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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Jan 05. 2022

같이 있어 좋은 '긴긴밤'

독서 모임 '지음'의 첫 책을 소개합니다 

  6개월간의 도서관 글쓰기 강좌가 끝나고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이 모여 독서 모임을 결성했다. 모임의 첫 책은 글쓰기 선생님이었던 홍승완 작가님의 추천으로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 대상을 받은 루리 작가의 ‘긴긴밤’이다. ‘긴긴밤’은 홍승완 작가님이 개인적으로 2021년 최고의 책으로 꼽았다고 해서 읽기 전 기대가 컸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작가님의 호평과 인터넷 서점에 엄청난 후기와 서평에도 불구하고 내겐 그런 감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마지막 삽화에 코끝이 찡한 정도였다. 

  드디어 월요일이 되어 줌으로 독서 토론을 하게 되었다.

토론에 앞서 회원들 각자의 별점을 발표했다. 나는 별 3개를 주었다. 혹시 나만 이 책에 감동을 못 받은 건 아닐까 하며 분위기를 살피니 8명 중 3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회원들은 나와 비슷한 느낌이었고 감동의 크기는 별 3개 아니면 4개였다. ‘긴긴밤’의 독서 토론 그렇게 시큰둥하게 시작되었다.      


  ‘긴긴밤’의 주인공은 코뿔소 노든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멸종위기 동물인 흰 바위 코뿔소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코끼리들과 함께 지내다 독립을 위해 고아원을 떠나 밖으로 나가게 된다. 바깥세상에서 인간에 의해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죽게 되고 노든은 다시 동물원에 들어와 인간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이때 같은 코뿔소인 앙가부를 만나 동물원 밖으로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한편 동물원에 치쿠와 윔보라는 펭귄들은 검은 점이 박힌 버려진 알을 발견하고 번갈아 가며 알을 정성껏 품게 된다. 그러나 노든은 전쟁으로 앙가부를, 치쿠는 윔부를 잃고 알만 겨우 챙겨 노든과 함께 동물원을 빠져나오게 된다. 인간에게 복수를 꿈꾸던 노든은 펭귄 치쿠에 의해 마음이 바뀌고 둘은 함께 펭귄 알을 지키며 바다를 향해 떠난다. 그러나 쇠약해진 치쿠가 죽고 노든은 혼자 남아 알을 맡게 된다. 드디어 알은 깨어나고 노든은 새끼 펭귄을 보살피며 둘은 치쿠의 바람대로 바다를 향해 떠난다. 시간은 흘러 늙고 병든 노든은 초록색으로 일렁이는 초원에서 인간들에게 치료를 받게 되고 그곳에 머무르겠다고 새끼 펭귄에게 말한다. 새끼 펭귄은 노든과 함께 그곳에서 코뿔소로 살겠다고 하지만 노든은 그런 그에게 자신의 바다는 이곳이며 새끼 펭귄의 바다를 찾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노든을 뒤로하고 홀로 떠난 새끼 펭귄은 만신창이가 된 채로 바다에 다다르고 자신을 품어 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버지들을 생각한다.           

회장님의 발제로 독서 토론이 시작되었다. 발제는 책 제목인 ‘긴긴밤’의 의미, 우리의 ‘바다’는 무엇인가, 노든이 새끼 펭귄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이유와 마지막으로 책을 읽은 후 마음에 남는 키워드였는데 혼자 읽으면서 만나지 못한 감동은 각자의 생각을 나누면서 일어났다. 

  회원 A는 막내 아이를 입양했는데 ‘긴긴밤’에서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입양하기 전 그 아이에겐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입양기관에 그 이름이 어떻게 지어지게 되었는지 물었지만, 관계자는 자세히 알지 못했고 다시 지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른 뒤 그 이름은 친모가 지어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모른 채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 아이에게 너무도 미안했다고 했다. 그 이름이 친모가 이름을 지어준 것임을 알았더라면 아이를 그 이름으로 불렀을 것이기 때문이다. 

  A의 눈물을 보면서 이름은 그 이름을 지어준 사람과 내가 영원히 연결되는 보이지 않는 탯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아이가 그 이름으로 불렸더라면 자신을 낳고 앞으로 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준 그 이름으로 생모를 떠올릴 수 있었을 테니까.     

  또 다른 회원 B는 노든이 새끼 펭귄과 함께 바다를 찾아 길을 떠나는 장면을 읽으면서 중학교 때 한 친구가 생각났다고 했다. 그날은 작문시간이었는데 ‘길’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 후 발표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한 친구가 발표했는데 그 친구는 여중생인데도 새치가 희끗희끗하고 말투도 어눌했다고 한다. 

  ‘어릴 적 나는 엄마랑 예쁘게 입고 어떤 길을 한참을 걸었는데, 그 길의 끝엔 ‘보육원’이 있었다. 엄마가 조금 있다가 나를 데리러 온다고 했지만, 엄마는 중학교 때에도 오지 않는다. 나는 엄마가 온다고 한 그 길을 매일 본다.‘

B의 반 아이들은 그 친구가 고아라는 사실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그 친구는 어눌한 말투와 또래와 다른 외모 때문에 늘 외톨이었다. 작문시간 뒤로도 늘 혼자였던 아이를 떠올리며 B는 그 친구가 꼭 자신의 바다를 찾았길 바란다며 나눔을 마무리했다.      

  한 사람은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아닌 길러준 엄마의 품에서 긴긴밤을 보냈고 또 한 사람은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기다리며 긴긴밤을 보냈을 것이다. 자신의 본질을 의미하는 ‘바다’를 찾는다는 것은 혼자선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친 나를 누이고 쉬어야 할 긴긴밤에는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어도 코뿔소 노든처럼 옆에서 안아 주고 이야기해 주는 이가 있다면 손톱 발톱이 다 빠지도록 바다를 찾아 절벽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독서 토론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나 혼자 읽고 말았더라면 ‘긴긴밤’은 그저 그런 책으로 잊혔을 것이다. 독서 모임 회원들의 나눔 덕분에 ‘긴긴밤’ 속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독서 모임에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 ‘긴긴밤’에 대한 내 별점은 이제 5개다.                


         

노든의 눈 속에 새끼 펭귄이 보인다. 루리 작가가 글, 그림을 그렸다. 다 가진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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