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애오(愛吾)
몇 년 전 유명 연예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키가 좀 더 컸으면, 살이 더 빠졌으면, 혹은 입과 눈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들이 보기에 거의 완벽한 외모를 가졌으니까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할 것 같은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정말 사람들의 욕망에는 한계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조사내용을 가지고 내린 결론이었다. 즉 그들이 원하는 대로 큰 눈, 큰 코, 큰 입을 조합시켜 보았더니........ 가장 추하고 괴상한 모습이 되었다.
자신의 못난 용모를 바꾸려 하지만 그것이 목숨을 앗아간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정조 때의 문인 심낙수(1739-1799)의 말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용모와 재주가 남보다 못하다고 불평을 하며 잘난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나 뛰어난 재주라 해도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그는 지식인이 권력과 이익 때문에 뜻을 꺾지 않는 것도 자신의 뜻을 생명처럼 알기 때문이고 이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이천보(1698-1761)도 먼저 자기 자신을 알고 나아가서 사랑하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의 근심은 남을 알아주지 못하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을 알지 못하는 데 있다. 오직 자기를 알지 못하므로 남이 칭찬하면 기뻐하고 남이 비방하면 슬퍼한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그릇된 세상을 비판하면서 남다른 자기애(自己愛)를 시로 표현하였다.
이하(李賀) 같은 천재도 내려다보니 해동에선 더욱 더 뛰어나구나. 이름 높아 헛되이 가려졌지만 네 삶에서 만난 자 누구더냐? 네 모습은 지극히 자그마하고 네 말은 또 너무도 어리석으니 의당 너는 네 몸을 거칠고 후미진 산골짝 안에 두어야 하리.
당나라 천재 시인 이하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후미진 곳에 버려진 존재가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나를 사랑하다’라는 뜻을 가진 ‘애오(愛吾)’라는 단어를 좋아했다. 그 말이 도연명의 시 <산해경을 읽고서>의 ‘나 또한 내 집을 사랑하노라’라는 구절에 나온다. 그래서 집 이름을 나를 사랑하는 집이라는 의미의 ‘애오려(愛吾廬)’라고 지은 선비들이 많았다. 홍대용의 집 애오려를 위해서 벗 김종후는 이렇게 썼다.
내 귀를 사랑하면 귀가 밝아지고 내 눈을 사랑하면 눈이 밝아진다.
자신을 사랑하여 귀가 밝고 눈이 총명해지므로 그렇게 자신의 뜻을 지키는 것이 선비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김종후의 글을 보자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이 유언으로 남긴 애송시가 생각났다.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두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보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햅번은 영화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에서 사랑스러운 외모와 연기를 선보여 일찌감치 한 세기의 연인이 되었다. 60세 이후에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앞장섰다. 이때의 그녀 모습은 젊은 시절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햅번의 말과 행동은 진정 나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남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임을 대변해 주고 있다.
세상보다 자신을 사랑한다면 세상을 맡길 수 있다. 반면 자신을 바쳐 세상을 사랑하려 든다면 어찌 세상을 맡길 수 있겠는가?
노자 또한 세상을 구하는 일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부터라고 말했다. 오늘은 이 말씀을 곱씹으면서 나 또한 ‘나를 진정 사랑하고 있는가?’ 자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