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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남 Sep 13. 2022

32. 늙음을 기억하라!

_머리카락이 숨바꼭질을 하고...

나이와 함께 우리는 한 해 두 해 늙어간다. 기억력의 감퇴는 물론이고 주름살이 깊어지고 머리카락은 빠지고 점차 백발로 변한다.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이가 하나둘 빠진다. 자연현상이라고 하지만 쓸쓸하고 서글픈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평균수명이 지금의 절반 정도였던 옛사람들은 노화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나무나 바위는 아무리 오래 있어도 다른 존재를 해치지 않는다. 수백 년을 사는 잉어나 거북이는 신령한 힘을 갖는다고 믿었다. 그런데 사람은 오래 살면 지각이 혼미해져서 젊은 시절 잘해 놓은 것까지 망가뜨리고 만다. 그래서 조물주가 인간의 수명을 제한하였다.      


이용휴(1708~1782)가 인간 수명의 제한성을 강조한 이 말이 나는 환경을 파괴한 결과 심각한 기후재앙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던진 경고문처럼 읽힌다.  숙종 44년, 예순여섯이 된 김창흡(1653~1722)은 ‘나이에 따라 분명히 체력에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겁 없이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그 이유인즉,      


음식을 먹으려면 이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가 빠져 버리고 나니 빠진 이 사이로 물이 새고 밥은 딱딱하여 잘 씹히지 않는다. 간간이 고기라도 씹으려면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치아가 부실해서 고통받고 있었던 것이다. 예부터 ‘자식은 오복이 아니라도 이는 오복에 든다.’ 하며 치아 건강의 중요성을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더라도 김창흡은 빠진 이가 경고해준 바가 크다며 다음과 같이 스스로를 위로한다.     


조용히 들어앉아 있으면 정신이 안정되고, 말을 함부로 하지 않으면 허물이 적을 것이며, 부드러운 음식만 먹으면 오래 사는 복을 누릴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글을 읽으면 조용한 가운데 인생의 도를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니 이로움이 도리어 많지 않겠는가? (.......) 늙음을 한탄하며 슬퍼하는 자는 속된 사람이다. 늙음을 잊고 함부로 행동하는 자는 경망스러운 사람이다. 경망스럽지도, 속되지도 않으려면 늙음을 편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처럼 노화(老化)를 인정하고 순응하는 옛사람의 흔적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음은 권근(1352~1409)이 벗 김진양에게 묻고 대답한 내용이다.     


-호를 스스로 동두(童頭), 즉 대머리라고 지은 까닭이 무엇인가? 

-대머리 중에는 거지가 없다는 속담이 있으니 대머리가 복을 불러온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사람이 늙으면 반드시 머리가 벗겨지는 법이니 이는 내가 곧 오래 살 것이라는 징조가 아니겠소. 내가 가난하더라도 빌어먹지 않고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다면 그것도 나의 대머리 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이하곤은 일찌감치 흰머리가 났다. 그는 머리카락을 보며 이렇게 다짐하였다.     


사람이 쉽게 바뀌는 것은 외모뿐, 바뀌지 않는 것은 마음 아닌가? 나는 이제부터 머리카락이 허옇게 변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너 흰 머리카락이여, 앞으로는 더욱 늘어나거라. 아침저녁으로 너를 바라보며 바뀌지 않는 나의 마음이 너를 따라 바뀌도록 하리라.     


지금은 의학의 발달로 주름살을 없애고 머리카락을 심고 임플란트로 새 이빨을 만든다. 그렇더라도 퇴화하는 현상 자체를 부정할 수 없을진대 선인들의 긍정적 마인드를 배우는 건 어떨까? 

   

문득 일본영화 “나라야마 부시코”가 기억났다. 인간 생존에 대한 본능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이 영화는 198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후카사와 시치로의 소설이 원작으로 가난한 가족의 입을 덜기 위해 일흔 살이 되면 노인을 산에 버려야 하는, 일종의 현대판 고려장 이야기다. 예순아홉이 된 노파 오린은 튼튼한 치아가 수치스럽다.  죽을 때가 되었을 만큼 쇠약해졌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돌절구에 이빨을 부딪쳐 깬다. 부러지고 깨져 피가 흐르는 생이빨을 들고 “나도 이빨이 빠졌다”고 외치며 좋아하는 노파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요즘 나이가 많은 사람을 비꼬는 말 중에 꼰대와 틀딱이라는 표현이 있다. ‘틀딱’은 틀니를 부딪쳐 딱딱 소리를 낸다는 뜻으로 노인의 신체적 결함을 조롱하는 말이다. 늙는 것도 서럽거늘 그런 식으로 노인혐오를 표현하는 것은 성숙된 자세가 아니다. 다 함께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품격 있는 유머가 아쉽다.   

 

어쨌거나 노화를 되돌릴 수 있는 생체물질이 있을까? 미 하버드의대 데이비드 신클레어 교수가 이끈 국제공동연구팀은 만2세 쥐에게 ‘NAD’ 효소를 2주간 투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근육 조직이 생후 6개월 수준으로 돌아간 것을 발견했다. 이는 60대 할아버지를 20대 청년으로 되돌린 수준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2013년 12월 19일 생명과학분야 권위지 ‘셀’에 실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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