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내려가던 나뭇잎이 당신 뒤통수에 붙어 당신을 괴롭히던 순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만히 있는 일 뿐이다. 하지만, 그 나뭇잎은 결국 당신을 지나간다. 물살이 세지 않아도, 당신이 그저 앉아 있어도, 당신을 괴롭히던 나뭇잎은 그렇게 지나가게 된다.
당신은 시냇물 한 가운데 놓여 있는 돌이다.
억겁의 세월이 흐르면, 시냇가의 돌은 결국 바다로 흘러가게 된다. 당신은 우직하게 시냇물을 견뎌낼 것이고, 시간은 결국 당신을 바다로 이르게 할 것이다. 당신은 나뭇잎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2.
스티브 잡스가 죽고, 누군가 그의 킨들을 열어봤다.
비즈니스 관련 서적이 즐비할 줄로만 알았던 그의 서재에는 몇 권의 명상 서적들이 있었다는데, 위 글은 그의 서재에 있던 불교 명상 서적, Zen Mind 의 일부이다.
당신이 시냇물 한 가운데 놓여 있는 돌이라면, 당신을 괴롭히던 그 사람은 시냇물을 떠내려오던 나뭇잎이다. 나뭇잎이 당신 뒤통수에 들러붙어 당신을 괴롭힌들, 그 나뭇잎은 당신을 영원히 구속할 수 없다. 그 사람은 그저 지나가는 나뭇잎이다.
곱씹을수록 눈물나게 멋진 글이다.
이보다 더 묵직하게 가슴을 후벼파는 위로의 말이 있을까, 한참 감동에 젖어 있던 나는 문득, 한 가지 궁금해졌다.
나는 무슨 바다로 가는가. 내가 이 모진 고통들을 견뎌내어 결국 이르게 될 바다는 어떤 바다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참는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나.
나는 무엇인가.
3.
장래희망을 적으라는 말을 들을때마다 나는 상당히 곤란해했었다. 뭘 해야할지 몰랐다. 부모님은 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몰랐다. 지금의 나는 꽤나 안정적인 직장에서 꽤나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으며, 꽤나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으며 나름 보람을 찾았지만, 어릴적의 나는, 내가 이 일을 하게 될지 몰랐다.
최악의 상사를 만나 인생에 기로에 섰을 때, 선배에게 이렇게 넋두리 한 적 있다.
"내가 시집이라도 갔었으면, 신랑이 '그냥 때려치워!' 라고 한 마디해줄텐데. 나는 돛단배처럼 혼자 떠 있어."
"신랑이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 두고 싶니? 그럴만큼 가볍게 시작한 일 아니잖아."
그랬던가. 그랬구나. 나는 왜 이 일을 시작했던가.
"어릴 적부터 이게 되고 싶다고 한 적도 없고,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흘러웠는데... 난 도대체 여길 왜 들어온 걸까."
"뭐도 모르는 어릴 적부터 '꿈이 대통령이다.' 이러면 그 일 하면 안 되는 거야. 대통령이 뭐 하는 자리인지도 모르고, 겉으로 보니 번지르르 해보인다고 하고 싶다고 하면 그게 무슨 장래희망이니. 장래탐욕이지."
"하하하."
"어떤 일인지, 어떤 내용인지 모르면서 신입사원부터 '나는 이 회사 사장이 될 거야'라고 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해. 그저 높은 자리 얻겠다고 온 시간을 바칠 거고, 들인 시간,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 그 자리 못 지키면 죽겠다며 난리를 치지. 뭘 하다보니 그게 재미있고, 그러다보니 그 자리에 가게 되고, 그 자리에 가다보니 더 많은 게 보이고, 그러면서 그 일을 사랑해서 인생을 바치게 되어야 해."
"내 인생을 바치는 일."
"그래. 너 하루 24시간 중에, 이 일을 몇 시간 하니. 너의 한달에서 이 일이 며칠을 차지하니. 너의 1년은 또 어떻고."
그 때, 나는 길었다면 길었고, 짧았다면 짧았을 내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하다보니 필요했고, 필요해서 희생을 감수해가면서 도전했고, 도전하다보니 실패도 있었고, 실패 앞에서 다른 문이 열리다가, 다른 문을 열고 나가 다시 돌아오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깊어졌고, 그러다보니 일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더 잘하게 되었고, 잘하는 일에 대해서 시기를 받고, 고통을 받았다. 고통 때문에 포기하고 돌아서기에는 나는 이미 이 일을 몹시도 사랑하게 되었다. 신랑이 그만두라고 한다고 그만 둘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만 둘 수 없어. 이 일을 놓을 수 없어."
"그래. 그러니까 침 한번 뱉고, 뒤돌아보지 말고 그 여자를 떠나. 일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가서 하는 거야. 여기서는 일을 할 수 없어. 너는 일을 사랑하고 있어.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가렴."
일을 할 수 있는 곳.
그거면 충분했다.
사직서를 내는 날, 나는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더는 일을 하고 싶어서 목메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4.
이직을 하고, 원없이 일 했고, 손 발이 맞는 팀을 만났음에도 각자의 사정으로 흩어졌었다. 누군가는 집 근처 직장으로, 나의 경우는 알량한 연봉때문에. 한 푼이라도 더 준다는 집이 생겼고, 그래서 또 이직하냐는 말을 듣게 되었지만, 훨훨 날아갈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자꾸 뒤를 돌아봤다. 만족스러운 사람들, 만족스러운 일의 퀄리티,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았는데 나는 무엇에 홀린듯 회사를 옮기기로 했지만, 그렇게 시원하지 않았다. 새로 옮긴 회사에서도 잘 적응했고, 역시나 재미를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때, 지난 번 회사의 팀장님이 연락하셨다.
"나를 믿고 와 줄 수 있겠어?"
"이러다가 이직의 아이콘이 되는 거 아닌가 몰라요."
"프로가 몸값 더 준다면 옮기는 게 맞지. 그래서 옮긴 거니까 당연한건데, 이번에 내가 새로 만들 팀에 합류하면, 혼자 중간에 나가지 말구 끝까지 같이 가자."
"중간에 옮길 것을 걱정시키다니, 역시 저는 이직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네요."
"사실 이직 해도 어쩔 수 없어. 하지만, 내가 한 마디만 할게. 나를 믿고 내가 낼 퍼포먼스를 기다려만 주면 또 다시 이직할 일은 없을 거야. 내가 너 일할거 원없이 만들어 올게. 원없이 일해봐. 너는 일을 사랑하잖아. 내가 그거 하나는 보증한다고 그래서 이렇게 특별히 스카우트해야 된다고 말했어."
너는 일을 사랑하잖아.
그래서 난 너를 원한다.
나름 스카우트를 위한 미팅이었는데, 더는 궁금한 것이 없었다. 나를 원하는 이유, 그거 하나면 되었다.
몇 년 전에는 내가 일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고통받은 이유였다. 나는 일을 사랑한 죄로, 일을 배정받지 못했고, 동시에 내가 일을 배정받지 못했다는 것이 윗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하도록 그녀를 두둔하는 알리바이도 만들어줘야 했었다. 네트워크가 생길까봐 외부 접촉은 차단되었고, 그녀가 외부에 나가 카톡으로 내게 질문하는 그녀에게 답장이 조금 늦으면 '나를 엿먹이냐?'고 소리지르는 전화를 들어야했다. 눈물을 흘리면 어깨동무를 하며 CCTV가 없는 곳까지 웃으며 데려갔고 문을 닫고는 '너가 노력한다고 이 자리 네 자리 될 줄 아냐?'고 소리질렀다. 내 책상 뒤에 의자를 놓고 내 뒤통수를 보며 앉아 있다가 불시에 일어나 내 마우스를 잡고 내 이메일 창을 하나하나 스크롤 내리다가 별 게 없어보이면 피식 웃으며 내 귀에 속삭였다.
"나는 너한테 긴장감을 주고 싶어."
내가 그 회사에서 조금 더 일하고 싶었던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명확했다. 그래도 2년은 다녀야 경력 같으니까.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시간 낭비였다. 그 때는 배운 것이 없었다. 잘 나가는 윗사람들과 저녁 먹으러 가는 기회를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방법 정도가 눈동냥이 되긴 했으나, 그녀를 벗어나 평범한 생활을 하는 지금, 그런 잔기술 같은 것은 내 인생에 필요가 없었다. 그냥 일을 하면 되니까.
맡은 일을 잘 해주면, 그 다음은 더 좋은 일을 맡게 되고, 그 과정에서 신뢰를 받게 되고, 신뢰가 쌓인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이 좋은 회사, 좋은 팀을 신설하자, 나는 새로운 멤버로 초대받았다.
나는 이제 자유로이 일을 하면 된다. 내 뒤통수에 들러붙어 있던 나뭇잎은 저절로 떨어져 내려갔다. 뒤통수를 타고 흐르던 시냇물이 달게 느껴질 지경이다.
5.
"차장님이랑 일하니까 배우는 게 많아요."
"저도 잘 몰라요. 뭘 가르쳐드렸다고."
"아니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랑 자주 일해주세요. 제가 열심히 할게요."
팀에 조인하자, 함께 일하는 대리들이 생겼고, 그들은 매번 '많이 배우게 되어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내 하루에서 제일 흐뭇한 순간이다. 그녀 밑에 있던 나는 내 산출물이 어떤 식으로 수정되어 나가는지, 최종본을 보지도 못하도록 이메일에서 배제되었고, 최종본을 한 번 보고 싶다고 하면 '내 자리를 넘본다'는 말을 들었다. 배울 수가 없었다. 그 갈증을 알기에, 대리들이 목마를 부분에는 나름의 대응을 했고, 대리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고 있다.
이직을 할 때, 팀이 함께 다니려면 각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윗사람은 아랫 사람이 이 만큼 해낼 것이라고 믿을 수 있어야 하고, 아랫 사람은 내가 이렇게 나를 들이부으면 내게 남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소모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 나를 쓰고 버릴 것이라는 생각, 내 희생을 바탕으로 저만 돋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윗사람을 모실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나처럼 바보같이 한 직장에 2년은 있어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으로 멍청하게 참지 않는 이상은, 각자의 시간은 소중하고, 각자의 에너지는 소중하기에 그들은 한 팀이 될 수 없다.
존경받는 윗사람은 홀홀단신 혼자만 이직하는 모습이 거의 없다. 그는 본인의 사람들과 함께 움직인다. 마치 단군이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내려왔든, 물을 다루는 사람, 바람을 다루는 사람, 구름을 다루는 사람을 다 거느리고, 그들의 믿음을 짊어지고 앞장서는 것이다.그러니까 진짜 윗사람은 그저 본인의 윗사람에게만 잘하는 것으로 그 커리어가 끝나지 않는다. 본인 사람들, 본인을 믿고 따르는 아랫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윗사람을 만나, 다룰 수 있는 물을 실컷 다루고 있다. 돌아보니 여기까지 오느라 많은 시간이 지났고, 내가 언제까지 물을 다룰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욕심이 생겼다. 나를 따라 물을 다루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잘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대리들에게 내가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내 하루가 풍성해진 느낌이다.
아, 그랬구나. 나는 이런 것이 중요했구나.
내가 흘러갈 바다가 무엇인지, 내가 마지막에 흘러들어갈 물이 어드메인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나는 억겁의 시간, 시냇물을 맞으며 바다로 흘러가는 돌이되, 내가 가른 물살을 따라올 다른 돌들이 무섭지 않게, 이 방향 맞으니 걱정말라고, 내 등 뒤에 흘려갈 물들은 더 잔잔하고 고요해지게 만드는, 단단하고 야무진 돌이 되고 싶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무척이나 만족할 것 같다. 이 생각에 이르니, 내게 남은 시간들이 짧게 느껴진다. 내게 흘러올 시냇물들이 달게 느껴진다. 나는 내가 시냇가에 우직하게 앉아있는 것이 행복하다. 나뭇잎따위 두렵지 않다.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 만족을 위해 산다. 나는 재미있게 일하고 싶어서 산다.
6.
신혼집은 섹스 앤더 시티처럼 뉴욕에, 빨간 세단 몰고 주말 드라이브 하는 4인 가정의 엄마가 될 줄 알았던 나는 여의도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고 있다. 특별히 되고 싶었던 것은 없었지만, 매 순간 최선이길 바랬고, 지금 이순간 만족스럽다. 이 만족을 뛰어넘어 대단한 그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지만, 이 고요한 평온이 오래도록 이어지면 좋겠다.