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의 다음 부분은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두 신 이래의 신들로부터, 역대 천황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신들이 탄생하거나 천황들이 어진 정치를 베풀었다는 내용들인데, 그밖에 강조되는 몇 가지 이야기들이 눈에 띤다.
스사노오가 검으로 거대한 뱀(야마타노오로치)을 쓰러뜨리고,
초대 진무 천황이 적군을 무찌르고 굴복시켰으며…
이러한 사적들에 이어, 훗날의 덴무 천황의 사적이 언급된다. 그는 『고사기』 편찬으로부터 불과 수십 년 전에 쿠데타를 일으켜 천황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서문에서는 특히나 덴무 천황이 아직 황자였던 시절에 군사를 일으켜 조정을 타도하고, 천황으로 즉위하여 덕정을 펼쳤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신들과 역대 천황들의 업적이 덴무 천황의 업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군사들은 천둥처럼 위세를 떨쳤고 번개처럼 앞으로 나아갔으며…
음양을 바로잡고 오행을 가지런히 하였으며…
그중에서도 덴무 천황이 군사를 일으킨 뒤로 혼란이 바로잡히는 모습이 강조되는데, 이 점이 제법 의미심장하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고사기』는 세상이 혼돈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물론 세상의 기원이 이러하였다는 것은 물론 『고사기』만의 특징은 아니다. 그러한 관념이 중국으로부터 수입되었을 가능성 역시 높다. 그렇지만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덴무 천황에게는 세상의 시작에 관한 이 이야기는 제법 쓸만한 것으로 여겨졌으리라 생각해 볼 수 있다.
태초부터 존재하였던 혼돈을 여러 신들과 역대의 천황들이 바로잡은 것이고, 덴무 천황에 이르러 그러한 업적이 정점에 이른다. 혼돈에서 질서로, 라는 서사 구조. 세상의 시작에서 비롯되는 이 장구한 이야기를, 덴무 천황의 생애로 압축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덴무 천황이 일으킨, 쿠데타라는 또 다른 혼란은 어느새, 질서를 바로잡은 위업으로 탈바꿈하며 정당화된다.
또한, 덴무 천황은 일본의 신들과 역대 천황들뿐만 아니라 고대 중국의 제왕들과도 비유된다. 그의 도는 헌원, 곧 황제(黃帝)보다 뛰어났고, 그의 덕은 주나라 문왕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덴무 천황이 성군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겠지만 오히려 그 때문일까, 어딘가 공허하기만 하다. 한편으로 당시 고대 일본의 조정이 중국을 매우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덴무 천황 즉위 이전부터 일본은, 율령이라는 질서로 다스려지던 중국을 모범으로 삼았다. 그리고 중국의 제왕들은 역대의 제왕들 중에서도 삼황과 오제, 그리고 삼대의 제왕들을 모범으로 삼곤 하였다. 그들은 황제와 주나라 문왕과 같은 인물들이었다. 고대 일본 조정은 중국을 모범으로 삼음으로서, 중국의 모범까지도 모범으로 삼게 된다. 한편으로 중국은 넘어서야 할 대상이기도 하였다. 덴무 천황이 황제와 주나라 문왕을 넘어섰다는 말에는, 중국에 대한 경외와 질시가 담겨 있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