계셨어.
엄마는 집 나갔지, 아빠는 계속 술만 마시지, 걱정돼서 잔소리하러 오셨던 건데
술 취한 아빠가 우리의 오디 바가지를 보더니 원장 할머니를 드리라고 했지.
바가지를 건네는 손이 얼마나 서러웠는지 몰라.
차마 나가지는 못하고 옆에 같이 앉아서 오디에 손이 자꾸만 가는데
우리 손이 쉴 새 없이 나가니까 보다 못한 아빠가 "야! 너네.."
큰 소리를 치려니까 원장할머니가 "그냥 너네 먹어라"했거든?
그 모습을 엄마가 봤어야 해.
우리가 손으로 얼마나 야무지게 퍼먹었는지 ㅎㅎㅎㅎ
떼양볕에서 땀 흘리며 수확했던 그 노동이, 엄마 없는 서러움이 그 순간만큼은 그 달콤함에 씻은 듯이 내려갔거든.
13. 밤
가을에는 밤이 우리는 기다렸지.
아니, 내가 밤을 기다렸어.
그놈의 미영이네 밤나무.
담장 밖으로 나온 밤나무에서 밤 한알이 떨어지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놀다가도 '툭'소리가 들리면 모두가 놀이를 멈추고 미영이네 담장 밑을 헤맸어.
어쩔 땐 그냥 현종이 아저씨네 앞마당에 앉아 밤이 떨어지길 대놓고 노려보며 기다렸지.
언제 떨어질지 모르지만 오늘 내로 떨어질 건 분명하니까, 그 기다림이 간질간질하고 설레었거든.
갓 떨어진 밤은 참기름 발라놓은 것처럼 반질반질 한 건 아마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걸?
그 한알을 주우면 진아랑 지혜랑 지숙이랑 넷이서 나눠먹었지! 그래도 맨 처음 줍는 그 희열을, 그 보물찾기 같은 순간을 맛보고 싶어 진짜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단 말이야.
그러다 하루는 정선이 오빠가 자기네 집 밤을 왜 줍냐며 내 엉덩이를 걷어찼단 말이야.
아파서 울었다기보다는 이제 그 밤을 못 먹는다는 생각에 엉엉 울며 집에 왔는데
엄마, 기억나?
서러워 밤이 실컷 줍고 싶다며 흐느껴 울었더니 엄마가 새벽에 함께 밤을 주우러 가자며 나를 몰래 깨웠잖아.
플래시 불 하나로 담벼락 밑을 서성이며 엄마랑 같이 스무 개 남짓의 갓 떨어진 반들반들한 밤톨을 양 주머니에 가득 넣고 집에 오는데 어찌나 행복하던지.
괜스레 코끝이 찡했던 건 불록 가득한 주머니 때문이었는지, 고단한 시골 아낙네의 삶을 살면서도 나를 단단히 잡고 있던 그 손 때문이었는지.... 동생 빼고 나만 데려간 게 특별하게 느껴져서인지, 그 모든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저 나는 지금도 밤나무를 보면 그렇게 맨질맨질한 밤을 줍고, 행복해해.
14. 깨금
우리 집에 피아노가 들어오는 날이었어.
그때 당시 150만 원 거금을 들여 샀다는 피아노가 들어오는 날이었는데도 나랑 진아는 또 싸웠지.
그리고 또 쫓겨났어 ㅎㅎ
날씨가 제법 쌀쌀했는지 무스탕을 입고 나갔네.
뒷산으로 가서 서로 이 때문이다, 언니 때문이다 티격태격하는데 배가 고픈 찰나, 바로 앞에 깨금이 보이는 거지. 야무지게 까서 둘이 먹다가 어떤 피아노가 들어오는지 너무 궁금해서 다시 집으로 쪼르르르 내려와 집 근처를 뒷마당 부엌 창으로 기웃거리며 좋아했던 기억이 나.
자매가 싸우기도 많이 싸운다고 엄마가 참 많이 속상해했는데
지금은 안 싸우고 사니 참 다행이야.
나는 박주가리도 먹고, 나뭇가지 들고 밤나무 털러 다니고, 아카시아 꽃 잎, 찔레순 따먹었으면서
그런데도 엄마가 먹을 게 없어서 이름도 모르는 풀을 가리키며 그걸 먹었다는 얘기나
어린 목화솜열매를 따먹었다는 얘기에는 왜 이렇게 눈이 붉어졌는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