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의 코로나라는 단절의 터널 끝에서 딸아이가 12월 30일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운 좋게도 올해는 강당에서 가족들이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단지 학교에서는 한 학생당 두 명으로 인원 제한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아버님, 아주버님, 대학 졸업을 앞둔 조카까지 참석하게 되었다. 시댁 식구들이 총출동하는 것도 마뜩잖았고 우리 가족만 학교 방침을 어기는 건 아닌가 하는 불편한 마음으로 졸업식이 열리는 강당으로 향했다.
오래전 내 초등학교 졸업식은 바람이 어찌나 사나웠는지 그날 찍은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이 마구 날리고 있다. 그 사진은 내 친구 선경이 엄마가 사진기를 가져와서 찍을 수 있었다. 사진 속 나는 맨 왼쪽에 서 있는데 일찌감치 다 자란 160㎝ 키에 흰색 줄무늬 차이나 칼라 블라우스를 받쳐 입고 엄마 친구 딸이 입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남색 코듀로이 치마 정장을 입은 채 삼각김밥 같은 단발머리에 인상을 팍 쓰고 있다. 그 옆엔 꽃다발을 안고 자그마한 키에 6학년 다운 꽃무늬 스웨터와 청바지를 입고 포니 테일로 묶어 동글한 두상이 드러나 더 귀여운 선경이는 가운데에 있고, 누가 봐도 모녀임이 틀림없는 선경이 엄마가 맨 오른쪽에 서 있다.
내 졸업식에 우리 가족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내가 엄마에게 졸업식 얘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 없던 엄마는 꽃을 사고 졸업식에 가서 시끌벅적하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더구나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술이나 한잔 마셔야 모르는 사람과 말을 할 정도로 내성적이었는데 엄마 없이 졸업식에 올 리 만무했다. 아니면 이런 집안 사정을 알았던 나는 엄마에게 졸업식에 관한 이야기를 안 하고 용돈만 받았을 수도 있다.
졸업식이 끝나고 선경이 엄마는 회사로 돌아가고 선경이와 나는 우리 집 근처 중국 집으로 갔다. 우리는 졸업식 후 짜장면을 먹어야 한다는 불문율을 실천하기 위해 당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짜장면 한 그릇을 두어 젓가락 만에 해치우고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한 그릇 더 먹을까?"
"그래, 더 먹자!"
졸업식 날의 일들은 다 잊었지만, 그날 선경이와 해치운 두 그릇의 짜장면으로 차오르던 행복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중학교 졸업식에도 나는 혼자였다. 그 후 고등학교, 대학 졸업식은 아예 가지 않았다. 게다가 고3 학기 말에는 친구들에게 졸업식에 안 갈 거라고 미리 떠벌렸으며, 졸업식을 땡땡이치고 같이 놀자며 부추기기까지 했다.
나는 규율을 우습게 아는 성격이 있는가 하면 내가 해야 하는 숙제와 같은 의무나 책임은 밤을 새워서라도 하는 면도 있다. 어떤 상황에 따라 이 성격들이 튀어나오는지 그 패턴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졸업식에 가지 않았던 사건은 학교의 규칙을 우습게 생각한 성격이 가족의 관심과 사랑의 부재에 의해 제멋대로 강화된 것 같다. 그러나 속마음은 또래보다 강해 보이고 튀고 싶은 허세로 쓸쓸한 나의 졸업식을 감추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딸아이의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반별로 강당으로 들어왔다. 이윽고 아이 반이 들어오고 딸아이가 우리 곁을 스쳐 들어갔다. 아이가 소리쳤다.
“할아버지! 큰아빠! 윤채 언니!”
마스크를 썼지만, 아이의 함박웃음이 고스란히 보였다. 주변에 있던 딸아이 친구 엄마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수연이 친척들이 많이 오셨네요. 부러워요! 우리도 연락할 걸 그랬어요”
졸업식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아이는 단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할아버지에게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알 수 없는 손짓을 하는 등 오두방정을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은 머릿속에 행복이 가득 차 그 행복이란 것이 자기도 모르게 삐져나오는 것 같았다.
졸업식이 끝나고 하이라이트인 사진 찍기가 시작되었다. 우선 강당에서 담임 선생님과 줄을 서서 사진을 찍은 다음 아는 친구가 지나가면 붙잡아 잽싸게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그러다 볕이 좋은 1층 운동장 쪽으로 나왔다. 거기서 운 좋게 1,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여자 친구들을 만났다. 딸아이는 커다란 꽃다발을 안고 친구들과 함께 연예인처럼 카메라를 든 수많은 사람 앞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초등학교 졸업을 기억하고 있었다.
1시가 넘어가자 우리 가족은 시내에 있는 갈빗집으로 갔다. 접시를 서로 겹쳐야만 놓을 수 있는 많은 가짓수의 밑반찬과 소갈비를 먹으며 서로가 찍은 사진으로 졸업식 후기를 나눴다. 그러다 2월 9일에 예정된 조카의 대학 졸업식 얘기가 나왔다. 아주버님은 평일이니까 바쁘면 안 와도 된다고 말했다.
“아니에요. 아주버님, 수연이랑 꼭 갈게요. 가야죠!”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전에 조카의 졸업식 날짜를 알고 있었지만 참석할 생각은 없었다. 신랑은 일 때문에 졸업식에 갈 수 없는 데다, 신랑 없이 시댁 식구들과 조카 학교가 있는 포천까지 간다는 것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원래 갈 예정이었던 것처럼 말했고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 순간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담길 조카의 대학교 졸업 사진을 떠올렸다.
1월 10에 친정 둘째 오빠 딸의 중학교 졸업식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올케언니에게 카톡을 했다.
‘언니 채원이 졸업식 한다며? 수연이랑 같이 갈게!’
‘...’
카톡을 확인한 올케언니는 한동안 뜸을 들였다.
‘어, 근데 학교에서 학생당 한 명만 오라고 해서 안 와도 돼’
‘아, 그래? 알았어. 잘 다녀와. 수고해. 언니’
딸아이 졸업식에서 한껏 데워진 마음이 떨떠름해졌다. 올케언니는 모르겠지. 조카 졸업식에 다니며 쓸쓸했던 내 졸업식과 이별하고 싶은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