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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Dec 16. 2022

요물을 위한 기도

z 플립 4의 부활 이야기

  갑자기 스마트폰 터치가 되지 않았다. 

조금 있으니 왼쪽 위에 하얀 선이 하나 생기더니 한 개가 두 개가 되고 휴대폰 중간에 잉크를 엎은 듯한 불규칙한 검은 얼룩이 넓게 생겼다. 이윽고 화면은 커지지도 않았다.

  4년을 썼던 갤럭시 S10은 고장 한 번 나지 않았는데 올해 여름에 바꾼 갤럭시 Z 플립 4가 몇 달 만에 너덜너덜한 걸레 조각이 된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성당 청소를 가지 말까? 안돼. 나이 많은 자매님들이 나오실 텐데’

우리 구역이 성당 청소할 차례인데 이번은 추운 옥외 화장실이었다. 청소 봉사는 참여가 낮고 더욱이 나이 드신 자매님들이 참여해서 반장인 내가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청소 마치고 서비스 센터 가면 될 거야’ 우선 걱정을 덮어놓고 성당으로 향했다.

  청소를 마치고 집에 오니 11시쯤 되었다. 서비스 센터에서 대기하며 마실 카페 라테를 한 잔 테이크 아웃해서 서비스 센터에 11시 30분에 도착했다. 

  삼성 서비스 센터에서 휴대폰 수리 부서는 2층인데 입구가 평소와 달랐다. 하얀 블라인드가 답답하게 내려와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오늘 접수는 마감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린가! 나는 믿을 수 없어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남자 직원에게 가서 물었다.

“오늘 휴대폰 수리 못 하는 건가요?”

“네, 오늘 접수는 끝났고요, 월요일에 오세요”

그 남자 직원은 내 얼굴도 보지 않고 노트북 화면만 보면서 바쁘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대기석에는 30~40명 정도가 빼곡히 앉아 있었다. 

‘핸드폰 고장이 왜 이렇게 많이 나는 거야! 아, 짜증 나! 아, 짜증 나! 어떡하지? 휴대폰 없이 주말을 어떻게 보낸담? 어, 맞다! 월요일 송년회 모임은 어떻게 해? 난 죽었다!’

  월요일에 대학 동기 송년회 모임이 잡혔는데 나 때문에 한 번 날짜를 미뤘던 터라 더는 미룰 수도 없었다. 약속 장소는 북수원에 새로 생긴 카페인데 그곳까지 휴대폰 내비게이션이 없이 가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일단 나이 든 직원에게 다시 부탁해보기로 했다. 

“제 휴대폰 좀 봐주실래요? 이런 상태로 어떻게 주말을 보내고, 더구나 월요일에 일하러 가야 하는데 정말 난감하네요” 거짓말도 보태며 절망에 찬 매소드 연기를 보였다.

“어이쿠 이건 빨리 고치셔야겠네요. 고객님이 마지막 번호예요. 이 번호표 갖고 계시다가 번호 부르면 접수해드릴게요” 그는 코팅된 작은 쪽지를 건네며 말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아직 일러요. 앞에 30명 정도 있어서 수리가 될지 안 될지 저도 장담할 수 없거든요”

“아, 네….”

“일단 대기하고 계세요”

그 순간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6번 번호표’를 손에 꼭 쥐고 자리에 앉은 뒤 가방 깊숙이 넣었다. 

  대기하면서 보니 대략 5~10분 간격으로 여자 직원이 나와서 번호를 불렀다.

“대기표 77번 고객님! 네, 어서 오세요. 여기에 번호를 눌러주시고 사인해주시면 됩니다”

내가 처음 들은 번호는 77번이었다. 그 번호표 주인은 호명되면 무인 접수기에 가서 자기의 휴대폰 번호와 이름을 기재했다. 그 접수는 10명 정도 되는 휴대폰 수리 기사에게 연결되고 자신의 휴대폰을 수리해줄 기사가 부르면 가서 고장 내용을 말한 다음 수리에 들어갔다. 

  휴대폰 수리 센터는 1시면 문을 닫는다. 11시 40분부터 피 마르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Z 플립은 접은 상태에서 커버 스크린을 통해 스피커폰 상태로 전화가 되어 신랑에게 1시 넘어서 집에 가겠다고 전화했다.

  내 앞에 먼저 번호를 불려 여자 직원에게 달려 나가던 수많은 사람들을 봤다. 그들은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는 안도의 눈빛, 주말에 스마트 폰을 손에 쥐고 지낼 수 있다는 환희에 찬 표정으로 빛났다. 

  한편 나는 휴대폰이 수리가 안 될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2시간을 기다려도 수리가 안 될 수도 있다니까 너무 열받지 말자. 근데 약속을 취소하면 나는 동기들에게 매장되니까 약속 장소는 차량 내비게이션으로 가자. 업데이트는 안 했지만 대충 그 근처 가면 찾겠지. 뭐. 근데 진짜 답답하겠다. 카톡도 사진도 포기해야겠구나’

  그러나 간절히 휴대폰 수리를 하고 싶었다. 부정적인 생각일랑 쫓아버리고 경건하게 성호경을 긋고 기도를 시작했다.

‘하느님, 저는 휴대폰을 오늘 꼭 고쳐서 주말도 평화롭게 보내고 월요일 약속도 휴대폰과 가고 싶습니다! 기적을 보고 싶습니다!’

딸아이가 고관절염으로 입원했을 때 이후로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센터는 대기 손님을 위해 동화부터 산문집, 잡지까지 다양하게 갖춰 놓았다. 대기석에 앉아 ‘좋은 생각’도 집어 들었다가 박완서 작가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도 펴보았지만, 당최 집중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사 갔던 카페 라테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었다.

  번호는 70번대를 지나 80번대, 90번대를 넘어가고 있었다. 대기 고객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내 추측으론 100번까지 가고 다시 1번부터 시작할 것 같았다. 내 예상이 맞았다. 100번을 부르더니 1번을 불렀다! 그때가 12시 30분을 넘고 있었다. 대기 번호 3번을 부르자 나는 비장한 걸음으로 다시 나이 든 직원을 찾았다.

“저 6번인데 수리할 수 있을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음…. 하실 수 있을 거 같아요. 복잡한 수리는 고객님 앞에 한 분 밖에 안 계셔서 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하느님 정말 착하게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도 기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4번은 대기를 포기하고 간 모양이었다. 5번 여자분 다음에 드디어 직원이 6번을 불렀다.

“6번 고객님!”

그 순간 머릿속에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 합창이 울려 퍼졌다. 

“마지막 고객님이세요. 오늘 초과 접수해드린 겁니다. 5번 기사님이 수리해주실 거예요. 5번 창구 앞에 앉아 계시면 됩니다”

이윽고 5번 기사님이 나를 불렀다. 그에게 가서 고장 발생 시간과 내용을 설명하고 나서 초조하게 물었다.

“금방 고칠 수 있나요?”

“네, 그럼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1시가 되었다. 기사들이 하나둘 퇴근했다. 이젠 고객도 나를 제외하곤 노트북 수리를 기다리는 두 명밖에 없었다. 

  “000 고객님!”

나를 부르는 이 청량한 소리! 

5번 창구에 얌전히 앉아 은혜로운 기사님의 말씀을 귀 쫑긋, 눈은 반짝이며 들었다. 

“화면 흑화로 액정 교체했고요. 사신 지 얼마 안 돼서 무상으로 수리했습니다”


기사님께 건네받은 소중한 내 Z 플립을 열어보았다. 플립은 다시 제정신을 차렸고 까만 잉크 자국도 사라진 얼굴로 예전처럼 ‘까꿍’ 하며 내게 인사했다. 쌓여 있는 카톡과 광고 문자를 손가락 끝을 눌러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2시간 동안 갇혀 피 마르는 기도와 마법 같은 수리 후 서비스 센터에서 풀려나 나른한 토요일 평범한 일상 속으로 들어갔다. 

나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울게도 웃게도 한 너, Z 플립 이 요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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