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ife

토요일 밤, 커피 한 잔

내일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까 사치 한 번 합시다.

by Nima

1.


4월이면 이모가 된다.

두어달 뒤 세상에 나온다는 조카의 태명은 똘봉이.

아빠가 동생을 부를때(특히, 약주 한 잔 하신 다음) 자주 쓰시던 별명인데, 제부가 조카의 태명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제부의 마음에 모두 뭉클해 했다.


제부는 아들만 둘인 집의 둘째 아들.먼저 장가간 제부네 형도 아들만 둘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똘봉이까지 아들이라는 점이 밝혀지자(?) 제부 집안은 아주 풀이 죽어있다. (난 아들이 더 좋은데! 모두 딸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한다고 생각함!!!)

제부의 조카들은 이제 막 초등학교 1,2학년 무렵의 꼬마들인데, 나름대로 이미 형아 노릇할 준비가 다 되었는지, 장가간 지 오래된 삼촌에게 늦게 찾아온 동생, 똘봉이에 대해서 그 전에도 이만 저만 헤아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똘봉이가 태어날 세상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는다는데 (가령, 미세먼지가 태아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걱정) 지난 8개월 간, 이 조카들의 진짜 걱정은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바로 '똘봉이'가 진짜 이름일까봐에 대한 걱정!!


구정 연휴, 작은 엄마인 동생을 몰래 부른 큰 조카는 아주 세상 근심 다 짊어진 얼굴로 '똘봉'이라는 이름에 대해 재고해 볼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꽤나 분명했는데, 동생의 이름이 '똘봉'이라면, 얘는 학교가서 아주 큰 놀림거리가 될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 엄마인 작은엄마의 이름이랑 아빠인 작은 아빠의 이름을 믹스해서 그것 (똘봉)보다는 나은 이름을 지어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뭐라도 다시 한 번 시도해보기로 약속만 한다면, 본인도 크게 일조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워줬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나니 코끝이 찡했다.
이 우주 최강 순수한 마음은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 제부 조카의 이 예쁜 걱정은 무료했던 지난 내 인생을 돌아보는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다. 나는 좋은 어른인가. 아니, 좋은 어른이 되겠다는 그런 허황된 빅 픽쳐는 차치하고, 똘봉이와 형아들이 행복할 수 있게 뭐든 열심히 해주는 고모, 아줌마가 되고 싶어졌다. 갑자기 그런 마음이 간절해지고 나니, 안 그래도 글을 (다시) 쓰고 싶어졌다.


2.


홍콩에 살고 있는 홍콩 친구가 하나 있다. 우리는 정말 십수년 전,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만났는데, 남부 오지에서 나와 그녀는 다른 유러피안 학생들과 몰려다니며 인생에서 영원히 기억될 즐거운 한 때를 같이 보냈다. 세상이 좋아져서 '페이스북' 이 보우하사, 우리는 연락도 자주 하고, 심지어 몇 년에 한 번은 만나기도 하는데, 졸업하고 한 번도 안 보는 한국 동창들과 비교하면, 나름 나를 더 자주보는 친구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사실 'How are you?'류의 안부와 짧지만 강렬했던 한 학기에 대한 추억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마스크'를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나는 똘봉이 이하 모든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기로 하지 않았는가. 친구의 아들은 3살이다. 나는 그가 태어났을 때, 심지어 홍콩을 방문하기도 했다. 'auntie'라고 부를 날을 고대하겠다고 말했다. 내 마음이 급해졌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고 있느라, 그저 중국으로부터 어떤 안타까운 바이러스가 돌고 있다는 점, 그 덕에 오며 가며 요란한 마스크 행렬이 생겨났다는 점, 그 행렬의 수준이 황사나 미세먼지 시즌과는 다르게 예사롭지 않다는 점 정도는 알았지만, 내 하루, 내 일상에서 '마스크를 살 수 있는지' 여부가 어떤 관심사는 아니었다. 오며 가며 황사가 돌 무렵, 주워다 놓은 마스크가 몇 장 있었고, 난 그저 가방 어딘가에 넣어 다니고는 있으니까. 게다가 이 난리가 곧 지나갈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는데, 3살짜리 아들이 있는 친구에게는 그 차원이 아닐 수도 있겠다, 다급할 일이겠다. 이 생각이 들자, 마음이 괜히 급해졌다. 나는 즉시, 내가 사서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간단해 보이던 일은 정말 힘들었다.

일단, 온라인이든 모바일이든 마스크는 품절이거나, 배송이 지연되었다. 시킨지 언제인데 일주일 넘게 오지 않았다. 공수표 던지는 '친구'가 될까봐 조금씩 불안해졌다. 돌아다니며 약국마다, 올리브영마다 마스크를 찾았다. 거의 품절이었다. 그나마 한 두개 남아있는 것들은 모조리 사들였다. 사재기하는 세력에 대하여 엄벌에 처하겠다는 뉴스가 나왔다. 나는 마스크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보부상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절박할 때 빈 말 날리는 사람이 되는 것만큼은 싫었다.


나름, 나 혼자 똥줄타던 '국산 마스크 모아 보내기'프로젝트를 마치고, 친구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친구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다가, 우리의 지난 스물둘 가을을 이야기하다가, 그 와중에 함께 만나오던 가느다란 인연의 친구들을 이야기하다가, 내 안부를 물었다.


"How's your love life? (애정전선은 어찌 되어가고 있어?)"

"Oh, call me nun. (비구니/수녀다)"


친구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한참을 더 공들여 덕담을 뿌렸다. 마스크 몇 장 보내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워낙 자상한 스타일이라 내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던 친구였기에 나는 별 생각 없이 간만에 수다를 떨게 되었다. 친구는 기어코 John(코흘리개 시절 나의 남자친구)이 보고 싶지 않냐는 말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같이 가진 추억이 얇다보니 테마는 금방 고갈되었다. 마지막 테마인 John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언제나처럼 보고는 싶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는 John에게 연락해보라고 했다. 이건 보통의 대화 경로가 아니었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기로 했다. 우리는 1년만에 이야기하는 것이었고, John은 영국에 있고, 그는 이미 결혼했다는 사실을 친구가 잊었을 수도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는 John이 나를 보고 싶어하더라고 했다. 지난 해, 영국에 갔었다고 했다.


"John 결혼 생활이 그렇게 성공적이진 않아보여, 사실 나의 결혼 생활도 그렇고 말이야."

"그에겐 안 된 일이지만, 난 다시 뭘 해볼 그럴 생각이 없어. 아주 오래전 일이고, 아주 어렸고, 좋은 기억이야."

"그럴 생각 하라는 건 아니야, 다만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지 않아. 그도 그렇게 그냥 사는 것일 뿐이지 너랑 다시 연락도 못하고 그럴 사이는 아니잖아."

"그래도 갑자기 7년만에 연락해서, 너 결혼생활은 어때? 라고 묻기에는 그는 이미 내 인생에서 많이 사라졌어."

"사라진 이유는 각자 너무 먼 곳에 살고 있어서 그런거지. 서로 중요하지 않아서는 아니야."

"그치만."

"그냥, 너처럼 그렇게 고독하게 사는 것보다는 예전에 좋았던 기억이라도 떠올리는게 좋을 것 같아서 한 말이야. 너는 지금 아무하고도 관계가 없는 채로 3년을 보냈다고 했잖아. 어떻게 사니? 무엇이 너의 인생에서 즐거움이 되니?"


어제 저녁 나는 마스크를 보낸 것을 잠시 후회했었다. 그냥, 내가 너무 초라한 것 같아서.



3.


John은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해도 얼굴조차 흐릿해져버린 사람이지만, 그와의 추억은 정말 내 인생의 큰 동력이 되었다. 그와 나 사이에 남은 건 몇 장의 사진 뿐, 거의 다 사라졌다. 사라진 것들 중에 제일 아쉬운 것은 그가 내게 준 무언가가 아니라 그 놈의 '프리챌' 메일이다. 내가 서울로 돌아오고, 그가 한 학기 더 그 깡촌에 있게 되었는데, 내가 떠난 다음날, 그는 정말 한 편의 시 같은 메일을 썼다. 한국에 돌아오고 며칠 뒤, 당시 나의 데일리 메일이었던 프리챌 메일함에서 그의 메일을 읽고난 뒤, 나는 아주 오래도록 펑펑 울었다. 그의 목소리가 음성지원되었던 아름다운 세레나데였다. 나는 그 이후에도 그렇게 짜릿한 고백을 받아본 기억이 드물다.


프리챌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하고, 그렇게 세월이 지나갔는데, 문득 어제 다시 그 메일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졌다. 가느다란 인연의 줄기 중에 그 맨 처음이 되는 나름 상당히 중요한 내 보물이었는데, 아뿔싸, 프리챌은 없어졌다. 내 메일은 사라졌다.


사실 프리챌이 내게 행한 해악(?)은 그 뿐이 아니긴 했다. 난 대학시절 모든 사진이 프리챌에 있었는데, 사라졌다. 난 기억할 끈이 없는 사림이 되었다. 나는 가질 수 있는게 없었다. 프리챌 덕에 내 20대는 그냥 날아간 것 같았다. 말 못할 허탈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거 있으면 뭐하나 스스로에게 되물어보기로 했다. 사진이 빵빵하게 백업되어 있다한들, 매번 '라떼는 말이야'나 외치면서 살고 싶은가? 그건 아니다. 핸드폰을 바꿀때마다 신기하게도 예전 2G 핸드폰 사진까지 백업해서 다니는 사람마냥, '자기 잘 나온 사진'은 시리즈 별로 다 가지고 다니며 홍보 전단지 뿌릴 인간도 아닌데, 사진은 어디 갖다 쓸 것인가. 보여줄 곳도 없는 외로운 예비 독거 노인네, 그깟 20대 사진들 그거 뭣이 중헌디.


생각해보니 괜찮은 논리였다. 나는 이렇게 쿨해서,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쉬크해서 내 20대 에서 가장 반짝거렸던 조각들 같은 것에는 미련 두지 않는다. 그까짓 메일 같은거, 그까짓 사진 같은 거, 없어도 살 수 있다. 되뇌이다보니 그럴 듯했다. 그렇게 다짐하다가 페이스북에 들어갔다. john을 찾았다. 그 4명의 가족은, 차곡 차곡 업데이트 되는 인생을 살고 있다. 결혼, 출산, 성장. 두 아들은 John을 무척이나 닮았다.


나는 페이스북 앱을 없애버렸다. 이래저래 정초부터 영 모양이 안 난다.



4.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모로코에 다녀왔다. 계획에는 없었는데 (충동적으로) 사하라 사막 투어를 결정했고, 그 덕에 사막에서 공항으로 빠져나오는 것은 정말 아찔한 일정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지만, 이번 생 다시는 무식하고 싶지 않을 정도.


마라케시에서 사하라로 출발하는 순간부터 가이드는 사막 깊은 곳으로부터 공항으로 한 번에 데려다줘야하는 마지막 일정에 관하여 틈틈히 걱정했는데, 말 끝은 항상 이렇게 마무리 했다.


"인샬라."


걱정하는 그를 보고 우리가 걱정하기 시작하면, 그는 '인샬라'라고 했다. 헤어질 때 하는 인삿말이라던 저 말은, 알다시피 '신의 뜻대로'라는 뜻이다. 어떻게든 될 거니까 일단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가이드, 그가 진심 지옥같은 산 길을 뚫고 기적적으로 우리를 안전하게 공항에 내려준 순간, 헤어짐을 아쉬워 하며 귓가에 다시 '인샬라'라고 인사했다. 인샬라, 한동안 내 귓가에서 '인샬라'라는 말이 떠나지 않는다.


인생사 같은게 압축적으로 이해될 것만 같다. 뭐든 내 손을 떠난 일은 쿨하게 내려놓으며, 멋지게 '인샬라'를 읊조리기면 순식간에 내 인생이 평화로워 질 것 같다.


다 팔자니라, 신의 뜻이니라.

진리가 한 길로 통한다는 둥의 거창한 말로 포장 안해도, 뭔가 묵직하게 내 안에 들어오던 말.


오늘 밤, 맥주 한 캔 대신 갑자기 너무 마시고 싶었던 따뜻한 커피 한 잔 옆에 놓고, 새벽 내내 각성된 감각의 날을 모조리 세운 채, 무너져가던 내 마음에다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샬라"


똘봉이 생각에 뭐든 잘해보려고 마스크 한 번 보냈다가, 문득 나만 업데이트 없이 살고 있는 이 순간을 마주하고, 간신히 진정시켜둔 내 고독이 다시 몸부림치기 시작했지만, 다 팔자이니라.


너는 너만의 인생이 있을 것이다. 이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릴 것이며, 이 고독이 끝나면, 다른 인연이 있을 것이다. 날아간 프리챌도, 남의 페이스북도 다 필요없느니라. 인샬라. 너의 인생은 또 그렇게 빛나진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어떠한가 평화롭게 조용히 안정을 찾는 것도 행복하지 않던가. 너는 이미 정신이 아프던 여자를 벗어나 안정적인 밥줄도 찾았다. 그거 하나만 봐도 너 인생도 잘 가고 있다 그것이 네 길일 수도 있다. 인샬라. 조바심 내지마라. 외로워하지 마라. 추억하지 마라. 기억을 끌어안고 살지 마라. 인샬라



잠은 자야되는데, 이제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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