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ife

캡틴 아메리카의 마지막 소원

어벤져스 엔드게임

by Nima

시간이 남고(?) 자리가 남아 (!!) 전 국민이 몰려들고 있다는 어벤져스 엔드 게임을 봄.


(줄거리 얘기를 할 생각은 없지만,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있으면 보고 안 봐도 살아왔던 어벤져스이지만, 지난 에피소드였던가, '인피니티 워'를 보고는 이 시리즈를 단순히 쫄쫄이 입고 뛰는 히어로 오락 영화라고 생각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 있었는데, 이번 엔드게임을 보고 돌아나오는 길, 끊었던 담배를 찾아 물듯, 다시 브런치로 돌아왔다.


이번 편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있다. 물론 자발적으로 신나서 떠나는 시간 여행은 아니고, 목숨 걸고, 지구를 지킨다는 어마무시한 대의명분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길이다. 어찌 저찌 여차 저차하여 전 세게 온 우주의 평화를 제자리에 돌려놓은 어벤져스 멤버들 중, 마지막 설겆이를 맡은 캡틴 아메리카는 스톤 가득 채운 가방을 들고 과거에 잠시 들렸다 돌아온다. 쫄쫄이를 벗은, 평범한 노인의 모습으로.


그 모습을 본 샘이 그녀를 만났는지, 어땠는지 물었고, 캡틴 아메리카는 얘기해줄 생각 없다고 하며 얇은 미소를 띄웠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시간이 우리에게 보여졌다. 황홀한 엔딩이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 마지막 엔딩컷을 곱씹고 있다.


히어로의 고단한 인생에 대해 그 유니버스에서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보상이었다. 그의 온 인생을 한 순간에 안아주었다. 나는 미어터져나가는 극장 한 구석에서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


두 사람 모두 애틋하게 기다렸던 먹먹한 재회.


다시 봐도 별 거 없던데, 라고 가볍게 넘겨짚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을, 아름답게 시려오는 진짜 재회.


두 눈을 감고 미소 짓던 캡틴 아메리카의 얼굴은 오래도록 기억날 것 같다. 부럽고, 멋져서.




아무리 연기 천재 신동이라 하더라도, 세월이 주는 깊이는 배워서 카피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수 많은 감정을 배우고, 경험하면서 나오는 순간의 표정들. 머리숱이 줄어든 토니 스타크와 주름이 깊이 패인 토르 아저씨들도 아주 최초의 에피소드보다 원숙해졌겠지만, 방패와 쫄쫄이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미스터 모범생, 캡틴 아메리카의 마지막 표정은, 거의 대부분 세월의 깊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것을 이해하다니 내가 늙은 건지,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하다보니 나이가 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순간 지나가는 만족의 깊이, 사랑의 깊이, 인생의 깊이 같은 것들은 돌이켜볼 수록 마음에 든다.


캡틴 아메리카, 참 부럽다.





얼마전 그를 만났다.


만나려고 한 것은 아닌데, 둘 다 서로 갑자기 용기있는 척 하더니 결국 마주보고 앉았다. 우린 아주 이상한 말만 해댔다. 그리고 헤어졌는데, 그는 그제야 뭔가 아쉬운지 또 전화를 해댔다. 나는 일단 다시 모든 것을 차단하고 돌아누웠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엉망이었다.


내가 꿈꿨던 순간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오래도록 잊지 못하던 그 순간, 그 자리, 그 모습, 그 말.그 모든 것이 이번 생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무엇을 바라고, 그를 다시 만났던가. 무던히도 후회했다.

캡틴 아메리카가 다시금 부럽다. 둘중 하나 죽었다고 생각하다 만나면, 애틋하기나 할텐데. 우린 여전히 서로 긁다가 돌아서서 후회했다. 둘 다 이 번 생은 그냥 갈 길 가는게 맞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좋은 것만 기억나요.'

토니 스타크가 아버지를 회상하며 한 말이다. 누군가를 기억하며, 좋은 것만 기억나다 죽고 싶다. 인생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순간, 좋은 기억만 뭉게뭉게 떠올랐으면 좋겠다.



지금의 헐크 말고, 에드워드 노튼의 헐크를 좋아했던 내게 최애캐릭터 변경이 생긴 것 같다. 다 늙어버린 캡틴 아메리카가 최애캐이다.



그간 무생물처럼 살다보니 벌써 5월이다.


다시금 내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 움직이길 바라며, 늦은밤 청승 일기 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