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결핍의 원흉
아빠 하면 할 말이 너무 많아. 내 모든 결핍의 원흉 같거든. 엄마의 모든 불행의 근원 같거든.
하루는 땔감이 떨어진 거야.
강원도가 오죽 추워? 겨울이 아직도 한참 남았는데 땔감이 떨어지다니!!! 겨울에 굶어 죽는 베짱이 얘기가 딱 우리 집 얘기야.
"진영아, 혜경이 아줌마네 가서 아빠 좀 불러와"
엄마의 지령이 떨어져서 앞 옆집 혜경이 아줌마네로 갔는데
아빠는 또 술에 진탕 취해있었어. 대낮인데 말이야.
"아빠!! 엄마가 오래"
오겠다고 대답했지만 오지 않을 걸 알았지.
아빠는 늘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집이 쌀도 떨어지고 땔감도 떨어지고 나는 '사랑받지 못함'의 커다란 구멍이 생겼지.
덩치 큰 아빠 때문에 키 큰 사람은 만나지도 않았어. 술 마시는 사람은 쳐다도 안 봤지.
누가 나 좋다고 하면 황송해하며 온 영혼을 다 바쳐서 연애했거든.
참 많이도 울었는데,
하루는 큰맘 먹고 아빠한테 울면서 얘기했더니 아빠가 미안하다네.
그리고는 다음 날 또 기억을 못 하지.
휴.. 이 구덩이 메꾸느라 내가 아직까지 고생 중이야.
35. 아무 데서나 싸
쉬가 마렵다던 나에게 아빠는 “그냥 아무 데서나 싸”라고 했는데
수확이 끝난 허허벌판 밭 한가운데서
그 아무 데나 가 도무지 어딘지 모르겠어서
예쁜 원피스를 꺼내 입고 아빠를 따라갔던
7살의 나는 그냥 팬티에 싸고 말았어.
아빠의 술판 한복판에서.
젖은 팬티를 벗고, 아빠의 술판이 끝나길 기다렸던 나는
가끔은 어딘지도 모르겠는 그 아무 데나를
아직도 찾아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도무지 어딘지 모르겠어서.
거기서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은지도 모르겠는 채로.
36. 막걸리
마을에서 아빠 술 안 얻어먹은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늬 아빠가 술을 안사면 마을 슈퍼 술이 다 썩어서 버렸다,
아빠가 제일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도 소주 궤짝 앞에서이다.
지금도 1주일에 4~5번은 막걸리 2병씩 꼬박꼬박 드시는데 간이 애기 간이란다...
37. 앵두주
또 엄마가 집을 나갔고, 아빠는 아빠가 만든 평상에 널브러져 있었지.
평상 위에는 머루나무가 그늘을 멋들어지게 만들어줘서 아빠는 그 좋은 날
엄마가 담근 앵두주를 빨간 뚜껑을 연채로 벌컥벌컥 마신 채 러닝셔츠만 입고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잤어.
어린 마음에도 술을 저렇게 먹으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응, 아빠 간은 애기 간이었네.
원장 할머니가 또 오셔서 잔소리를 하셨지만 술이 잔뜩 취했는데 그 말이 들어갈까.
나는 아빠 옆에 떨어진 통통한 초록 애벌레가 꿈틀대는 것만 쳐다보고 말았어.
엄마는 그 뒤로 담근 주의 취미를 버려버렸지.
38. 비닐 문
겨울이 오기 전에 아빠가 해줬던 일이 있어. 창문을 비닐로 꽁꽁 싸맨 거.
그래서 거실의 문은 얼 지언정, 우리는 자다가 얼어 죽지 않았나 봐.
받은 거 없다 없다, 하나도 없다 했는데 가만있으니 느리지만
하나씩 하나씩, 생각은 나대.
39. 알사탕
콩 한쪽도 나눠먹던 시절, 알사탕 한 알 생기면 진아랑 나눠 먹었는데
망치도 깨면 그게 다 부서져버린단 말이지.
그걸 아빠가 깨 주면 2~4조각으로 알맞게 깨져서 진아랑 나눠먹기 딱 좋았다.
아빠의 용도란 딱 이 정도였어
40. 스케이트
아빠, 나는 아빠가 스케이트 탈 줄 아는지 몰랐잖아.
자전거도 무릎이랑 팔꿈치 홀라당 까져가며
나 혼자 배우고
14살에 장 보러 다녀야 해서 오토바이 배울 적에도
"오른손만 댕기면 가"
이것만 배워 논두렁에 그대로 곤두박질쳤거든.
넘어진 뒤에 브레이크를 배웠지.
기어 바꾸는 건 못 배워
언덕을 올라가다 앞바퀴가 들려 한 바퀴 굴렀을 때도
부러진 백미러만 신경 쓰였지,
절뚝이면서도 내가 어디 피가 나는지는 살펴보지도 못했어.
다 이렇게 배우며 사는 줄 알았는데
아빠가 내 아이랑 스케이트 가르쳐 준다고 목동 아이스링크장
갔을 땐 진짜 깜짝 놀랐어.
아빠가 스케이트를 탈 줄 알았다니..
아니, 아빠가 무얼 가르치다니..
딸 셋 그 누구에게도 무엇도 가르쳐 준 적이 없어 아무도 몰랐는데 말이야.
기분이 참 이상하더라.
아빠가 미운데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내 새끼한테 질투가 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나한테 그 시절은 그렇게 기억에 남았는데
아빠가 얼마 전에 그랬잖아.
"나 그때 진짜 행복했어"
1호랑 스케이트 타러 다니면서 아빠도 행복했다니..
의무감에 하는 줄 알았지. 미안해서 하는 줄 알았지.
근데 행복했다니,
나와 아빠 사이 같을 거라 짐작했던 마음들 말고
손주와 할아버지 둘만의 추억이 차곡차곡 쌓였고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시간이었다니..
괜히 눈물이 핑 돌았어.
9년 전 아빠의 마음이 이제야 도착해.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내 마음도, 누군가의 말도
넘어진 곳에서 눈물로 피워낸 꽃을 안고
부지런히 나에게로 오고 있는 중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