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큰 오빠네가 경산에서 1년 6개월의 생활을 마치고 반송으로 돌아왔다. 헤어졌던 가족이 모이니 왁자지껄 사람 사는 것 같았다. 똑같은 일상이었지만 큰오빠 부부와 채린이가 돌아온 집에는 전에 느끼지 못하던 행복한 온기가 번졌다.
빨간 벽돌집은 너무 좁아 큰 집으로 옮겨야 했다. 둘째 언니는 아래 반송 주택 한 채를 세를 주고 위 반송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언니는 자신이 세를 놓고 있는 집 2층에 들어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큰오빠와 엄마에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로써 엄마는 다섯 번째 이삿짐을 싸게 되었다. 첫 번째 집보다 낮은 지대였던 반송에서의 두 번째 집은 주변에 도서관도 있고 은행, 패스트푸드 점등 편의 시설이 주변에 많아서 엄마가 아이들을 돌보기가 편했다. 삼정 송림 맨션에서도, 반송에서도 둘째 언니와 형부는 엄마와 큰오빠에게 귀인이 되어주었다.
반송 두 번째 집은 또 2층이었고 집 안 구석구석 볕이 들어 좋았다. 그리고 독특한 건 2층과 3층을 쓸 수 있는 복층구조였다. 그 2층과 3층 사이엔 니스 칠을 해서 번쩍번쩍한 마호가니 색 나무 계단이 있었는데 그 나무 계단만 보면 부잣집 이층집 같았다. 2층엔 방이 하나 있었고 그 방엔 아버지가 혼자 주무셨다. 3층은 큰오빠 부부가 썼고 엄마, 나 그리고 아이들은 2층 마루에서 이불을 깔고 꼭 붙어 잤다. 채린이는 새벽부터 재첩국을 파는 아저씨의 “재첩~꾸~욱~”하는 찰진 목소리에 잠이 깨곤 했다.
나무 계단 집으로 이사한 후 올케언니는 집 앞에 있는 ‘신사동 왕족발’에서 일하게 되었고 큰오빠는 큰 형부의 소개로 김해에 위치한 신발 안창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다. 금색 마티스를 몰고 허둥지둥 출근하던 오빠 모습이 떠오른다. 채린이는 반송으로 돌아와서 어린이집에 다시 다니게 되었고 승환이는 엄마랑 집에서 지냈다.
아버지는 술 한잔이 들어가야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이나 이웃들과 술을 마실 때면 아버지로 인해 그 술자리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또 인정이 많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는 이상하게 집에만 오면 딴 사람으로 변했다. 자는 언니 오빠들을 깨워 학교에서 배운 것을 물어봤다. 만약 모르면 체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에게는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지거리를 밤새도록 했다. 엄마가 아버지의 주정을 듣지 않고 잠을 자거나 그 주정에 말대꾸하면 엄마는 두들겨 맞아야 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술주정과 잠과의 사투를 벌이면서 점점 병들어갔다. 반면 욕하고 소리치며 알코올을 몸 밖으로 보낸 아버지의 몸은 오히려 청정해지는 것 같았다. 술이 다 깰 즈음 날은 밝고 아버지는 밤새 술주정하느라 피곤했으므로 온종일 쥐 죽은 듯 잠을 잤다.
그러나 예순 중반의 나이임에도 아버지는 반송에서는 더욱더 집 밖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일흔이 넘은 노인처럼 기력이 없었다. 그래도 술이 일단 들어가면 젊었을 때 고약한 버릇이 나왔다. 자신을 거두고 먹이고 곁을 지키고 있는 엄마에게 상스러운 욕을 퍼붓는 배은망덕한 버릇 말이다. 그전까지는 그런 아버지와 말싸움을 했는데 나무 계단 집에 이사 온 후 엄마가 변했다. 그 집에선 아버지의 술주정 공간은 안방과 화장실 앞 좁은 공간이었다. 부엌까지도 나오지도 못하고 안방 바로 앞에서 엄마를 괴롭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갑자기 화장실 앞에 세워둔 스텐 빨래 건조대를 들고 아버지를 마구 패기 시작했다.
“뒤져라~뒤져라!” 하며 숨을 헉헉 몰아쉬며 몸을 부르르 떨며 아버지를 때렸다. 나는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그런 가볍디가벼운 건조대로 맞는다고 죽진 않는다.
또 한 번은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엄마 속을 뒤집자 안방에 깔아 뒀던 이불을 가지고 나오더니 술에 취해 해롱대는 아버지에게 이불을 씌우고 “죽어! 죽어!” 하며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아버지는 이불속에서 허우적대기만 했다. 이제 전세는 뒤집혔다. 자신을 평생 때린 가해자인 아버지를 폭력으로 갚아줌으로써 엄마 가슴의 응어리가 풀릴 수 있다면 아버지는 더 맞아야 했다. 엄마의 전세 역전의 현장에 있던 큰오빠도 올케언니도 나도 다 같은 생각으로 엄마의 폭행을 묵인했다. 그런데 두 번의 폭행 사건 후 엄마는 다시는 아버지를 때리지 않았다. 막상 아버지를 때려보니 아버지가 불쌍했던 것일까 아니면 죄책감을 느낀 것일까. 엄마의 아버지 폭행은 아직도 우리 형제들의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웃기면서도 슬픈 사건이다.
어느 날 둘째 언니가 작은오빠가 연애를 시작했다고 했다. 같이 일하던 동료의 부인이 소개한 아가씨였다. 아가씨의 고향은 진안이었다. 둘째 언니 말로는 작은오빠가 그 진안 아가씨에게 푹 빠졌다고 했다. 작은오빠는 진안 아가씨와 부산에 인사를 오겠다고 했다. 그 당일이 되자 큰오빠 부부를 시작으로 둘째 언니와 조카들 그리고 나도 퇴근하고 얼른 집에 와서 작은오빠 커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드디어 작은오빠가 도착했다. 진안 아가씨는 날씬한 큰 키를 돋보이게 하는 베이지 모직 치마 정장을 입었는데 거기에 세련된 무릎 밑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왔다. 머리 모양은 기억나지 않지만, 목이 길고 얼굴이 작았다. 얄쌍한 쌍꺼풀에 큰 눈과 코와 입은 앙증스러운 탤런트 이나영이 떠오르게 하는 미인이었다. 역시 작은오빠가 푹 빠질 만한 미모였다. 그러나 말주변도 없고 성질도 고약한 우리 오빠가 어떻게 저런 아가씨의 마음을 얻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모르긴 해도 진안 아가씨 눈에 뭐가 씐 게 분명했다. 그 진안 아가씨는 얼마 후 엄마의 둘째 며느리가 되었고 둘째 올케언니의 눈에 씌었던 콩깍지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벗겨졌다.
반송에서 5번째 맞이하던 어느 가을 큰오빠는 부산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오산으로 향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만약 오빠네가 오산으로 가면 나는 큰오빠를 따라가야 하나 부산에서 혼자 살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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