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용준 Aug 14. 2021

저는 역사책만 보면 다 외워야 할 것 같아요.

2021.08.13.

P1은 고교 2년생으로, 사회과 교사가 되고 싶어했다. 지리와 역사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최근에 들어 역사를 진로로 잡았으며, 역사교육과 진학을 목표로 한다. 지난 학기 역사 관련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성적 상담을 통해 인접 지역 사립 대학의 역사교육과 진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으며, 좀 더 노력하여 국립 대학 역사교육과에 진학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단, P1은 공부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었다. 그의 지난날의 좌절을 굳이 쓰진 않겠으나, 현재에도 두통에 자주 시달린다고 했는데, 스스로 그 원인을 찾은 듯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역사책만 보면 내용 하나하나를 다 외워야 할 것 같아요."

역사책에 나온 문장 하나하나를, 그대로 외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P1.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P1에게 큰 동질감을 느꼈다. 고교 시절은 물론, 학부 시절을 거쳐 임용을 준비하던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 뿐만 아니라 역사 시험을 치르는 많은 이들, 특히나 역사 교사를 꿈꾸는 이들은 그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했으며, 스스로를 얼마나 책망했을까. 학생이 말한 고민은 바로 내가 겪던 것들이었다는 것을, 그러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드는 것이면서도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것임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야기했다.

  "나도 사실 그런 거 못 외워."

그 순간 학생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담임 선생님이자 역사 선생님도 역사책을 외울 수 없다는 말엔, 학생은 분명 당혹감을 느꼈으리라 생각된다. 그것은 어떻게 역사 선생님이 역사책을 못 외우느냐는, 믿을 수 없다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스스로도 안도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의도했던 것은 두 번째의 이야기였다.
역사는 어려워. 다른 과목들은 공식이 있어서, 어떻게든 그것을 외우면 끝나 버리고 말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아. 공식이 없고, 공식을 만들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 살펴볼 수밖에 없지. 그런 점에서 역사는 다른 어떤 과목들보다도 어려워.
그런데 그걸 외우겠다니,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건 불가능해. 역사 선생님들도 그건 할 수 없어(물론 가능한 사람들도 다소는 있을 것이지만, 알 게 뭔가). (책에 나와 있던 어느 원서를 펼쳐 보여주며)나는 요즘 이런 걸 읽고 있는데, 그 내용이 다 기억 날까? 아냐. 하나도 나질 않아. 그저 기억나는 것은, 이 책에 어떤 내용이, 어디쯤 있었다는 것이지. 그거면 충분해. 역사책을 달달 외우는 것이 역사 공부라면, 그리고 그래야 의미가 있다면, 내가 이 원서를 읽는 것도 의미가 없겠구나?
인터넷 강의같은 걸 보면,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가르친다던지, 술술 외워지게 가르친다던지 하는 것이 많이 있어. 하지만, 외운다는 행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너에게는 그런 방법이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외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역사책을 여러 번 보길 바란다. 막히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보도록 해. 뭔가 하나라도 머릿속에 남는 것이 있을 거야. 그리고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봐. 그럼 점점 너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이야기가 점점 생겨날 거야. 등장하는 인물들이 살던 세계, 그리고 그들의 생각, 활동, 그런 것들이 말이야. 텅 빈 무대에 세트장이 설치되고, 배우들이 하나씩 올라오는 연극과 같은 것이지.
역사를 외운다는 건, 역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든지, 역사를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너와 나처럼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방법이 아니야. 너는 역사를 좋아하잖아. 너 스스로 역사를 싫어하게 만들지 마. 우리는 역사를 좋아하는 방법으로 배우자.

작가의 이전글 역사교과, 제왕학에서 학문의 시녀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