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전히 아주 울컥 무수히 많이 있거든
불에 타 죽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문득 궁금할 만큼 지난해 3월은 괴로웠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남 말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다 가진, 직장 동료, 해외 지사에 파견 나간 매니저님이 잠시 들어왔다. 예의바르고 매너 좋은 그는, 이런 저런 안부를 묻는데도 빠지는 것이 없다. 난 미쳤는지, 회식 때 4살이나 많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약을 올렸다고 하는데, 그는 그 다음날, 내 속이 괜찮은지 챙겼다. 뭔가 크게 진 느낌이었다.
"너무 챙피하니까, 아는 척 하지 말아줄래요?"
"하하, 왜 챙피한데요."
"저를 그냥 때려주세요. 너무 죄송해요."
"사과하실 일 없어요. 오히려 정말 덕분에 재미있었어요."
나는 문득 궁금했다.
"와이프랑 크게 싸운 적 있어요?"
"하하하, 그럼요."
"소리 지르고, 욕 하고 그런 적 없죠?"
"욕 많이 하죠."
"에이, 물을 걸 물어야지."
"하하, 왜요. 저 자주 싸워요."
"싸우는 게 궁금한 건 아니고, 그냥 과장님이 이렇게 매번 양반인데, 언제 한 번 확 흐트러진 적 있을까 궁금해서 여쭤봤어요."
"흐트러진 모습이야 외부에만 안 보여주는 거죠. 와이프는 사진을 찍은 적도 있어요."
아.
나는 이 다음 대화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관계. 너와 나만 아는 그런 모습. 우리만 아는 것. 우리. 나랑 너. 이런 말은 내게 위험했던 것 같다. 나는 그 날 이후, 정말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팔 하나 빼고 모든 수족이 찢겨 나가는 것 같던 그 시간들을 뒤에 두고 걸어나오며, 나는 정말 오랜 시간, 그 모든 것을 혼자 삭이며 버텼다. 나의 상처와 나의 고름은 나만 안다. 나는 나 혼자다. 나는 외로움이 당연한 혼자다.
문득, 들려오는 그의 소식들은 내 상처에 소금을 뿌렸지만, 그 고통도 나 혼자 감수해야했다. 이야기 할 사람을 찾아본 적도 있었다. 남 일은 우습다. 친구랍시고 앉아 털어 놓았더니 나는 더 외로워졌다. 그들에게는 다른이에게 '내가 Nima 에 관해 얘기가 있는데...' 로 시작하는, 제가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 눈길을 끌어보려 입질하기 위해 쓰는 미끼 노릇으로 활용할 뿐, 내 고통을 덜어주는데는 관심 없었다. 그 모습을 보다보니, 더더욱 깊이 침잠했다. 돌이켜보니 지난해 3월은 정말 생지옥이었다.
새로운 시간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아지고, 그냥 하루 하루 대충 보내고 이불 속에 들어가기만을 학수고대하다보니, 어느 덧 다시 3월. 나는 지난 주, 우리가 같이 알고 있던 동료 몇과 맥주를 한 잔 기울였다. 사실 우리 모두 이직해서 모두가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도, 역시 안주는 같이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나왔다.
"** 님은 이제 진짜 자리 잡았어요. 자신감도 생긴 것 같고."
"잘 되었네요."
"포상 휴가로 외국 여행 갔다왔어요."
"아... 좋네요. 소식을 자주 듣나봐요."
"네, 지난 주에도 보고, 거의 매주 봐요. 퇴사하고 나니 더 자주 봐요."
니랑 쏘주 한 잔 하고 싶다.
그가 자주 하던 말이 기억났다.
내가 마지막에 무던히도 빌었던 것. 우리 (다시 예전처럼)쏘주 한잔 하자는 말. 그건 정말 남북통일보다 어려웠는데, 박살이 다 난 지난 해 아무 때나, '너 뭐하니, 맥주 한 잔 할래.' 라고 할 때는 내가 너무 별 거 아닌 것 같아 피눈물을 쏟았었다. 그 놈의 술 한잔. 그의 술 버릇이 떠오르고, 그의 목소리가 떠오르고, 우리였던 시절이 조금 떠올랐다. 갑자기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그의 체온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나는 다시 술 자리 대화들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가 포상휴가를 누구랑 갔는지, 어디를 갔는지 알고 싶지 않다. 어차피 나는 그와 어디를 갈지, 어떻게 갈지, 가서 뭐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사람이 아닌데, 그걸 알아서 무엇하리. 그저, 1년이 지난 이 맘 때까지, 나는 나 혼자 웅크리고 살아야하는 처지인데, 다른 소식 같은 건 넣어둘 자리가 없다.
죽기 전, 어느 순간에, 내 삶에 더 자신감이 생긴 어느 무렵, 그를 한 번 보고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동안 어찌 살았는지 같은 건 묻지 말고, 그냥 보고 싶었다고, 간간히 아주 힘들었다고 쿨하게 한 마디만 인사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