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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Dec 06. 2021

대모라도 기꺼이 되겠습니다!

어느 날라리 신자의 다짐

가톨릭 신자가 되기 전 나 자신을 불교 신자라고 생각했다.

부처님 오시는 날엔 꼭 절에 갔고 공휴일에도 절을 가는 것을 좋아했다. 절에 가면 대웅전 부처님께 절을 하고 시주도 잊지 않았다. 염불을 이해하려 한다든가 불교 의식에 관해 공부하려는 자세는 없었지만, 스님들의 책으로 명상을 배우고 내 평화를 유지하며 쌓은 얕은 지식이 전부였지만 나는 내가 불교 신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가 돌아가신 뒤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나의 종교에 대한 자세는 180도 달라졌다. 종교에 대한 표면적인 믿음으로 살았던 내가 적극적으로 종교를 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변할 수 있는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직접 성당에 전화해서 성당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내가 사는 구역의 구역장님이 새 신자 교육이 들어가기 전까지 안내해주었다. 내가 처음 성당에 갔던 5년 전 새 신자 교리 교육은 6개월이었다. (지금은 10개월로 늘어났다)      


6개월의 마지막 달이 되자 교리 봉사자들이 대모나 대부를 정하라고 했다. 가톨릭에서는 세례를 받기 위해서 여자에겐 대모, 남자에겐 대부가 있어야 한다.

2017년 세례를 받을 때 나는 6개월 동안 교리를 가르쳐주었던 가브리엘라 선생님께 대모가 돼주십사 부탁했다. 독립운동가의 기운이 느껴지는 자유로운 영혼의 선생님께 어느 날 “선생님, 제 대모가 되어 주세요”라고 느닷없이 부탁했다. 갑작스럽고 어려운 부탁이지만 선생님은 선뜻 응해주셨다.

봉사자들이 나중에 말씀하시길 교리 교사에게 대모를 부탁하는 새 신자는 처음 봤다며 웃으셨다. 세례식에 곱게 한복을 입고 나타난 대모님은 멜리데 십자고상과 예쁜 미사포를 선물로 주셨다. 일반적인 십자고상은 예수님의 두 손이 못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 멜리데 십자고상은 예수님의 오른손이 내려와 있는 독특한 십자고상이다. 이것을 사기 위해 수지까지 원정을 다녀오신 가브리엘라 대모님은 특별한 것을 대녀에게 주고 싶었다고 했다.     

멜리데 십자고상

세례를 받고 2년이 지난 때였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딸아이가 첫영성체(첫영성체는 세례를 받은 사람이 처음으로 성체를 모시는 것을 말한다. 유아 세례를 받았다면 어느 정도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에는 “첫영성체를 할 어린이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제 능력대로 이해하고 주님의 몸을 믿음과 경건한 마음으로 충분히 지식을 습득하고 정성껏 준비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보통 우리나라에선 초등학교 3학년, 또는 열 살 전후로 일정 기간 교육을 받고 고해성사를 한 후 성체를 영하게 한다)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때마침 신부님께서 첫영성체를 받는 아이들 엄마 중에 만약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첫영성체 부모교육을 세례 교리 교육으로 인정해서 연말에 다른 새 신자들과 같이 세례를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통상대로라면 다른 새 신자들과 똑같이 10개월 동안 교리 교육도 받고 아이의 첫영성체를 하기 위해서는 또 부모교육도 받아야 했지만, 신부님께서 첫영성체 엄마들에게 편의를 봐주신 것이었다. 이런 좋은 기회가 있다고 딸아이 친구 엄마이자 동네 동생들인 A와 B에게 연락했다. 그 둘은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성당에서 새 신자 교리를 받던 중 도중에 포기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첫영성체 교육을 받아서 좋고 엄마들은 따로 세례 교리 교육을 안 받아도 되는 절호의 기회에 그들은 반색하며 성당 사무실에 가서 등록했다.  

    

같은 동네 사는 딸아이 같은 반 엄마 C도 성당에 다니기로 했다. 어느 날 내가 성당에 한번 가보지 않겠냐는 권유에 같이 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그날 C는 미사 중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 C에게 성당에서 새 신자 모집 중이라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C는 자기도 세례를 받고 싶다고 덥석 내 손을 잡았다. 평소 성급한 성격의 그녀를 알기에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라며 말렸다. 10개월 동안 교리 교육에 참석한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며 하다가 도중에 포기한다는 것은 더욱더 안타까운 일이 되기에 C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C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리하여 딸아이 친구 엄마 A와 B 그리고 C가 한 해에 세례를 받는 10개월의 대장정에 오르게 되었다.     


세 동생의 세례 날짜가 다가왔다.

B는 일찌감치 예전에 성당으로 인도해준 다른 자매에게 대모를 부탁했다. 문제는 A와 C인데 그들은 성당에 지인도 없고 나만 보고 덜컥 교리를 시작한 동생들이었다. 그렇다고 나도 세례받은 지 2년밖에 안 된, 견진 성사(세례 성사가 교회 안에서 태어난다고 한다면 견진 성사는 성년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만 12세 이상, 세례를 받은 후 2년이 지난 자는 견진 성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대모 대부는 견진 성사를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도 받지 않은 신자였다. 그런데 2년 동안 성인 대상 견진 성사가 없다가 우리 성당에 그해 여름에 견진 성사가 이루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도 딱 3일 동안 9시간 교육만 받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어쩜 일이 앞뒤 아귀가 딱 들어맞는지 놀라웠다. 이로써 나도 견진 성사로 신앙 안에서 성년이 되었고 A와 C의 대모가 될 수 있었다. 다른 분들의 대모나 대부를 보면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많다. 그런데 새 신자나 다름없던 내가 대모가 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그들을 위한 오지랖이었다.

아는 이 없는 낯선 성당에서 열 달 동안 공부하고 준비한 그들이 나 아니면 세례도 받을 수 없기에 용기를 내서 두 동생의 대모가 되기로 한 것이다. 두 동생 때문에 멘털이 탈탈 털릴 때도 있었지만 대모가 된 뒤 얻은 것은 나 한 사람만을 위한 신앙 생활하는 것보다 두 동생의 대모가 되기 위해 기도하고 준비했던 시간으로 나는 훨씬 많이 인내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호불호가 분명하고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판단이 빨랐던 내가 두 사람을 견딘 것을 보면 그들에게 내가 필요로 했다기보다 내게 두 대녀가 필요했던 것 같다.     




2021년 11월 코로나로 성당도 걱정과 불안으로 어수선할 시기에 나는 또 한 명의 대모가 되었다. 내 딸아이와 함께 첫영성체를 받았던 친구의 동생이 올해 3학년이 되자 첫영성체를 받게 된 것이다.

나의 첫 대녀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던 B의 둘째 딸이기도 하다. B는 둘째의 대모로 고민도 그다지 하지 않고 내게 부탁했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첫째가 우리 딸아이와 같은 반이기도 해서 평소 친한 사이라 나도 B의 둘째 딸인 소윤이의 대모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소윤이는 친구들이나 또래 언니들과는 말을 잘하지만, 어른들과는 말하지 않는다. 아마 세상과 소통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나를 만나도 히죽히죽 웃지만, 인사는 하지 않는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소윤이가 이번 첫영성체 의식에 앞서 바로 전날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3학년 전체에서 소윤이만 세례를 받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유아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소윤이만 단독으로 세례도 받고 어린이 미사 시간에 모든 이목도 소윤이에게 쏠리게 되었다. 소윤이 엄마에겐 “와, 소윤이는 좋겠다. 사람들이 소윤이만 보고!! 정말 부러워!!” 라고 우스갯소릴 했지만 낯가림이 심한 아이가 많은 사람 앞에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세례식 날이 되었다.

소윤이는 가운데 맨 앞자리에 앉고 나는 그 뒷자리에 앉았다.

세례식은 신부님과 예비신자와의 질문과 대답으로 시작한다. 신부님이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죄를 끊어 버립니까?”라고 첫 질문을 하면 “예, 끊어 버립니다.”라고 예비신자가 대답한다. 그런 다음 “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악의 유혹을 끊어 버립니까?” “예, 끊어 버립니다.” “죄의 근원이요 지배자인 마귀를 끊어 버립니까?” “예, 끊어 버립니다.”라고 예비신자는 그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해야 하는데 역시 소윤이는 내게 겨우 들릴 정도로 대답했다.

그 작은 아이의 안쓰럽게 떨리는 목소리와 어깨가 느껴졌다. 그러나 신부님은 이런 소윤이에게 목소리를 크게 내라고 다그치지 않고 “다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하고 재치 있게 넘어가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다음으로 성유 의식(축성된 기름을 바르는 의식), 물로 씻어내는 의식(축성된 물로 이마를 씻어내는 의식), 흰옷 입힘 의식에서 미사포를 쓰면서 세례식은 끝이 나고 소윤이는 ‘로사리아’로 다시 태어났다.     


이번 소윤이의 첫영성체와 세례를 위해 올리던 나의 기도는 이 아이가 하느님 안에서 평안하고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더라도 아이의 자유 의지를 존중해주시고 한결같은 은총을 내려주십사 하는 것이었다.

소윤이는 성장하고 자기 뜻을 찾아 길을 떠날 것이다. 그 길에서 부디 하느님의 음성을 듣길 바란다. 코로나로 인해 내 첫 대녀들은 세례를 받자마자 냉담자가 되었다. 냉담자든 열성 신자든 다 사랑하시는 주님이시기에 우리 대녀들에게 자비를 내려주시길 청한다.

미사에 빠지지 않고 열혈 봉사자도 아닌 날라리 신자지만 나를 대모로 부르신다면 굼뜨지도 핑계 대지 않고 얼른 달려가야겠다.


소윤이 로사리아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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