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by 사막

2010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32살이고, 임신 7개월이었다. 고향을 떠난 지 16년 되는 해였다. 16년 동안 고향에 간 건 5번도 되지 않았고, 같은 고향에서 두 집 건너에 살았던 할머니도 딱 그만큼 뵀었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전화기를 쓰러 종종 우리집에 오셨던 것에서 시작이다.

“진영아, 이 번호 눌러봐라” 숫자가 보이지 않아 전화를 걸어줄 사람을 찾아 우리집까지 오신건가? 생각했지만 엄마는 외삼촌 집 전화세를 아끼려고 우리집에 오는 거라며 욕을 하셨다. 동네 할머니가 우리집 전화기를 왜 쓰러 오시나했는데, 엄마의 엄마라고 해서 깜짝 놀랬다. 엄마가 나에게 해주는 것들을 생각하면 할머니가 엄마에게 대하는 태도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 특별할게 없는 사이였다. 10살 즈음일까 외삼촌네 두 사촌동생이 할머니 무릎에 뛰어 들었다. 저렇게 세게 앉으면 할머니 무릎이 망가지지 않을까? 싶을만큼 점프를 해서 앉았다. 할머니 입에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손주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다 같이 앉아 야구를 보면서 할머니는 야구가 왜 재미있을까, 쟤들은 어떻게 할머니 무릎에 저렇게 앉을까, 할머니는 왜 엄마처럼 화를 내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했었다.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간 적이 있었다. 교회 의자가 아닌, 마룻바닥에 앉아 예배를 드렸고, 할머니는 찬송가를 박자에 맞춰 무릎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얼마전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다 그 장면이 생각났다. 할머니처럼 무릎을 치며 찬송을 불렀고, 장례식장에서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그때 나왔다.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무언가 하나는 받았구나.

엄마와 이모들과 삼촌들은 돌아가신 할머니에게서 각자 무엇을 받았을까? 돈이 아닌 무언가, 미움 말고 다른 어떤 것들이 있을까.



28. 호박벌

종이로 동서남북을 접어서 손가락에 끼우고는 잘 날아다니는 호박벌을 잡겠다고 쫓아다니다 벌에 쏘이면 손가락이 정말 퉁퉁 불어. 어찌나 쓰라리던지 그 퉁퉁부은 손가락을 쥐고 제일 가까운 할머니네로 갔어.

그 손가락에 할머니가 된장을 발라줬어.

모기 물리면 침 바르고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만들면 되지만 호박벌에 물리면 그 정도론 텍도 없었어.


29. 원숭이

병원이 아닌 집에서 태어난 나는 몇 킬로에 태어났는지 모르겠지만 깡 마르고 털이 많았대.

작고, 깡 마르고, 털도 많고, 까만 나를, 생전 처음 아이를 낳아 본 엄마가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지?

"엄마.. 애들이 다 이렇게 생겼나?"

우리 할머니는 참 솔직해.
"아니.. 애들이 이 정도는 아닌데, 얘는 왜 이렇게 원숭이 같냐"

태어나서 살이 좀 오르니 그때부턴 예뻤다며.

뱃속에 있을 때 쌀도 떨어져서 못 먹었다니 그럴 수밖에.

역시, 다 아빠 때문이야.


30. 조청

고추장 쑤는 날에는 할머니집에 조청이 한 다라였는데 그 앞을 기웃기웃거리면서 조청 얻어먹는 맛이 기가 막혔어. 돈도 없는 우리가 어디 가서 그런 단맛을 사 먹어보겠어.

할머니네 고추장 담그기만 기다렸지.

하루는 창균이네 갔는데 창균이가 꿀을 꺼내주는 거야!!!

너무 맛있어서 그때 그 오디처럼 또 막 퍼먹었거든?

어른들한테 걸리면 혼날까 봐 몰래몰래 잽싸게 먹었던 그 꿀맛이 지금 생각해 보면 조청이었던 것 같아.


31. 감자떡

가을이면 감자 삭히는 냄새가 났어.

그 앞을 지날 때면 코를 막고 지나갔지. 커다란 드럼통에 감자 썩은 게 한가득 들어있었단 말이야.

그걸로 만든 감자떡은 색도 회색이고 냄새도 꿉꿉했지만 먹을 거 없는 그 겨울에 그마저도 얼마나 맛있었겠어.

근데 서울 감자떡은 그런 냄새가 안 나데? 그리고 색깔도 알록달록하데? 맛은 서울 감자떡이 더 맛있는데

가끔은 할머니의 회색 감자떡이 생각나.


32. 올챙이국수, 약과, 계란빵, 도넛, 옥수수

할머니네 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간식들이 있었다.

똑똑 떨어지는 올챙이국수

옹심이가 있는 팥죽

명절이면 거실 가득 펼쳐져 있는 약과

수저로 긁어주는 옥수수

계란카스텔라, 도넛

그래서 자꾸 갔나 봐.


33. 찬송가

할 거 없는 심심한 시골, 하루는 교회 다니시는 할머니 따라서 교회를 갔거든.

바닥에 앉아 무릎을 치시며 찬송을 부르는 할머니를 그냥 물끄러미 바라봤어. 그냥 신기해서.

왠지 고집쟁이 같고, 엄마한테들은 말을 종합해 보면 고약한 할머니가 분명한데

여기서는 순종적인 눈빛으로, 입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누군가를 찬양한다는 게 왠지 이상했거든.

할머니랑 우리 집 사이에는 복자네, 득주네 두 집 밖에 없어서 참 가까웠는데도

할머니 무릎에는 항상 한쪽에는 성민이, 한쪽에는 성화가 앉아있어서 진아랑 나는 바닥에 앉아 같이 야구를 봤지. 할머니가 정말 야구를 좋아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가면 야구가 자구 틀어져있었어.

거리는 두 집만큼인데 할머니 무릎과 내 엉덩이 사이는 올라가지 못할 나무처럼 멀게만 느껴졌어.

나도 마흔 즈음에 교회를 다니게 됐는데 거기서 찬송가를 부르다가 허벅지를 치며 찬송가를 부르는 내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돌대.

아무것도 받은 게 없다 여겼던 할머니에게 나도 무언가를 받은 것 같아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