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by 사막

15. 엄마, 얼음도 색이 다르잖아. (속닥속닥: 이건 시골 출신 애들만 아는 것 같아.)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에서 탄탄하게 얼은 뿌연 얼음 말고 맑고 투명해서 흐르는 물까지 다 보이는 얼음이 보이면 그걸 톡톡 깨서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었어. 겨울철 별 민데 지금은 먹을 곳이 없다.


16. 하루는 기상이가 작은 개울가의 얼음을 사방을 돌아가며 깨고 있는 거야. 뭘 하나 봤더니 그걸 다 깨서 얼음배를 만든 거 있지? 그 배에 좋다고 나랑 진아도 올라타서 놀았는데 신발이 젖을까 봐 조마조마한 게 어찌나 스릴이 있었는지 몰라. 그 뒤론 얼음배를 타보지 못했어.


17. 겨울이면 먹을게 궁해지지. 산딸기도 오디도 고야도 없고, 오직 감자 밖에 없었거든. 냄비에 조금 탄 부분이 특히 별미였지. 왜인지 모르겠는데 우리 집은 감자를 마요네즈에 찍어먹잖아. 하루는 성균이 오빠가 지나가길래 특별히 감자와 마요네즈를 맛 보여줬단 말이야. 그랬더니 성균이 오빠가 케첩을 갖다 줬네?

진아랑 둘이 이걸 어떻게 먹는 건지 한참을 고민하다 감자를 찍어봤더니 맛이 영 별로더라고. 감자는 마요네즈지!!! 물론, 지금은 케첩에 찍어먹는 감자튀김이 더 최고지만!!!


18. 호떡

시내 나가는 버스가 하루 2번이었어.

3킬로나 떨어진 학교를 걸어서 가려면 겨울엔 참 고달팠지. 아직도 기억나. 8살 때 집에 오는데 너무나 추워서 볼은 다 터질 것 같고, 집은 아직도 멀어서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울면 더 아플까 봐 울음도 참고 걸었던 그날의 추위가.

그래서 아침 7시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어. 등교는 9시까지라 도착하고도 한 참을 기다려야 친구들이 왔지만

그때까지 공기도 하고, 양말썰매도 타며 노느라 지루한 적이 없지.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으면 엄마가 호떡을 들고 나와 손에 쥐어줬어.

덕분에 나는 겨울은 추웠던 시절이 아니라 따순 호떡의 계절로 기억이 남았지.


19. 오줌구멍

지금은 이런 눈을 보기가 힘든데, 우리 때는 진짜 눈이 많이 왔잖아.

새벽에 군인 아저씨들이 눈을 치워주면 양 옆으로 내키만큼 눈이 쌓였던 것 같아.

눈이 치워지기 전에 나가보면 눈에 그렇게 노란 오줌구멍들이 많았거든?

다들 왜 거기서 쌌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재밌어 보여 나도 집 앞에 오줌구멍 여러 번 만들었었어.


20. 미끄럼틀

집엔 아빠가 메준 그네도 있고, 달구지 시소도 있었지만 미끄럼틀 없는 게 아쉬웠단 말이야.

한 번은 티브이에서 봤는데 눈에 물을 뿌리면 얼음이 된다는 거야.

눈으로 산을 만들고, 뒷면엔 올라가는 계단도 만들고 마지막으로 앞면에 물까지 뿌렸는데도 미끄럼틀이 되진 않았어.

그럴 때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게 시골 사는 설움이었던 것 같아.

실패한 미끄럼틀에서 두어 번 타보고 말았는데 다음날 되니 미끄럼틀이 돼있었어!!!

그걸로 꽤 재미는 누렸지만 우리 키로 만든 미끄럼틀이라 너무 낮아 그다음 해부턴 만들지 않았어.

뭐~눈싸움만 해도 신났으니까.


21. 고드름

우리 때는 고드름도 따서 먹었다니까!

아니, 진짜 우리 때는 고드름이 우리 키만 했다니까!!!

그걸로 칼싸움도 했다니까.

진짠데 아무도 안 믿어줘, 엄마.


22. 문

탁.

쿵탁

쿵쿵탁.

겨울이면 열쇠가 필요없지.

매일 밤 문틈이 다 꽁꽁 얼었으니까.

그렇게 추운 밤들을 진아가 없었으면 견디기 잠들기 힘들었을까.

잠이 많은 진아가 먼저 들어가서 잠들면

느즈막히 들어가 진아를 언자리로 밀고 진아가 데펴놓은 자리로 파고 들었거든ㅋ


23. 사진

겨울이면 엄마가 우리를 불렀지."진영아, 진아야~사진 찍게 이리 나와"

모자도 씌워주고, 목도리도 둘러주고

여기 앉아봐라, 저기 앉아봐라, 고야 나무 앞에서 혼자도 찍었다가 둘이서도 찍었다가

눈으로 하얗게 덮인 도로 한복판에 진아랑 둘이 앉아 사진 찍었던 풍경이 눈에 선해.

그래서 눈만 내리면 아이들이랑 밖으로 나가.

"우와 눈이 온다!! 얘들아 눈 보러 가자."

엄마에게 물려받은 사랑을 두 손에 꼭 쥐었다가 아이들에게 잘 전해주기 위해 내가 얼마나 애쓰는지 모르지?

"넌 맨날 뭐가 바쁘냐!!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딱 그 짝이다"

대학 나와 일도 그만두고 애만 키운다고 속상해하는 엄마 마음 다 알지만

엄마한테 받았던 그 사랑이, 호떡이, 부뚜막 위 운동화가 내가 아플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서

나도 그런 사랑 주려고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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